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월희 Nov 03. 2023

내가 결혼식을 가는 기준

잊을만 하다 싶으면 결혼소식이 들려온다. 오랜 동안 연락을 주고 받지 않았던 사람이 연락이 오면 보험 아니면 청첩장이라는 말이 과연 틀린 말이 아니다. 모처럼만에 모바일 청첩장을 받았다. 이미 3달 전에 결혼소식을 알려왔기 때문에 놀랄 일도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보아왔던 아이가 벌써 결혼한다니 격세지감이다.


그러고 보면 결혼 소식은 빗발치게 들려오고 있는데 결혼식을 참석하려고 하는 것은 진짜 모처럼이란 생각이 들면서 예전에 세웠던 나의 원칙은 잘 지켜지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무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는다. 물론 거기엔 돌잔치 등도 해당된다.




내가 결혼식을 가는 기준은 무척 명확한데 바로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는 것이다. 결혼식이나 돌잔치는 결국 주최하는 주인(host)이 있고, 초대를 받는 손님(guest)으로 나누어지게 되는데, 그 주인이 손님인 나에게 보이는 모습으로 참석 여부를 결정한다. 이렇게 된 것에는 사연이 있다.


나는 20대 초중반에는 주변의 웬만한 경조사에는 빠짐없이 참석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주변에서 나를 만나려면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 가면 된다는 말까지 돌았다. 이렇게 웬만해선 모든 참석을 하던 내가 가리게 된 건 두 가지 일을 연달아 겪어서이다.


첫 번째 사건은 결혼식을 갔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온 지를 전혀 몰랐다. 나는 그때 많이 친하진 않아도 함께 활동했던 사람이 결혼을 한다는 걸 전체 공지에서 봤다. 그래서 사람들과 함께 그 결혼식에 참여했다. 그런데 정작 그 결혼을 한 당사자가 내가 온 지를 인지를 못했다. 무려 3번이나 "너 내 결혼식에 안 왔잖아" "너 내 결혼식에 왔었어?" "네가 내 결혼식에 왔던가?"라고 했다. 이때부터 뭔가 아니다 싶었다.


방점을 찍게 된 두 번째 사건은 돌잔치에 갔을 때 오히려 욕 먹었다. 어느 날, 친한 선배한테 연락이 왔다. 자기의 아들 돌잔치를 하는데 꼭 와 줬으면 좋겠다며 청첩장을 보낼 테니 주소를 알려달라고 말이다. 나는 무척 기쁜 마음으로 주소를 알려주고 반드시 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서로 덕담(?)을 나누고 대화는 종료됐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청첩장이 오지 않는 것이다. 돌잔치가 며칠 앞둔 상황에도 오지 않아서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다른 선배에게 연락이 와서 그 선배의 돌잔치 갈 거냐고 물어왔다. 내가 "청첩장이 안 왔어..."라고 말했더니 그 선배는 "안 도착했어? 뭐 어때~ 어차피 가면 되는데 청첩장 그게 뭐가 중요해~"라고 하길래 그 말도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약속을 잡고 또 우르르~ 사람들과 함께 그 돌잔치를 갔다. 둘잔치를 주최한 선배는 웃으면서 맞이해주었고, 같이 간 사람들과 신나게 떠들다가 우연하게 그 테이블에 나만 앉아있었던 순간이 있었는데 그때 그 선배가 옆으로 왔다. 그리고선 귓속말로 "너도 참 오지랖이 넓다~"하고 비아냥거리며 바로 가 버렸다. 나는 그 순간 어안이 벙벙해져서 아무 대꾸도 못한 동시에 일부러 청첩장을 보내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솔직히 그 선배가 왜 그런 행동을 취했는지 아직도 모르겠고, 그 뒤로 서로 연락을 주고 받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알 일은 없겠고, 알 마음도 없다.



이런 일이 왜 생겼는지 고민하다가 두 사건의 공통점이 있는 걸 파악했다. 바로 <청첩장>이 없었다. 첫 번째도 결혼하는 당사자가 나를 직접 초대한 것이 아니었고, 두 번째도 뭐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중간에 맘이 바뀌어 날 초대할 맘이 없었다. 초대 받지도 않은 내가 혼자 잘났다고 참여한 결과였다.


그 두 사건을 연달아 겪으면서 나의 원칙은 주인한테 초대 받지 않으면 가지 않는 것이었다. 기실 내가 꼭 왔으면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연락을 해서 밥을 사며 청첩장을 주거나 전화를 하거나 최소한 '이번에 결혼식을 하게 되었으니 꼭 오셔서 자리를 빛내주셨으면 합니다'라는 상투적인 메시지라도 보내어 내게 이런 경사스러운 일이 있으니 꼭 참여해주길 바란다고 그 성의와 예를 다했다. 응당 이게 당연한 것이 아닌가.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은 불청객일 뿐이다.




그런 이후부터 나는 초대 받지 않은 모든 것은 참여하지 않았고, 초대를 받았어도 성의가 없으면 참여하지 않았다. 예전에 300명 가까운 단톡방을 만들고선 모바일 청첩장 하나 띄운 친구가 있었는데, 그 결혼식에는 가지 않았다. 그 친구와는 꽤 친한 사이였지만 정말 너무 어이없는 초대 방식에 할 말을 잃었다. 나는 결혼 축하한다는 메시지 하나 남기고서 그 단톡방을 나왔다.


그리고 또 나름 친한 선배 중 하나가 결혼을 하게 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나에겐 청첩장이 안 왔다. 다른 선배들이 같이 가자고 하길래 단호하게 "난 청첩장 안 받았으니까 안 갈래"라고 했다. 다른 선배들은 친한 사이끼리 그게 뭔 상관이냐는 반응이었으나 난 두 번의 호된 경험으로 정말로 갈 마음이 하나도 없었다. 아무래도 그 말을 들은 선배 중 한 명이 전했는지 며칠 후에 그 선배에게 정말 장문의 글과 함께 결혼식에 꼭 와 줬으면 한다는 모바일 청첩장을 받았고, 나는 그 선배의 결혼식을 홀가분하게 참석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정말 웬만한 일 이를 테면 이미 몇 달 전부터 잡힌 해외 출장이나 자격증 시험과 같은 불가항력적인 일이 아니면 청첩장을 제대로 받았을 때에는 모두 참석했다. 그게 설령 아무리 먼 지방이라도 할지라도 말이다. 주인이 성의를 표했으니 그걸 받은 손님인 나도 그에 합당한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험은 너무나 강렬했던 터라 한동안도 바뀔 것 같지 않다. 가끔씩 청첩장을 받지도 않았는데 10년 동안 안 친구의 결혼식을 들었다고 가는 게 맞는지 어떤 건지 모르겠다며 끙끙거리면서 나에게 상담을 해 오는 지인들에게 나는 항상 "왜 가? 초대도 안 받았는데?"로 응수한다. 주인이 자신을 생각조차 안 하는데 도대체 그걸 왜 고민하는지 나는 이제는 모르겠다. 내가 오든지 말든지 상관도 안 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이유가 있을까.


이렇게 말하면 일부에서는 깐깐하다거나 유별나다고 하는 경우도 있고, 실제로 청첩장 안 받아서 결혼식을 안 갔는데 신혼여행 다녀온 이후에 나보고 왜 안 왔냐고 은근 따지는 투로 틱틱거리는 사람들도 이따금 있었다. 난 그런 사람들에게 "나한테 청첩장 줬어?"라고 한다. 그러면 대체적으로 입을 꾹 다물지만 그 와중에도 그것과 관계없이 와야 하는 것 아니냐며 툴툴거리는데, 나는 정말 그런 사람들에겐 할 말이 없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차대한 결혼식을 할 때에도 초대할 생각조차 안 한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 걸까. 최소한의 성의도 표시하지 않으면서 무언가를 받길 바라는 것도 아니다 싶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에게 알뜰폰을 안 쓰게 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