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경덕 Feb 10. 2019

가스 고지서


현관문 틈에 누런 종이가 꽂혀있다. 지난달 가스요금 고지서다. 


벌써? 하며 날짜를 확인하는 행동은 새로운 달이 시작될 때마다 습관처럼 반복된다. 겨울철 가스 고지서가 사람의 마음을 껄적지근하게 만드는 불청객임을 알게 된 건 내 돈으로 직접 가스비를 내면서부터였다. 어쩌다 난 제 발로 독립을 하게 되었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한 장면에서 멈추었다. 어느 겨울날 아침, 밥상머리 장면이었다.


다시 새삼 알게 되었다. 내가 집을 나와 고시원, 하숙집, 옥탑방을 거쳐 재개발 지역에 있는 1층 투룸에 살고 있는 이유, 겨울엔 매달 가스 고지서를 보며 껄적지근해진 마음을 추슬러야 하는 이유 말이다. 대학교 4학년이었고 평소처럼 학교 갈 준비를 하고 급하게 밥 한 숟갈 뜨기 위해 식탁에 앉았다. 맞은 편에는 아빠가 앉아 있었다. 


밥 먹는 소리 외에 노조 파업에 관한 소식을 전하는 기자의 목소리가 TV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파업에 동참하는 사람들과 정상 근무를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비겁함을 토로하는 사람들과 각자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입장을 인터넷 댓글 여론을 통해 확인했다. 나는 무심코 아빠에게 물었다.


- 저럴 땐 어쩌지? 파업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런 시국에 아무렇지도 않게 근무하는 사람들이 꼴보기 싫을 것 같고. 또 그 사람들의 사정을 모르니까 무조건 비난할 수도 없을 것 같고. 아빠 같으면 어떨 것...?


아빠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더니, 마지막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국을 뜨던 숟가락을 세차게 내려놓았다.


- 야 임마. 니가 지금 그런 거 고민할 때야? 취업 준비할 시기에 그런 쓸데 없는 고민이나 하고있어? 네 앞가림부터 잘 해야 할 것 아니야!


아빠 말 중에 뭔가 묵직한 것이 슈욱 날라오더니 내 귓바퀴를 지나 달팽이관을 뚫고 머릿속 어딘가에 푸욱 박혀버렸다. 그 말은 '야 임마'도 아니었고, '취업준비'도 아니었고, '쓸데 없는 고민'도 아니었다.


'니 앞가림'이었다.


앞가림이란 말과 함께 어디선가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어린이. OO교육" 모 학습지 CM송에 맞춰 자기의 일을 스스로, 알아서,척척척 해내는, 자기 앞가림 잘 하는 어린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린이도 자기 앞가림을 하는데, 나는 뭐하고 있는 거지? 아침 밥상머리 분위기가 종종 싸해지는 것도 내가 내 앞가림을 못하고 있어서인가 싶은 생각이 들면서 그동안 믿고 걸어온 길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는 시점부터 대학 입학을 위한 입시 공부가 전부라고 믿었던 길, 깊은 산골 기숙학원 울타리에 갖혀 1년 재수 끝에 대학에 입학하고 그 이후엔 다시 취업준비를 위한 스펙 관리가 전부라고 믿었던 길, 졸업장을 따고 회사에 들어가 돈 모아 차 사고, 집 사고,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미래가 자연스럽다고 믿었던 길, 그동안 잠자코 걸어왔고, 걷고 있었고, 앞으로도 걸어야 했던 길이, '앞가림'이란 말 한마디에 무너져 내렸다. 지금 내 앞가림도 못하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람? 


취업에 도움이 안 되는 고민이나 활동을 한다 싶으면 안색이 어두워지는 부모님을 보는 것도 불편했다. 참다가 터져서 뾰족한 말로 서로를 찌르는 일도 그만하고 싶었다. 누구의 간섭도 안 받고 싶었다. 그냥 내 마음대로 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자기의 일을 스스로, 알아서, 척척척 해야 할 것 같았다. 더이상 누구 집에 얹혀 살거나, 누가 차려주는 밥을 먹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 순간, 심연으로부터 또렷이 올라오는 목소리.


여기서 나가자. 


집을 나가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아빠, 엄마가 혈육이 아닌 집주인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월세도, 밥값도 안 냈는데 28년동안 동거인으로 거두어 준 집주인 부부에게 속으로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소자 이만 나가겠습니다.' 하며, 나가 살 집을 알아보았다. 통장에는 30만 원이 있었다. 다행이도 이만큼의 돈으로도 집 밖에 얼마간 머물 수 있는 곳이 있었다. 보증금이 없어도 한 달 치 월세만 있으면 기꺼이 공간을 내어주는 곳, 고시원이었다. 학교 근처에 있는 고시원 중에 가장 저렴한 방을 찾았다. 창문이 없고, 좁고, 화장실을 같이 써야 했지만, 내 앞가림에는 문제가 없었다.


월세를 내고 당장의 생활비가 필요해 갖고 나온 노트북을 IT 전당포에 맞기고 얼마의 돈을 빌렸다. 곧 레스토랑 마감 알바를 구해 일을 시작했다. 준비가 많이 필요한 번듯한 직업보다 지금 바로 구할 수 있는 알바가 내 앞가림에 도움이 되었다. 그때그때 적절한 알바를 구하고 수입과 지출 관리를 알뜰하게 하면서 빚도 갚고 조금씩 저축도 해나갔다. 보통 반나절 동안 하는 일을 구했고 남은 반나절은 의무와 강요의 세계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마음의 이끌림에 전적으로 몸을 맡겼다. 그동안 억눌려온 시간을 보상받고 싶기라도 한 듯 마음은 아무 맥락도, 계획도 없어보였다. 몸은 럭비공 같은 마음의 이끌림에 순순히 따랐다. 아무 곳이나 가고, 아무 책이나 읽고, 아무 글이나 끄적이며, 아무 사람을 만났다. 


고시원에 들어온 지 8개월 정도 되었을 때 근처 하숙집으로 이사했다. 월세는 더 비싸지만, 하숙집에서 차려 주는 아침저녁을 챙겨 먹으면서 오히려 지출을 줄일 수 있었다. 아침저녁을 꼬박꼬박 챙겨 먹으며 하숙집에서 2년을 살다가 근처 옥탑방으로 이사했다. 차려주는 음식을 먹는 게 편하지만, 진정한 앞가림을 위해서라면 직접 장을 보고,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옥탑방에서 장을 보고 요리를 하며 3개월 정도 살다가 같은 건물 1층 투룸으로 내려왔다. 재개발 구역이라 나 빼고 다른 세대가 모두 이사를 가버려서 집주인이 1층에 내려와서 사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 것이다. 그래서 월세를 똑같이 내는 조건으로 1층 투룸으로 이사를 해서 지금껏 살고 있다.


가스 요금 고지서를 보고 있으니 내 앞가림의 역사가 그렇게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이런 회고 또한 새로운 달이 시작될 때마다 습관처럼 반복된다. 두 달 후에는 지금 사는 동네 재개발이 시작되어 다시 이사를 가야 한다. LH 셰어하우스형 사회주택에 입주신청을 해놓았다. 무려 아홉 가지의 서류를 제출했고, 두 달 후에 심사 결과가 나온다. 안되면 어디로 가야 할지 아직 모른다. 또 다음엔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다음 달 가스 요금은 얼마가 나올지, 언제까지 내 앞가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안해하지 않기로 한다. 방금 고지서에 적혀 있는 계좌로 가스 요금을 무사히 입금했으니까. 나는 내가 쓴 가스는 스스로 책임지는 사람이니까. 여전히 마음의 이끌림에 몸을 맡겨놓고 아무 미래나 그리는 사람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자기소개인 듯 자기소개 아닌, 자기소개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