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집 대문 앞에 쌓여 있는 물건들이 보이기 시작한 건 지난여름이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들려온 엄청난 고성과 욕설에 놀라 창밖을 내다보니 집 앞 빌라 입구에서 원더우먼 자세를 하고 호통을 치고 있는 할머니와 구부정한 어깨를 하고 중얼거리며 쓰레기 같은 물건들을 추스르고 있는 할아버지가 보였다. 그때만 해도 사이가 안 좋아 자주 싸우는 분들이신가 보다, 일상적 풍경이라면 좀 시끄럽겠네, 하고 말았다. 소음에 좀 민감한 편인지라 약간의 불안감을 안고서. 그런데 그 날 이후로 할아버지가 집 앞에 꺼내어 오는 물건들은 나날이 늘어갔다. 외출 시에는 언제든 포대자루 같은 것에 물건들을 한 데 모으고 묶거나 눈과 비에 젖지 않도록 비닐을 덮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빈 캔이나 페트병 같은 것도 많았고 이불이나 그릇과 유모차, 오래된 책과 신문지 같은 종이류 등, 대체로 생활쓰레기라 불릴 그런 것들이었다.
도대체 저런 것들을 왜 안 버리고 저렇게 보듬고 있는지 궁금했다. 집 안도 아니고 (할머니한테 혼나서였기 때문이라 생각되지만) 집 앞 골목에까지, 그 물건들이 산을 이루도록. 내가 이사한 집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야, 그 집 사람들은, 특히 1층 사람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정말 인내심이 강한 사람들인가 보다,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곤 했다. 이전에 살던 역세권의 거대한 오피스텔에서 부당하게 책정된 관리비와 청소 등의 문제에 당당히 권리를 주장하던 입주민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신기한 건 아직도 그 풍경들이 아직도 매일 계속되고 있는데 아직 그것에 항의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웃주민으로서 신고를 해야 할 사항 아니야? 할아버지는 치료가 필요한 분일지도 모르잖아"라고 얘기를 했다가 친구의 만류를 듣기도 하였다. 내게 끼치는 피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빌라 건물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안 보이는 걸 보면 할아버지가 그 빌라를 통째로 쓰고 있는 건물주일 수도 있으니까...
오늘도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그 물건의 산을 보았다. 날이 풀려 쌓여 있던 눈이 녹으니 물건들이 좀 더 선명히 보였다. 누가 보아도 쓰레기임에도 여전히 할아버지의 손길로 폐기되지 못하고 있는 물건들은, 할아버지에겐 필시 아직 떠나보낼 수 없는, 구부정해진 허리로도 매일 보듬어야 할 어떤 것일 터였다. 하나 하나가 나름의, 아직 붙잡고 있어야할 의미가 있는. 치료가 필요한 "저장강박증"일 수 있고 피해를 보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나는 정말 치료가 필요하다 생각하지만 말이다.
오늘, 그 집 할머니나 그 빌라 사람들이 아닌 저장강박증 할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보게 된 건, 아무래도 읽고 있던 정세랑의 소설 <피프티 피플> 때문일 것이다. <시선으로부터,>를 읽고 물컹해진 마음에 다시 손에 잡은 <피프티 피플>의 피플들. 어느 하나 가슴 시리지 않은, 짠하지 않은 인생이 없다. 그걸 섬세하게 포착해내는 작가의 부드럽고 따뜻한 시선에 전염되면 앞집의 저장강박증 할아버지가 "피프티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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