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으로 사건을 기록하고 정리하라

by 내 마음 맑음

내가 작성한 진술서 사진을 찍어두었다. 당시 어수선한 상황에 제대로 진술하지 못했고, 경찰차 트렁크 위에서 떨리는 손으로 조급하게 써 내려간 진술서를 읽는다고 해도 경찰들이 이해할 것 같지도 않았고, 왠지 경찰서에 소환되거나 다른 형태로든 다시 자세히 진술을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후로도 몇 명의 다른 경찰들이 나에게 전화를 해서 사건의 자세한 상황을 물었고 나는 그때마다 갑작스러운 전화에 갑자기 사건을 복귀해서 진술을 해야 했기 때문에 만약 내 진술의 팩트가 계속 달라지거나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면 오히려 내가 오해를 받거나 불리한 입장에 놓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술이 한두 번으로 끝날 것 같지 않은 강한 예감에 <스토킹 범죄 피해 관련 추가 진술서>라는 제목으로 문서를 작성했다.


인터넷을 통해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공부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항상 근본부터 접근하고, 전체적인 콘텍스트를 공부하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나의 성향이 묘하게 이 사건에 잘 맞은 걸까? 스토킹은 최근 핫이슈이기 때문에 경찰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시험을 잘 보려면 아주 중요한 내용임을 강조하는 강의를 열심히 공부했다. 시험에 반드시 나올 거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경찰이 되기 위해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법률 내용, 경찰이 된 후에도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법률 내용의 강의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범죄심리학자, 정신과 전문의, 형사들의 스토킹 피해와 예방 그리고 법률과 대응 관련 인터뷰들을 찾아보며 공부했다. 이러다 나 경찰시험 보는 건 아닌지, 점점 비자발적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자체 제작 추가 진술서에는, 내가 처음 적었던 진술서의 사진을 첨부했고, 양식에 맞춰 이미 1차 진술서 작성을 했으나 추가적으로 부족한 내용을 보충하고 더욱 구체적인 정보 제공을 위해 기록함을 명시했다. 피해일시, 신고 일시, 사건 장소의 사진 첨부, 피의자의 인상착의, 피해자의 피해경위, 스토킹처벌법의 목적,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현 사건이 스토킹 행위에 해당하는 이유, 피의자가 한 행위 중 스토킹 행위에 해당되는 내용,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피의자가 한 행위가 스토킹 범죄에 해당하는 이유, 경찰서 첫 신고 일자와 신고 내용 그리고 경찰의 안일한 대응에 관한 내용, 경찰이 스토킹 신고를 받았을 때 해야 할 절차와 의무, 피의자가 잠정조치를 불이행했을 시의 처벌 내용, 이것 때문이라도 반드시 피의자를 찾아서 경고조치를 해야 한다는 주장, 피의자의 처벌에 대한 피해자 의견, 추가적으로 알게된 근처 편의점 직원들의 스토킹 범죄 정황과 정확한 사건 경위 등 을 상세히 워드 문서로 기록했다.


이렇게 기록한 의도는 먼저 내 기억이 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경찰이 매번 진술을 요구할 때마다 일관되게 피해내용을 주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범죄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일까, 나도 내 기억을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면 안 된다고 판단했고, 내 기억이나 진술이 불안전하거나 불명확하다는 느낌을 경찰에게 주면 내가 분리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경찰의 갑작스러운 연락이 오면 언제든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프린트를 해두고 내용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다 떠나서, 내 기억도 오락가락할 텐데 일단 정리해 두면 내가 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건 초기, 피해자로서의 마음가짐이나 멘탈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 스스로 명확히 했기 때문에 피해사실을 부끄러워하거나 나를 자책하는 등의 감정적으로 흔들림 없이, 오로지 피해자로서의 피해사실을 당당하게 밝히고, 피의자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경고와 처벌을 바란다는 의견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내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거나 모호한 태도를 가지면, 이미 다른 수많은 일들로 바쁜 경찰도 이 사건 수사를 계속 진행할 명분을 잃을 것이라 생각되었고, 내가 명확하게 그 명분을 제공해 줘야 수사가 계속 진행되고 사건이 잘 마무리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즉, 피해자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내가 법률 내용과 행정 절차를 잘 알아야지만 대응도 잘 할수 있다고 판단했다. 경찰에게 이러한 확고함을 보여주는 것도, 내가 얼마나 간절하게 관심을 갖고 이 사건 수사를 지켜보고 있는지 알리기 위함도 있었다. 싸우기로 한 이상 끝까지 간다고 각오했고, 내가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과 피의자의 처벌과 피해자의 권리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을 대화와 문서를 통해 경찰에게 명확히 알렸다. 쉽게 말하면, '나 그렇게 어리바리하지 않고, 법적인 내용 다 알고 있고, 사건도 문서로 자세히 다 정리해 뒀고, 필요하면 유능한 변호사도 알고 있으니까, 이 사건 쉽게 넘어갈 생각하지 마라'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흐지부지 되게 둘거라면 시작도 안 했다. 나도 바쁜 사람이다.


왜 불안한 예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을까? 그 후로도 경찰서가 2회 변경됐고, 진술서만 3회를 썼고, 내 사건 담당자가 4회 변경되었고, 대면 비대면으로 진술을 물어오는 경찰이 최소 5명 모두 다른 경찰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똑같은 진술을 수도 없이 해야 했기 때문에, 이쯤 되면 내가 지쳐서 그냥 나가떨어지라는 경찰의 계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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