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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 Oct 02. 2022

데일리 드로잉 챌린지를 했었다

04_챌린지의 시작, 64일간의 데일리 드로잉

사람은 어느 날 우연처럼 어떤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예전에 했던 것을 반복하거나 확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림 번아웃을 극복하기 위한 나의 컬러링 챌린지도 사실은 그 모태가 있다.

본격적으로 그림으로 돈을 벌려고 시도하기 전이었다. 하던 일을 그만둘 무렵 즈음에 나는 5분 데일리 드로잉 챌린지를 시작했다. 나 자신에게 약간의 화가 나서였다.


아무리 일로 여유가 없다고 한들, 정말 하루에 5분도 시간을 낼 수 없니?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하루에 단 5분 만이라도 드로잉을 하기로 결심했다.


챌린지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나는 누군가의 관심이 고팠던 것 같다. ‘나 여기 있어요. 이렇게 그림 그리고 있답니다.’라고 말이다.


첫날은 타이머를 맞추고 정말 5분 안에 그림을 그렸다. 엉망으로 보였지만 챌린지 용으로 만든 인스타그램 계정에 일단 올렸다. 그림을 키워드로 해시태그를 잔뜩 달아서 말이다. 그리고 곧 게시물에 ‘좋아요’가 달렸다. ‘좋아요’를 받은 만큼 나는 보상감을 느꼈다. 그것이 진심에서 나온 공감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작은 격려가 필요했다.


매일을 타이머를 맞추고 그림을 그리고 인스타에 올리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내 게시물에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한국 사람들보다는 외국인을 겨냥한 해시태그를 주로 달았기 때문에 외국인들에게서 피드백을 받기 시작했다. 내 그림에 관심을 가지고 코멘트를 달아주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하자 재미가 더해졌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5분을 넘고, 때로 10분을 넘어섰다. 그래도 너무 오래 그리지 않도록 늘 얼마나 시간을 초과했는지 다시 시간을 재고 20분이 넘어가지 않도록 절제를 했다.


무언가를 매일 하려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루에 몰아서 몇 시간이고 그리기보다 매일 단타를 찍어갔다. 소재는 눈앞에 보이는 물건들이었다. 오늘은 뭘 그릴까? 매일매일이 새롭고 흥미진진해졌다.

일하는 것 외에는 외부 활동을 잘 안 하는 집순이다 보니 주로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산 의자, 겨울철이었던 당시 나의 천연 비타민 C 보급원이었던 귤, 당시 내가 읽던 소설의 북 커버 등등.


그림 포스팅 개수가 늘어날수록 팔로워 수도 늘어났고, 내 그림을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친구들'이 생겼다. 그렇다, 나에게는 친구들이었다.


인스타 활동을 통해 돈을 벌고자 하는 목적이 없었기에 나는 아트 커뮤니티에서 서로의 그림에 대해 피드백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온라인에서 셀링을 하던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이렇게 매일 포스팅하면 좋은 비즈니스가 될 거야.

나는 답했다. 아니, 난 내 그림을 비즈니스로 삼고 싶진 않아. 돌이켜보건대 당시의 나는 비즈니스 감각이 정말 제로였다.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영역만큼은 자본주의에 찌들게 하고 싶지 않던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가 당시 그렸던 그림들은 '잘 그리려고 하지 않은' 그림들이었다. 나는 드로잉을 할 때 보통 연필로 스케치를 하고 그다음 단계를 밟곤 했는데, 이 챌린지를 할 때는 그럴 시간이 채 없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펜으로 밑그림 없이 과감하게 라인 드로잉을 했다. 밑 스케치를 한 그림보다는 못 그렸겠지만 나는 그 자유로움이 좋았고, 선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즉흥성도 개발되었다. 가지고 있던 도구 중 거의 다 써서 색이 잘 나오지 않는 붓 펜으로 음영을 넣어보았다. 인스타에서 많이 들었던 호평 중 하나가 이 붓 펜으로 넣은 음영이 너무 마음에 든다는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 만족스러운 것은 기쁘게도 남들 눈에도 좋아 보였다.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쏟는 시간이 점점 늘어가서였을까. 나는 조금씩 이 챌린지가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관심이 그리워 굳이 인스타에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나는 효용성의 관점에서 내가 인스타그램에 너무 시간을 빼앗기는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돈도 안 되는 일인데, 라며 말이다.


애초에 얼마 동안 이 챌린지를 하겠다, 이 챌린지를 통해서 나는 어떤 것을 이루겠다는 구체적인 목표 없이, 단순한 자극점에 의해 시작되었던 나의 행보는 그렇게 64일 만에 그 막을 내렸다.


활동하던 계정에 이제  이상 포스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그림 챌린지는 계속 이어갈 것이라는 말을 남긴  인스타 활동을 중단했다. 그림은 계속 이어 나갔다. 어쩌면 이전보다  디테일하고 밀도 있는 그림을 그려 나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왠지 재미가 없어졌다. 그림을 그리고 나서 사람들과 공유하던 그 시간을 내가 굉장히 좋아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도 난 지금 하던 일을 관두고 내 사업을 하려 하고, 이건 그냥 취미활동이었잖아.

스스로를 합리화해보려 해도 인스타에서의 친구들이 그리워 그림을 올리지는 않아도 종종 방문하여 인친들의 근황을 보곤 했다.


결국 나는 그때 내가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었던 ‘좋아하는 영역’을 내 비즈니스로 끌어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팔리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잘 그리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 결과 번아웃이 왔지만 덕분에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고, 실패를 통해 배운 것들이 많았다.


나는 드로잉 챌린지를 하면서 많은 기회들을 봤다. 저건 나와는 관계가 없어, 나는 저런 건 안 할 거야. 했던 많은 것들이 '나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을 깨닫는데 까지는 그 뒤로 몇 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말이다.


철저히 실패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있다.


바닥에 떨어져서 뒹구는 과일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내가 이제는 조금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번 챌린지를 통해 이전엔 놓쳤던 것들을 하나씩 주워 담고 싶다. 급할 것도 없고, 힘줄 것도 없다. 그 시절의 나처럼 즐기면서 가보고 싶다. 효율성은 잠시 내려놓은 채로.


*컬러링 이미지 출처: 도서 <윌리엄 모리스 패턴 컬러링북>, 초록비 책공방 출판

*본 포스팅의 이미지 사용은 도서 저작권자의 허락을 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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