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고 하기에는 너무 애매한 사람들의 안부

by 가릉빈가

불현듯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대단히 애매모호하다. 또한 그들을 안다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거리감도 존재한다.




초등학생 때 학교 근처에서 떡볶이를 비롯한 다양한 분식을 파는 할머니가 있었다. 정말 맛있었다. 그 포장마차는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항상 자리가 없었다. 앉아서 먹으려면 기다려야 했다. 그때는 컵볶이 같은 건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기다리기 싫으면 투명한 위생봉투에 포장을 해서 집에서 먹어야 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건 떡꼬치였다. 금액도 정확히 기억한다. 200원. 요즘 파는 떡볶이보다도 훨씬 크고 실했다. 나는 사실 그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먹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 최소 10분 이상- 떡꼬치로 타협을 봤다. 그래서 냉큼 하나를 입에 물고 친구들과 하교를 했다. 일주일에 최소 3번 이상은 먹었던 것 같다. 내 용돈의 대부분은 그 포장마차에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 200원이 없는 날엔 얼마나 안타까웠던지! 돈 빌릴 생각도 못했던 어린 시절이라서 군침만 꿀꺽 삼킨 후에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갔었다. 그때의 떡볶이 맛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래서 그 맛이 나는 떡볶이집을 항상 찾아 헤맨다.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떡볶이. 그래서 그런지 이따금 그 할머니가 생각난다. 사실 그 분의 얼굴은 기억이 안 난다. 그 분이 만들어주신 떡볶이와 그 포장마차, 그 분위기들이 생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것이지.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던 내 피붙이도 이 부분만큼은 나하고 동일하다. 이따금 떡볶이를 먹다가 "그 할머니 아직 살아 계실까?"하고 먼저 말을 꺼내기도 한다. 이미 숱한 세월이 흘렀으니 아마 세상에 계시지 않을 확률이 더 높긴 하지만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잊을 수 없이 맛있는 떡볶이를 선사해주신 그 할머니의 안부가 때론 궁금하다.


고등학생 때 집 바로 근처에 대여점이 있었다. 지금은 자취를 감췄지만 그때만 해도 대여점이 우후죽순으로 생길 때였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친해진 건지는 지금은 전혀 기억이 안 나지만 저녁을 먹고 나면 항상 그 대여점을 가서 그 대여점 주인인 언니들(?)과 그 언니들과 친한 오빠(?)와 수다를 그렇게 떨었다. 정말 어떻게 친해진 건지 생각도 안 나고, 왜 내가 어느 순간부터 저녁이면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책은 안 빌리고 그렇게 거기서 노닥거렸는지 전혀 모르겠지만. 그래서 밤 9시가 넘도록 안 들어오면 이따금 엄마가 찾으러 오시기도 했다. 해도해도 너무한 거 아니냐면서. 그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하나 기억이 안 난다. 대여점이었기 때문에 무슨 만화책이 인기가 좋다, 이번에 새로운 소설은 무엇이 들어왔다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사실상 세세한 대화의 내용은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도대체 뭐가 그리 좋고 재밌었길래 거의 매일 찾아갔을까. 왜 그렇게 깔깔거리며 웃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분위기는 정확히 기억한다. 어디에 그 대여점이 있었는지도 기억한다. 근데 참 우습게도 그리 자주 만났던 그 사람들의 얼굴이 기억 안 난다. 당연히 이름도 모른다. 나이도 모른다. 아무 것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내 옆에 앉아있다고 하더라도, 나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 본다고 해도 나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일지 절대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내 기억 속 한 켠을 차지하는 사람들인 건 분명하다. 정말 아주 이따금 그녀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대학생 때 우리 집 앞에 떡볶이를 파는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세월이 흐르니까 할머니가 된 분이 있다. 초등학생 때의 좋은 기억의 여파인지는 몰라도 떡볶이를 참 좋아하는 나는, 그리고 하이에나마냥 그 맛을 찾아 헤매는 나는, 집 주변에 떡볶이집이 생기면 무조건 찾아가는 편인데 결국 돌아돌아 그 떡볶이집의 단골이 됐다. 처음에는 정말 아주 작은 포장마차였는데, 어느 순간 자리를 잡으셨더라. 좀 더 위생적이고 넓은 공간에서 하실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더니 빙긋 웃으셨다. 간판은 없었지만 집 근처에 초등학교가 자그만치 3개나 있는 곳에서 정말 떡볶이는 잘 팔렸다. 근데 어느 순간 그 가게의 셔터문이 열리지 않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어디 편찮으신가 궁금하더라. 그래도 곧 열겠지 싶었는데 결국 그 셔터문이 다시 올라가는 일은 없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드셨던 만큼 그냥 쉬시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긴 하지만 때론 정말 건강이 안 좋은신 건가란 살짝 걱정이 되지만 사적으로 연락처를 주고 받은 관계도 아니고, 주변에 또 그 분의 안부를 묻기도 그래 시간이 흘러 지금은 아마 이 동네에 그 분을 모르는 사람도 많아졌을 거고, 그 자리가 떡볶이를 파는 곳이었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을 거다. 나는 그 분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한다. 목소리도 기억하고, 그 억양도 기억한다. 대학생 때여서 그런지 아니면 가장 오랜 시간을 마주쳐서 그랬는지 몰라도 머릿 속에선 그 처음 시작했던 주황색의 작은 포장마차도, 그 위치도, 자리 잡은 분식점에서 어디에 어묵이 있었고, 어디에 튀김이 있었고, 메뉴는 어디에 붙였는지도 기억한다. 이렇게 아직도 나름 생생한데 그 분에 대해선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채로 안부가 궁금하다.




이런 걸 떠올리면 때론 위안을 얻는다. 연이 있든 없든, 얼굴을 기억하든 못 하든, 이름을 알든 모르든, 그때 나누었던 대화가 무엇이었든 관계없이 누군가는 나를 또 이따금, 아주 생뚱맞게 기억하고 떠올리지 않을까 하고. 그런 생각을 하면 나쁘지 않은 삶이지 않은가란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의 기억과 추억 속에 조그마한 자리라도 차지하는 건 나쁜 일은 아니니까. 무색하고 무정하게 흘러가는 가운데에도 누군가는 나의 안부를, 안다고 하기에는 너무 애매한 존재라 해도 궁금해할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나름 특별하다. 부디 그 찰나적인 안부가 나쁜 감정으로 떠오르지 않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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