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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숙진 Nov 01. 2024

엄마는 늘 공부를 한단다 (네가 보는 앞에서는 말이야)

"엄마, 60분 안에 문제 다 풀었어요?"


집으로 들어서는 아들이 내게 한 말이다. 


학교에 가기 전, 내게 문제지를 건네며 자신이 학교에서 그랬던 것처럼 꼭 60분 안에 다 풀어야 한다고 강조하더니,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렇게 추궁부터 했다.


나는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엄마가 열심히 문제 풀고 있는데 갑자기 슈퍼마켓에서 배달이 왔잖아. 그래서, 잠시 펜을 내려놓고 배달 궤짝을 하나씩 부엌으로 옮기고 그 안에 담긴 식료품을 찬장과 냉장고에 분류해 넣었거든. 그렇게 정리하고 나서 자리로 돌아와 다시 문제를 푸는데 두 시간이 훅 지나간 걸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 배달 기사님한테 '저 시험 치는 중이니 좀 기다리세요' 그렇게 해야겠냐고?"


한심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던 아들은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중등학교에 입학하는 해, 즉 한국에서라면 중학교 1학년에 해당하는 때 수학경시대회에 나간 아들은 자기가 쳤던 시험지와 동일한 용지를 집으로 가져왔다. 이후 고등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시험지를 가져오는 일은 되풀이되었고, 이를 받아 든 나는 문제를 다 풀고 검사까지 받아야 했다. 물론, 아들이 강조한 시험 시간은 최대한 지키려 노력하면서 말이다.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냐 하면... 



"엄마가 수학을 한국어로 배워서 용어를 모르는 거지, 수학을 못하는 건 아니거든."


학교에서 프랙션을 배웠다고 하길래...


'프랙션'이 뭐냐고 물었더니 아들은 크게 당황했다. 지금껏 자신수학 숙제를 직접 검사하고 때로는 선생님 역할도 하던 엄마가 프랙션을 모른단 말인가. 그게 말이 돼?


fraction

* 분수


수학적 용어의 의미를 파악하고 이를 문제로 푸는 것과 그 개념을 한국어, 영어로 구분하는 건 별개의 일이다. 그럼에도 오로지 '프랙션'이라는 용어를 몰랐다는 이유만으로 아들은 내 수학 실력을 의심하려 들었다. 나중에는 아예 엄마의 수학 실력을 판가름해 보겠다 결심한 건지, 학교에서 받은 문제지를 집으로 가져와 풀어보라고 했다.


정식으로 수학 문제를 풀어본 지 2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내 예전 수학 실력이 되살아난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살짝 긴장했으나 다행히 아들이 가져온 시험지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일회성 행사로 끝나겠거니 했던 수학 고문은 이후에도 매년 반복되었고 아들이 고1의 나이가 될 때까지 이어졌다. 


어느 해부터인가, 가물가물하는 내 수학 실력으로는 도저히 시간 안에 다 풀지 못하겠다 싶어 아들에게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렇다고 시험을 포기하는 건 아니니 며칠간 공부해서라도 풀겠다고 했다. A5 정도 크기의 작은 용지에 빽빽하게 적힌 글자와 도형숫자를 해독하는 일 또한 내 나이에는 부담스럽다는 말도 덧붙이고




- 학원, 과외 없이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로 키우자.

- 내가 하지 못하는 걸 아이에게 강요하지 말자.


가 나의 자녀 교육 방침이다.


이를 위해서는 아이에게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일깨우고 공부에 재미를 붙이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부모인 나부터 나서야 한다. 어른은 하지 않는 (혹은 못하는) 공부를 아이에게 강요할 수는 없어서다. 아들이 가져다준 문제지를 큰 불평 없이 풀어낸 일도 그런 이유에서다. 


아들과 함께 피아노에 도전한 일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오늘 배운 거 보여줄까?"


지나가는 아들을 붙들어 놓고 말했다.


아들이 열 살이 되던 해, 육아와 살림에 대한 내 부담이 크게 줄어들면서 그동안 엄두를 내지 못하던 피아노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마침, 소형이긴 하나, 지인이 쓰던 전자키보드도 얻어 두었으니 언제든 시작할 바탕은 마련되어 있었다. 


사실, 본연의 목적인 악기로 활용되기보다는 어린 아들의 장난감으로 전락한 광경이 '눈'과 '귀'로 선명하게 기억될 정도로 이 전자키보드가 우리와 함께 한 시기는 꽤 길다. 


연주는커녕 기기 사용법조차 모르는 부모와 달리, 아들은 미리 저장된 연주곡을 재생하는 법을 터득하고는 쿵쾅거리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했다. 발디딤대를 밟고 올라서야 닿을 정도로 자신의 키에 비해 큰 전자키보드를 장난감처럼 만지작거리는 아들을 보며 언젠가는 저걸 진짜 악기로 이용해야지, 하며 한숨만 쉬던 시절이 있었으니 내가 피아노를 배우기로 결심한 배경은 애매하다.


마흔의 나이에 못다 한 꿈을 펼치려다 혼자서는 안 되겠다 싶어 아들을 끌어들인 것인지

아들의 음악 공부에 힘을 불어넣기 위해 내가 끼어든 것인지

전자키보드를 계속 방치할까 아니면 갖다 버릴까, 결단을 내리려 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두 모자가 거의 동시에 피아노를 시작한 건 맞다. 


그렇게 피아노를 익히며 서로 조언을 해주는 관계로 또 경쟁하는 관계로 지내는데 언젠가부터 아들의 실력이 나를 앞질렀다. 아무리 더 많은 시간을 쏟아가며 연습을 하더라도 아들처럼 자연스럽게 연주하지 못하다 보니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나는 학원을 등록했다. 



학원, 과외 없이도 가능하다며???

 

학원, 과외 없이 애를 키우겠다 했지 나 스스로 학원, 과외 없이 클^^;; 용기는 없었다. 아들은 학교에서 음악 선생님이라도 만나지 않나. 전문가의 도움 없이 나 혼자만의 공부법으로는 발전이 없다 결론 내리고 시도해 본 방식이다.


음악 학원을 다니면서 내 실력이 눈부시게 발전했다 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독학이라는 핑계로 마구잡이로 쳐대던 내 피아노 주법에 체계가 조금 잡히기는 했다. 


이런 발전된 모습을 혼자 보기는 아깝다 싶어 학원을 다녀올 때마다 아들을 불러다 놓고 억지 시연까지 해 보였다. 엄마도 이 나이에 선생님 밑에서 공부하며 배움의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음을 과시하고 싶었다. 


어디서 많이 보던 풍경이다. 


'오늘 학교에서요...'라며 매일 저녁마다 자신의 일과를 설명하던 아들 표정 말이다. 학교에서 칭찬받은 일을 신나게 자랑하던 아들 말이다. 


노안이 시작되면서 악보 속 복잡하고 자잘한 음악 기호를 이제는 맨눈으로 읽기 힘들다 싶어 돋보기를 쓴 엄마의 낯선 모습마저 자랑스레 보이고자 했다. 


아들 앞에서는, 완벽하지는 못하더라도, 늘 바쁘게 일하고 공부하고 독서하는 엄마로 기억되고 싶었다. 


물론, 그렇다고 늘 공부만 하는 엄마는 아니다. 


아들 몰래 TV를 보며 여유로움을 즐기기도 한다. 요즘 스트리밍 시대 아닌가. 아들 재우고 보면 된다. 남편과 둘이서 킥킥대며 영화를 보다가 잠에서 깬 아들로부터 질책을 들을 각오는 하고 말이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Kampus Production on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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