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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용원 Jul 09. 2022

[난처한 미술이야기](2016~2022) - 양정무

'르네상스'의 힘!

'르네상스'의 힘!

- [난처한 미술이야기] 1~2, 그리고 7권, 양정무, 2016~2022.





"어떻게 보면 16세기 르네상스인들이 그리스, 로마의 '고전'에 집착한 것은 과거로 돌아가려는 현실 도피가 아니라, 불안정한 현실에서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고전'이라는 창을 통해 바라본 것으로 볼 수 있어요. 이런 연극 같은 미술도 새로운 인간상을 추구하기 위한 고민의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그 고민은 결국 '르네상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서양 근대의 저변에 배어 있는 정서가 되는 겁니다."

- [난처한 미술 이야기 7], <3. 매너리즘과 후기 르네상스>, 양정무, 2022.



1453년,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 메흐메드 2세가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대형 대포로 함락시켰을 때, 수많은 비잔틴 문명이 탈주하면서 서방의 그리스와 이탈리아 반도로 유입되었다.

동로마 제국의 멸망은 '르네상스(Re-naissance:부흥/復興)'의 서막이 열리는 사건이었다.


무엇의 '부흥(復興)'인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의 '부활(復活)'이다.

비잔틴 제국으로도 불리는 동로마 제국은 1천년 이상 유지되어 온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할된 후 로마를 중심으로 했던 서로마 제국이 무너진 기원후 5세기 이후로도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1천년 가까이 더 살아남아 로마 제국의 문명을 이어왔다. 이슬람 투르크 제국에 의해 점령당한 후 동로마 비잔틴 지식인들과 장인들이 유럽 지역으로 탈출하면서 유럽의 중세 기독교 문화에 균열이 시작된다.

'르네상스'는 고대 그리스-로마 '고전' 문명의 '부활'이자 '부흥'이다.

또한, 현재도 진행형인 문화운동이다.





"네안데르탈인이 멸종되어가고 있을 때, 우리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는 대대적인 미술 작품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석기도 그 시점에 발맞춰 급격히 발전했지요. 이걸 일컬어 '인지 혁명'이라고 부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저는 혹시 이와 같은 발달, 정확히는 '미술'의 출현에 현생 인류 생존의 비결이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호모 그라피쿠스(Homo Graphicus)', 즉 '미술하는 인간'이었기에 살아남았던 게 아닐까 하는 겁니다."

- [난처한 미술이야기 1], <1. 원시미술>, 양정무, 2016.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인 미술사학자 양정무 선생은 2016년부터 [난처한 미술이야기]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출간하고 있다. 시각예술로서의 미술은 이론적으로 접근한다면 오히려 재미가 없어지는 '난처한' 상황이 될 수 있으므로 [난생 처음 한 번 공부하는(난처한) 미술이야기]라는 제목 아래 원시부터 근세 16세기 '르네상스'까지 서양 문명의 역사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여 현재까지 7권으로 나온 미술사 대작이다. 17세기 바로크와 18세기 로코코, 19세기 신고전주의와 리얼리즘 및 낭만주의 등을 거쳐 20세기 현대미술은 앞으로 예고되어 있으므로 이후 몇 권이 더 나올지는 알 수 없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우리 둘째 딸 송은규양의 꿈은 화가였는데, 어릴적 혼자 어린이 공룡백과사전 등을 보며 '고고학자'를 꿈꾸기도 했던 아빠인 내가 '미술사학자'를 해보라고 권유하면 싫다고 손사래를 친다. '예술'로서 '그림'은 좋지만 '이론'으로서의 '미술사'는 반갑지 않단다. 한편, 책읽고 글쓰고 잘난체 하기 좋아하는 나는 '이론'으로서 '미술사'는 가장 좋아하고 환호하는 영역이다. 아빠한테 칭찬 받으려고 본인은 '역사책'을 매우 좋아한다며 책 읽는 아빠 앞에 앉아 그림으로 가득한 역사만화책을 항상 펼쳐드는 우리 막내 송혜규양은 차치하고라도, 공부는 뒷전이지만 체육 좋아하는 우리 아들 송민규군에게 체육은 '이론'으로도 즐거운 일이고, 또한 누구에게는 고전 클래식 음악은 '이론'으로도 익숙한 일이듯, 나에게는 '미술사' 이론이 감히 '취미'다.



지난해 [벌거벗은 미술관](2021)이라는 책에서 'Seria Ludo', 즉 '심각한 문제도 놀면서 풀자'라는 라틴어 건배사를 알게 해준 저자 양정무 교수는 미술사를 통해 '인문성(Humanity)'의 부활과 실패, 그리고 부흥의 영속성을 설명한다. '예술'을 이르는 'Art'는 라틴어 'Ars'를 어원으로 하고 'Ars'는 고대 그리스의 'Techne'가 어원이다. 즉, '미술(Fine Art)'은 좋은 '기술(Techne)'에서 유래한다. 그림이든 조각이든 건축이든 인류가 시작한 일체의 '시각 예술(Visual Art)'은 '좋은 기술(Fine Technic)'에서 기원하였고, 이 '기술'과 '미술'의 목적은 '인문성'의 시각화다.


https://brunch.co.kr/@beatrice1007/228


저자의 [미술이야기] 대작은 그렇게 원시 미술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이 장대한 미술사 속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를 넘어 '호모 그라피쿠스(Homo Graphicus)'가 된다.

300만년 전 만들어진 주먹도끼와 1만년 전 빗살무늬 토기는 실용적 '기술'의 도구이기도 했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원시 인류의 미적 감각이 투영된 미술 작품이기도 하다.


기술을 발명하고 전수하는 능력은 인류 공동체 역사의 주요한 요소가 되었고 당연히 사회의 발전과 함께 사피엔스는 지금껏 진화했다. 언어는 정교해졌고 문자가 발명되기 전에는 가장 단순한 시각화 작업인 그림, 즉 '미술'이 그 매개가 되었다. 4만년 전 그려진 동굴 벽화는 원시 인류의 꿈과 협력의 사회 현실이 담겨져 있다. 고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초기 문자와 동아시아의 고대 한자가 그림과 같은 상형문자인 이유가 그것이다. 언어가 그림과 조각으로, 이것들이 다시 문자로 진화하는 장구한 과정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인간'인 '호모 사피엔스'는 '미술하는 인간'인 '호모 그라피쿠스'로서 지구의 다수 종이 되어 이 세상을 지배했다. 물론 자연의 입장에서 인류의 지배기간이 찰나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그림과 조각이 세상을 공부하는 과정이었고 세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이론이었다. 그 옆 동네 메소포타미아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도시국가와 제국, 법전과 유일신교 등이 시작된 인류의 '본사(本史)'와도 같은데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 제국의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전체를 파괴한 이유 또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성대함을 반증한단다. 알렉산더 제국의 헬레니즘 문화와 같이 역사상 제국들은 '미술' 즉 그림과 조각, 웅장한 건축물 등으로 문명의 발전을 과시했고 민중들을 규합했다. 다수 민중들이 문자를 이해하고 책을 읽게 되는 시대는 15~16세기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혁명 이후에야 가능했으니 그 전까지 '까막눈' 민중들은 '미술'을 통해 사회 공동체를 만들고 유지해 나갔다.

과연 수백만 년에 걸친 '호모 그라피쿠스'의 역사는 유구하다.





"... 곰브리치는 그리스 미술이 바로 그 (다양성의) 주변부 문화였다고 주장합니다. 시도해보고 잘 안되면 고쳐나가는 게 바로 그리스 문명, 나아가 서양 문명의 근간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그런 면에서 이집트와 그리스가 차이 난다는 주장이기도 하고요."

- [난처한 미술이야기 2], <2. 그리스 미술>, 양정무,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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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1950)에서 그 무어라 규정할 수 없는 '모더니즘'을 예술의 본질로 보고 있지만, 그 근원에는 '미술가'들의 혁신이 있고 그들 유럽 문명의 뿌리는 고대 그리스 '인문성'이라고 보았다. 곰브리치는 그리스 예술을 '주변부' 문화라고 보았다는데, 끊임없이 실험하고 수정하고 변화발전하는 특성으로 내린 규정이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 인접한 해양국가 그리스는 크레테-미케네-그리스 문명을 이어가며 이들 양대 문명을 흡수하고 모방하는 과정에서 결국 본인들만의 문화로 발전시키게 되는데, 실로 고졸기 이전 그리스 조각들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그것들과 매우 흡사하거나 훨씬 조악하다. 그러다가 독자적으로 발전된 이 그리스의 유연한 '주변부' 문화는 고대 로마 제국으로까지 계승되었는데, 우리가 많이 본 그리스 조각상들은 사실 그리스 청동상들을 로마인들이 똑같이 만든 대리석 모작들이다. '트로이'의 후손들이라 자처했던 로마인들은 프로메테우스의 손자 헬렌의 후예라 생각했던 그리스인들의 미술을 따라했지만 로마인들만의 방식으로 계승했다. 트로이의 복수로써 로마인들은 그리스 문명을 대대적으로 파괴했을 수도 있겠지만 서양 유럽인들의 '고전주의' 인문성의 모델은 연속성을 매개로 하여 '그리스-로마' 문명이라 불린다.





"라파엘로의 죽음은 '르네상스' 전성기, 즉 '하이 르네상스'의 종말을 뜻합니다. 하이 르네상스를 이야기할 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이 원숙하게 자리잡는 시기, 예를 들어 <최후의 만찬>이 만들어진 때(1495~1498)부터 시작해서 라파엘로가 사망하는 1520년까지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이 르네상스는 대략 30년 정도입니다. 라파엘로의 때 이른 죽음은 시대 구분의 기준이 될 만큼 미술사의 변곡점을 가져온 것이지요."

- [난처한 미술이야기 7], <1. 로마 르네상스>, 양정무, 2022.



르네상스의 시작은 마사초의 원근법과 브루넬리스키 돔지붕 성당, 보티첼리의 비너스 등과 함께 시작했지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다양한 연구와 그림, 미켈란젤로의 조각과 대형 천장화의 발전 및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대결 등을 통해 미술과 미술가의 지위를 연예인급으로 승격시켰고 후기 요절한 천재 라파엘로와 노련한 미켈란젤로의 2차전으로 미술계의 '하이 르네상스(High Re-naissance)'를 구가한다. 교황과 군주 등 권력자의 친구이자 당대 최고의 셀럽이었던 미켈란젤로는 미술가의 지위를 높이면서 장수한 만큼 응큼했다. 예술가로서 자존심은 하늘을 찔렀지만 '하이 르네상스' 1차전에서 늙은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극도로 경멸한 것처럼 2차전에서는 젊은 천재 라파엘로를 지나칠 정도로 시기했다. 라파엘로 사후 궁극의 르네상스 상징이 된 만년의 미켈란젤로가 세속권력과 신교의 도전에 맞서 구교인 가톨릭 교황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그린 시스티나 성당의 제단화 <최후의 심판>은 가톨릭 주교들의 비난을 받고 성자들의 누드에 옷을 덧칠하기도 했다. 물론 대가인 미켈란젤로의 생전이 아닌 사후에 그의 제자에 의해서지만.


https://brunch.co.kr/@beatrice1007/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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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의 죽음으로 꺾인 로마와 피렌체의 '르네상스'는 이후 '매너리즘'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고, 마지막 북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티치아노의 전원미술과 틴토레토의 바로크식 구도의 예고 등으로 진화한다. 양정무 교수가 르네상스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소개하는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는 고전 그리스-로마 건축을 중세식 바실리카 양식과 결합하여 현대의 미국 백악관이나 한국 대학 본관의 양식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고전'을 통해 '인문성'을 부흥시키고자 했던 '르네상스'의 시도와 실패, 그리고 재부흥은 '미술'이 존재하는 한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다.

'고전주의'는 서양 제국의 권력자들의 정치예술이 아닌, 원시로부터 수백만 년간 이어져 온 '호모 그라피쿠스', 즉 '미술하는 인간'으로서 인류 전체의 꿈이다.



그것이 바로,

'르네상스'의 힘이다.


***


1. [난생 처음 한 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 1 - 원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미술], 양정무, <사회평론>, 2016.

2. [난처한 미술이야기 2 - 그리스 로마 문명과 미술], 양정무, <사회평론>, 2016.

3. [난처한 미술이야기 7 - 르네상스 완성과 종교개혁], 양정무, <사회평론>, 2022.

4. [벌거벗은 미술관 - 양정무의 미술에세이], 양정무, <창비>, 2021.

5. [서양미술사(The Story of Art)](1950), 에른스트 곰브리치, 백승길/이종숭 옮김, <예경>, 2003.

6. [레오나르도 다빈치](2017), 월터 아이작슨, 신봉아 옮김, <북이십일 arte>,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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