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나 인간의 존엄성을 염두에 둔다. 헌법 제 10조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인간의 근본 가치로서 부각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은 결국 본인의 안위를 본인이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기에 국가에서도 인간다운 삶의 영위를 위해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설령 수도세나 전기세를 못 내도 단수나 단전을 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생활은 유지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실업급여 같은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지금 계속해서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 역시 인간이 어떠한 상황에 닥치든지 기본적인 생활은 누릴 수 있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위하여 많은 것들이 보장 받고 있으며, 지원되고 있다.
그 중에서 인간의 존엄성의 기본은 본인 신체에 대한 안위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신체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것에 가장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 대소변처리이다. 자신의 신체가 불편하여 무언가를 하기 위하여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은 의외로 쉽지 않은 일인데, 그 중에서 대소변처리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 중 가장 저변에 깔려있는 것으로, 자신의 신체의 안위를 남에게 의지하여만 해결된다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다들 그렇게까지 되고 싶지 않다고 하는 이유는 결국 내가 한 사람으로서의 존재의 의의와 가치가 훼손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건 동물도 마찬가지란 것을 하늘이를 통해 깨닫는다.
하늘이가 아프다. 하늘이가 아픈지는 몇 주 됐다. 더 정확히는 머루랑 동시에 몸이 최악의 상태가 되었는데, 머루는 팔딱 뛰게도 먼저 우리 곁을 떠났고, 하늘이는 오늘 내일을 하고 있다. 하늘이는 사건사고가 워낙 많았던 아이였던 터라 태어난 지 1년도 안 되어서 슬개골 탈구가 되어 수술한 것을 시작으로 하여 3살 정도엔 간질, 이후에는 비누 먹어 위세척 하고, 약의 부작용으로 체중 증가로 인한 관절의 무리, 나이가 들어감에 따른 심장 기능의 약화에 어느 순간 종양도 생겼더라.
아무리 몸 상태가 안 좋았다고 하나 상당히 활달한 아이로 이렇게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된 건 불과 2주도 되지 않는다. 2주 전에 갑자기 영문도 모르게 다리를 못 써서 병원에서 처방받은 신경약으로 아이가 상태가 나아지나 싶었더니 1주 전에는 거의 다리를 못 쓸 지경에 이르렀다. 왼쪽 앞다리를 제외하곤 나머지는 거의 기능이 소실된 것 같다. 하늘이는 움직이고 싶어서 낑낑거리는데 사실상 자기 몸을 못 가누는 상태로 병원에서도 딱히 이렇다 할 치료방법은 없는 것 같다. 집에서 잘 케어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나이도 많아서 이제 와 수술을 하기도, 항암치료 등 무언가 치료하기엔 버텨내기도 어려운 것 같다.
그러한 상황에서 하늘이는 아직은 대소변 처리에 대한 욕구가 살아있는 것 같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항상 가던 배변판을 향하여 얼굴을 바닥에 찧고 넘어지더라도 안 움직이는 다리를 질질 끌어 피부가 벗겨지더라도 그 배변판 근처까지 가서 대소변을 한다.
하늘이는 아무리 급해도 그 배변판을 향해 전력을 다해 본인의 몸을 움직인다. 안쓰러운 맘에 내가 들어다가 배변판 위에 올려주면 하지 않는다. 오로지 본인의 힘으로 배변판에 가야 대소변을 본다. 그때까지는 그 아이는 대소변을 참는다. 그것이 아직 남아있는 그 아이의 존엄성이자 자존심일 것이다.
어떠한 사람을 보고 금수만도 못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한낱 강아지도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자신의 몸을 움직인다. 하늘이를 보고 있자니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이해가 된다. 정말 보고 있자면 눈물 날 지경이다. 그냥 편하게 기저귀를 사용하면 좋겠건만 절대로 기저귀를 사용하지 않는 하늘이를 보니 마음이 아프다. 나는 하늘이를 보면서 동물에게도 존엄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