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송세월의 의미
작가 김훈을 존경한다. 문장가 김훈을 감탄한다. 사실 소설보다는 산문집을 좋아한다. 일상의 언어를 삶에 투영하는 그의 노력을 사랑한다. 작가의 책을 읽으려면 각오가 필요하다.
문장과 문장 사이가 팽팽하게 당겨진 줄자처럼 긴장감이 든다. 불필요한 껍데기가 없고 과한 수사사 제거된 뼈다귀가 남은 글이 단어와 단어 사이를 긴장되게 잡아당기는 느낌이다.
왜 <허송세월>일까? 일생의 업적과 성취만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늘 글 앞에 서있는 인생이 허송세월 일수 있을까로 시작한 책이다. 작가의 인터뷰에서 김훈은 말한다.
"허송세월'의 특별한 의미는 없다. 삶에 대한 공허함이 누구에게나 있는 법인데 나에게 그 표현이 곧 <허송세월>이라는 느낌에 함축했을 뿐이다.
뒤늦게 위스키의 맛을 알게 된 노회 한 늙은이가 술이 목에 넘어가는 순간 '이것이구나', '왜 이 좋은 걸 모르고 살았나'를 느끼며 지난날은 모두 <허송세월>이었구나 와 같은 감탄과 탄식의 교차가 <허송세월>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작가의 가치관과 사유를 통과한 수많은 관찰이 밀도 있는 언어와 문장으로 축적되어 있는 것이 바로 <허송세월>이었다. 글을 전개함에 있어서 중언부언하기 싫고 군더더기 없는 글이 원칙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책 속에서의 주제는 그동안 견지한 삶에 대한 태도를 강조해서 기술하고 있다.
밥벌이의 고단함, 노동의 신성함, 젊음의 예찬, 자연의 거대함과 영속성을 여전히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서 이야기한다.
조금 더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한 줄을 읽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던 문장들이 익숙해져서 인지 수월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70 노인이라는 표현에서 느껴지는 어찌할 수 없는 세월의 변화, 동년배들의 죽음 앞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며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작가에게도 삶의 서사에서만큼은 한낱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음을 드러낸다. 오히려 더욱 인간미가 있고 성숙함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책의 주제는 광범위하다. 관찰과 발견, 소설 <하얼빈>에서 미처 풀어내지 못한 안중근의 종교 관련 이야기, 시대상의 문제나 정치의 후진성에 대한 생각이 뒤죽박죽 섞여 있지만 각장의 글들은 언제 읽어도 가지런하다.
글을 짓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나에게로 다가온 경험을 쓴다는 작가는 기존 출간한 책들이 졸작이어서 다시 꺼내 읽지 않는다는 말을 여러 인터뷰에서 일관되게 말한다. 처음에는 허세처럼 다가왔지만 한편으로는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마음 한 편의 다짐처럼 느껴졌다.
예전에 쓴 책들은 낡았고, 수명을 다했고, 고쳐 쓸 엄두가 안 난다고 말한다. 책을 하나 낼 때마다 마지막이라는 다짐을 반복하지만 또 쉬다 보면 써야 할 거리들이 생기고 책상 앞에 앉아서 연필을 잡는다.
'말을 하더라도 말이 뜻을 저버릴 것 같아서 미덥지 못하고, 이 귀머거리들의 세상이 알아듣지 못할 것 같아서 머뭇거리는 사이에 말들은 흩어져서 할 말이 없어진다. 글을 쓰다가도 이런 쓰나 마다 한 걸 뭐 하러 쓰는가 싶어서 그만둔다.'
요즘 작가의 생각이 함축된 문장처럼 느껴졌다. 대게는 이런 문장을 놓치지 않도록 메모하고 글로 옮기지만 쓰나 마나 한 것들이 더욱 많은 세상의 한탄처럼 들린다. 여생에 책 3권 정도는 더 쓸 수 있고, 쓰고 싶고, 나아가고 싶지만 주제는 어떤 것이 될지 스스로 로 알지 못한다며 여운을 남긴다.
몇 장 남지 않은 에세이를 아주아주 아껴 있고 서재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꽂아둘 생각이다. 언젠가 내 삶이 허송세월이라고 여겨지는 시절이 오면 나도 위스키로 마른 목을 적시며 이 한 권의 책을 꺼내 일고 싶다. '아 이 맛이구나'를 함께 느껴보고 싶다.
앞으로도 작가의 <허송세월> 속 사유를 응원한다. 그 사유가 또 다른 책으로 내게 흘러들어올 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