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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 Sep 30. 2022

수채화가 싫어졌던 계기

03_잘 해냈지만 싫어졌다

그리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느껴지게 된 첫 계기가 있었다. 내가 수채화를 싫어하게 된 계기와 일치한다.

당시 나는 초등학생이었고, 그 시절 방과 후 활동의 대부분이 그랬듯 나는 동네 미술학원에 다녔다.


어느 날 나는 잘하지 않던 수채화를 하게 되었다.

나는 연필로 그리는 드로잉에 특화되어 있었다.

수채화는 다루는 도구도 복잡했고, 내가 자신 없어하던 분야였다. 자신이 없었지만 그뿐이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드로잉에만 더 몰두해서 그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학원이라는 기관의 사명이 그렇듯 나는 나에게 주어진 과제에 직면해야 했다.


나는 아직도 내가 그날 '그려내야 했던' 사진을 기억한다. 그것은 짙은 고동색의 장독대가 줄줄이 늘어서 있는 사진 한 장이었다. 미술학원 원장님은 나에게 그 사진에서 '다채로운 색을 보라'라고 주문한 뒤 나를 내버려 두고 사라지셨다.


온통 고동색뿐인 장독대를 보고 무슨 색을 찾아내란 말이람.


그렇다고 나는 동일한 한 가지 색으로 밋밋하게 장독대를 칠할 마음은 없었다. 나는 오기가 생겼다. 색이 보이지 않으면 만들어라도 내겠다는 다짐으로 사진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세하게 어떤 색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 상상이 만들어낸 착시효과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어찌어찌 여러 색들을 넣어가며 장독대를 색칠해 갔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해냈지만, 그 과정은 몹시 힘들었고 나는 옆에서 가이드하고 격려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원장님이 돌아와 '거봐, 잘 해냈잖아.'라며 칭찬을 했을 때, 알 수 없는 안도감과 동시에 수채화는 다시 하고 싶지 않다는 언짢음이 내 마음에 각인되었다.


그 당시의 나이보다 몇 곱절의 세월을 살고 나서도 수채화는 나에게 그런 존재로만 남아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돈을 벌기 위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미디어가 수채화라는 판단이 들고나서 나는 오랜만에 스스로 수채화에 도전을 했다. 첫 그림은 손 풀기로 버리고 두 번째 그림에서 괜찮은 결과물이 나왔다.


'팔 수 있겠다'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런데 이 안도감, 어릴 적 미술학원에서의 내가 느꼈던 감정과 동일한 건 아니었을까?

마치 잘 해내지 못하면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못할 거란 불안감이 내 안에 자리했던 걸까.

그림을 올려서 판매가 되고 몇 안되지만 고객들로부터 칭찬의 후기를 받았다.


처음엔 무척 기뻤다. 내가 가장 자신 없는 수채화로 이런 피드백을 받은 게 고마웠다. 내가 노동한 시간 대비 가장 저렴한 페이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뿌듯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어딘가 모르게 공허해졌다.

역시 이것으로 생계는 꾸릴 수 없다는 생존 위기의식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매번 새로운 의사결정을 하며 그림을 그려야 했던 피로감 때문이었을까. 방법이 구축되어 있지 않은 반복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아이러니하지만 동시에 나는 수채화를 그리던 그 시간을 내가 많이 사랑했다는 걸 깨달았다. '팔릴만하게' 그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내 나름의 기술들을 개발하기도 했다. 남의 시선으로 볼 땐 엉망진창이겠지만, 내 나름으론 고육책이었다. 때로는 의식적인 노력 없이 무의식적인 손놀림으로 완성되는 그림들도 있었다. 어떤 과정으로 그렸는지 복기를 해보고 남에게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의식의 차원에서 파악이 되지는 않던 그림들이었다.


그리던 당시는 힘들었지만 지금의 나는 그 시간들이 행복했었다고 회상한다. 제대로 된 작업실 하나 없이, 제대로 된 책상 하나 없어 조그맣고 낮은 상에서 그림을 그리던 때는 나중에 가서는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지만, 육체의 고통을 정신의 기쁨이 무마시켜줬다.


내가 그린다기보다 '그것이 나를 통해 그려지는' 느낌이었다.


그렸던 그 시간들은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지만 다시 그리라고 하면 엄두가 잘 나지 않는 아이러니.

그것은 아마도 그 시간이 내게 준 기쁨과 고통은 동시에 존재했지만 나의 의식은 좋았던 것만 취사선택했고 무의식의 영역은 그 모든 것을 흡수했기 때문일 거라 추측해본다.


비단 돈을 벌기 위해서뿐이 아니더라도 그림 작업을 위해 내게 효율성이 요구됐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8년 전에 나는 유학이란 것을 ‘시도’라도 해보고 싶어 학비가 마련되지도 않은 채로 입학 지원 준비를 했었다.

지인의 소개로 현업작가에게 두 달 동안 포트폴리오 지도를 받았다. 사물을 바라보는 나만의 관점을 부여하는 트레이닝과 함께 내가 그리는 방식에 대한 ‘자가적 교정’을 목적으로 가이드가 이루어졌다.


당시의 나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 과제들이 주어졌다. 1주일에 그림 10개를 그려오라고 했다.

나는 당연히 개수를 채우지 못했고 그림수는 시간이 경과할수록 점점 줄어들었다. 개수가 중요한가?

그 당시에도 나는 그림 그리는 게 굉장히 싫어졌다.


물론 역시 나름의 기쁨이 있었다. 여기에 대한 에피소드는 뒤에 다루려 한다. 짧게 결론만 말해서 결국 나는 포트폴리오 지도를 조기 종료했다. 그리고 내 방식대로 그림을 그려나갔고 포트폴리오를 완성해 지원한 학교에 입학허가를 받았다.


결국 내가 그리기 싫어졌던 순간들은 모두 외부에서 나에게 어떠한 성공의 조건들로서 요구했던 것들에 대한 나의 반항심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다.


나는 어쩌면 심통이 났던지도 모르겠다. '내 방식대로' 밀고 나가기엔 세상은 녹록지 않다. 세상은 내 중심으로 돌아가지도 않고, 나는 한낱 개미와 같은 존재니 말이다.


나는 어쩌면 그림이라는 수단으로 세상의 시스템에 반격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나의 패배가 확인되었고 그로 인해 심드렁해졌던 것일지도.


그래서 이대로 넋 놓고 주저앉아만 있을 거냐고? 물론 아니다.  다만 이번엔 전략을 바꿀 것이다.

당장에 어떠한 구체적인 플랜이 있지는 않다. 그저 지금은 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행동하고, 엉켜있던 것이 있으면 풀어내려 하고 있다. 지금 당장의 나는 답을 몰라도, 나의 무의식은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걸 믿고 따라가 보려 한다.


*컬러링 이미지 출처: 도서 <윌리엄 모리스 패턴 컬러링북>, 초록비 책공방 출판

*본 포스팅의 이미지 사용은 도서 저작권자의 허락을 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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