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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Apr 15. 2020

[Agatha Christie 전집], <황금가지>

'추리소설'은 나의 힘!

'추리소설'은 나의 힘!
-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황금가지>, 2002. / <해문>, 1985.



"열 꼬마 병정이 밥을 먹으러 나갔네.
하나가 사레들었네. 그리고 아홉이 남았네.
아홉 꼬마 병정이 밤이 늦도록 안 잤네.
하나가 늦잠을 잤네. 그리고 여덟이 남았네.
...
일곱 꼬마 병정이 도끼로 장작 팼네.
하나가 두 동강 났네. 그리고 여섯이 남았네.
다섯 꼬마 병정이 법률 공부 했다네.
하나가 법원에 갔네. 그리고 네 명이 남았네.
네 꼬마 병정이 바다를 향해 나갔네.
훈제 청어가 잡아먹었네. 그리고 세 명이 남았네.
...
두 꼬마 병정이 볕을 쬐고 있었네.
하나가 홀랑 탔네. 그리고 하나가 남았네.
한 꼬마 병정이 외롭게 남았다네.
그가 가서 목을 맸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네.'"

- Agatha Christie,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1939), 김남주 옮김, <황금가지>, 2002.


열 명이 찾아간 '병정섬'에 다섯 명이 남았을 때, 전직 '교수형 판사' 로렌스 워그레이브가 권총에 맞아 죽고 "네 명이 남았다."
닥터 암스트롱이 실종되었다가 "훈제 청어한테 잡아 먹힌" 채 발견된 후 베라 클레이슨 양이 필립 롬바드 장군을 권총으로 쏘아 "홀랑 태우고",
종국에 혼자 남은 섬에서 '뭘 좀 먹을까' 생각하다가 피곤해져서 "목을 맸을 때", '병정섬'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사실은 '인형 하나'가 남아 있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처음 읽은 건, 중학교 2학년 때인가 나보다 한 살 많은 동네 형과 그 동생의 집 어두운 방에서였다.
오락실에서 '더블 드래곤'을 구경하다가 할 일 없어 찾아간 그 형제의 방에서 <해문 출판사>판 그 책을 발견하고는 제목에 홀려 꺼냈고 빌려왔다.
그리고 처음으로 '장편소설'을 읽었다.
하나씩 사라지는 그 인형이 '한 꼬마 두 꼬마 인디언'이었든, '병정 인형'이었든 중요하지 않다. 애거서 크리스티 원작의 제목은 [Ten Little Niggers]였다는데, 불길한 이야기에 '흑인 인형'을 끌어들인 것이 그녀의 '인종차별성'이었을지, 아니면 그냥 '원주민'의 표현이었을지는 알 길이 없다. 단지, 영국의 '자장가'를 모티브로 한 최초의 '밀실살인' 추리소설이라는 내용이 중요하다.

초등학교 때, 한 친구의 집에는 40권인가 50권 하는 검은색 표지의 얇은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 단편선' 한 질이 있었다. 나는 가난한 엄마아빠한테 사달라고 할 생각은 못하고 그 친구한테 한 권, 두 권 빌렸다. 대부분 반납했지만, 그 중 인상깊었던 한 권, 아마도 로버트 스티븐슨의 [보물섬] 초반부 '빌리 본즈' 선장의 죽음을 연상시키는 '늙은 해적 살인사건' 이야기는 잃어버린 척 하고 돌려주지 않았다. 첫 '도둑질'이었는데 이상하게 친구에게 미안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 친구와는 멀어졌다.
약 10년 후 고등학교 친구 중호로부터 당시에는 귀했던 '북두의권'과 '소년공작왕' 일본 해적판 전집을 빌려서 보관하다가 못 돌려줬을 때는 정말 너무도 미안했다. 내가 안 돌려준 게 아니라 군대 갔을 때 어머니가 치워버렸으니. 이제는 더 말 안하지만,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친구 중호한테 계속 미안하다.
아무튼, '셜록 홈즈' 시리즈는 내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처음으로 '동화책' 아닌 '소설'을 단편이지만 시리즈로 읽은 경험이었고 지금도 '셜록 홈즈' 하면, 그 단편의 짧은 흑백 삽화들이 아른거린다.

그것도 잠시, 중학교 올라가서까지 빈주머니로 오락실을 전전하던 내게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일종의 '신의 계시'였다. 이제 오락실 갈 돈 모아 "책 좀 읽으라"는.
중학교 시절에는 용돈 모아 <해문 출판사> 추리소설 시리즈를 사서 모으는 게 취미였고, 그 장편들을 읽는데 익숙해져 갔다. 물론 지금도 그 짧은 삽화들이 가끔 떠오른다.
당시 다양한 해외 추리소설가들을 짧게나마 섭렵하기도 했지만, 지금 남는 건 역시 코넌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다.

'셜록 홈즈'는 내게 '단편'을 읽는 힘을, 탐정 포와로와 미스 마플, "그리고 아무도 없는" 밀실살인자는 '장편'의 바다에서 헤쳐나오는 힘을 주고 떠났다.

우리 '추리소설협회' 작가들도 뛰어났을 테지만, 고등학교 올라가서는 더 이상 '추리소설'에 흥미가 없어졌고, <해문 출판사> '컬렉션'은 내 관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더 나이가 들어, 우연히 오래된 흑백영화, [오리엔트 특급살인]을 보고는 감회에 젖어 어릴적 읽었던 작품들만 골라 <황금가지> 판으로 한 권, 한 권 사서 다시 읽어 보았다.
1916년 크리스티의 첫 작품,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만큼은 오래된 <해문> 판으로 사고 싶었고, 여전히 [오리엔트 특급살인]의 대륙횡단 기차의 흔들림을 같이 느꼈으며, [나일강의 죽음(메소포타미아 살인)]에서는 내 잊혀진 꿈, '고고학자'가 되어 고대유물과 사건을 쫓고 있었다.


히가시노 게이코, 미야베 미우키 부류의 일본 추리소설들이 성인들에게 그나마 책을 읽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어린 나를 '책'과 '이야기'의 세상으로 초대해 준 '코넌 도일 경'과 '애거서 크리스티 경'에게 다시금 깊은 경의를 보낸다.

***

-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황금가지>, 2002. / <해문>,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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