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의 오페라《라 보엠 La Bohème》을 보고
여러 가지 문제를 치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 이런 글을 쓰는 일조차 사치처럼 느껴진다.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삶의 전부가 된 듯한 감각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어디쯤 놓여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런 나에게 소중한 은인이 건넨 《라 보엠》 티켓은 단순한 초대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현실이라는 무거운 지면 위에 잠시 떠오를 수 있는 작은 섬 같았다.
《라 보엠》을 보러 간 이유는 사치를 느끼기 위해서였다. 현실을 잠시 벗어나는 사치, 내 삶의 문제들이 나를 붙잡지 못하는 시간의 틈. 그 순간만큼은 나를 괴롭히는 목록들, 해결해야 할 일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다른 세상에 발을 들여놓고 싶었다. 오페라 극장의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은 마치 낯선 세상으로 이동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무대 위 첫 음이 울리는 순간 나는 조용히 현실에서 이탈했다. 삶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로 가득 차있지만, 그 사이에서 잠시만 다른 세계로 건너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다시 돌아올 힘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작은 사치가,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하는 숨 한 번이었다.
푸치니의《라 보엠 La Bohème》은 가난하지만 뜨겁게 살아가는 청춘들의 사랑과 우정, 예술과 비극을 한 편의 서정시처럼 담아낸 작품이다. 시대가 달라져도 우리 마음을 깊게 울리는 이유는,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그 청춘의 결이 지금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 종합화 50주년을 맞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과 라 스칼라 극장 아카데미가 함께 완성한 이번 공연은, 그 자체로 청춘과 예술에 대한 헌정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익숙하게 써온 ‘보헤미안’이라는 말이 이 오페라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세상은 그들을 가난하다고 규정하지만, 정작 그들의 영혼은 누구보다 광대하고 뜨거웠다. 매서운 현실의 숨결 앞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꿈과 예술을 위해 자신들의 마지막 온기마저 기꺼이 태워 올리던 사람들. 어떤 것으로도 꺾을 수 없는 자유와 순수한 열정, 그것이 바로 ‘보헤미안’이다. 어쩌면 이것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삶은 여전히 가혹하지만, 그 가혹함 속에서도 노래하고 사랑하며 웃음을 지켜내려는 마음. 《라 보엠》은 바로 그 빛을 다시 불러들이고, 잊고 있던 우리 내면의 온기를 조용히 되살려준다.
겨울 파리에 있는 보헤미안들의 다락방, 낡았지만 따뜻한 촛불 하나가 흔들리고, 얼어붙은 창문 너머로 센 강의 밤안개가 비친다. 곰팡이가 피어난 벽에도 웃음과 농담이 가득한 작은 방, 따뜻한 붉은 스카프 하나로도 희망을 나누던 청춘의 방이다. 예술을 위해 가난을 선택한 청춘들. 그들은 자유롭지만 동시에 불안하다. 밥은 없어도 시는 쓰고, 불은 꺼져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파리의 겨울은 언제나 너무 아름답고, 그래서 더 잔인하다. 크리스마스의 불빛이 반짝이는 거리는 꿈을 약속하는 듯하지만, 그 뒤편 좁은 다락방에는 가난과 추위가 젊은 영혼들을 조여 온다. 라 보엠은 그 다락 속에서 자신의 심장을 불태우며 살아가는 청춘들을 비춘다. 그들은 웃고, 사랑하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서로를 끌어안으며 매일을 기적처럼 견딘다. 그러나 그들의 기적은 언제나 짧다.
사랑은 겨울 난로 위의 불꽃처럼 눈부시지만, 바람이 스치면 금세 흔들린다. 로돌포와 미미의 사랑은 그 뜨거움 때문에 더 슬프다. 아무리 서로를 갈망해도, 가난한 방의 냉기는 그 열정을 삭이고, 병과 현실은 그들의 손가락 사이를 잔인하게 파고든다. 사랑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붙잡아둘 힘이 사라져 버린다.
예술 역시 그렇다. 그들은 시를 난로에 던져 몸을 덥히고, 그림을 태워 밤을 견딘다. 예술은 그들의 가장 귀한 것이지만, 동시에 현실에서는 가장 쓸모없는 것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시가 타오르는 순간, 그림이 불꽃 속에서 흔들리는 순간, 우리는 그들이 얼마나 숭고하게 버티고 있는지를 목격한다. 예술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예술을 태우는 삶. 그것이 바로 보헤미안의 삶이고, 푸치니가 낭만보다 깊이 사랑했던 인간의 모습이다.
겨울은 오래전부터 이 다락방의 친구였다. 로돌포는 쓰다 만 시구가 적힌 원고 뭉치를 손에 들었다. 그 종이 한 장 한 장은, 지난 계절들 속에서 가난보다 더 뜨거운 가슴으로 적어 내려간 언어들이었다.
“예술이여, 오늘만은— 미안하다.”
그는 중얼거리며 시집을 난로 속으로 밀어 넣었다. 종이는 예술을 불태우고, 예술은 다시 열기가 되어 방 안을 덥혔다.
마르첼로는 자신의 스케치북을 넘겼다. 연필 아래에서 수없이 태어난 여인의 굴곡, 겨울 파리의 지붕들, 웃음과 한숨 사이에서 태어난 선들이 하나씩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차라리… 그림이 불쏘시개가 되어 주는 게 낫군.”
농담처럼 말했지만, 목소리의 끝에는 어딘가 찬 기운이 묻어 있다. 그림 속 풍경들이 하나 둘 불길 속에서 일렁였다. 마치 마지막으로 살아 움직이려는 듯.
그날 밤, 로돌포의 시와 마르첼로의 그림은 한 장의 예술로 남지 못하고, 두 사람의 몸을 잠시 덥히는 열로 사라졌다. 주인공 미미와 로돌프의 사랑 이야기보다 이 장면이 나에게 더 깊게 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청춘은 크리스마스처럼 화려하지만, 파리의 겨울은 현실처럼 차갑고 냉담하다. 로돌포와 미미는 뜨겁게 사랑하지만, 가난과 병이라는 현실 앞에서 수없이 흔들리는 불안한 사랑을 한다. 청춘과 예술은 아름답지만, 겨울처럼 냉담한 현실의 차감움은 화가와 시인이 마음속에 품은 열정을 시험한다.
푸치니 《라 보엠 La Bohème》 4막, 미미가 죽기 직전, 친구들이 그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마지막 소지품을 팔러 나가는 장면은 작품 전체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철학적인 순간 중 하나다. 특히 콜리네가 코트를 벗으며 부르는 ‘Vecchia zimarra(오랜 코트여)’ 는 《라 보엠》의 숨겨진 명장면이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미미가 죽기 직전의 다락방, 미미는 이미 숨이 가빠진 채, 따뜻한 손길에 기대어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방 안은 너무 조용하다. 누군가의 억눌린 울음, 난로에 남은 잿빛 장작 소리만이 미미의 얇은 숨과 함께 떨릴 뿐이다. 돈도 약도 없는 청춘들은 그녀에게 필요한 약을, 의사를, 조금의 따뜻함을 마련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을 떠올린다.
쇼나르는 방바닥을 뒤지며 말한다.
“이 방 안엔 팔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
그 순간, 조용히 서 있던 콜리네가 마치 오래된 친구에게 작별을 고하듯 천천히 자신의 두꺼운 코트를 벗는다. 그 코트는 그의 가난과 추위를 함께 견뎌 온 친구였고, 그의 모든 철학적 사색을 품어준 벗 같은 존재였다.
Vecchia zimarra, senti,
io resto al pian, tu salga…
compagna di stagioni tristi…
Addio, senza rancor.
“오래된 코트여, 들어라.
나는 여기 남고… 너는 세상 밖으로 나간다.
슬픈 계절을 함께 건너온 동무여…
원망 없이 안녕을 고한다.”
콜리네는 코트를 팔기 위해 벗지만, 그의 말은 단순한 작별 인사가 아니다. 그 코트는 그의 가난을 함께 견디고, 겨울의 차디찬 추위를 막아주며, 예술가의 고독한 일상을 지켜준 그의 유일한 자산이었다. 그는 그것을 팔며, 마치 한 시대와 작별하듯, 자신의 청춘과 철학을 태연하게 내려놓는다.
“원망 없이 안녕을 고한다.”
이 말은 단지 코트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청춘에게, 가난에게, 예술에게, 그리고 곧 떠날 미미에게 하는 고요한 작별이다.
Vecchia zimarra, senti…
…sempre provvida fosti, né mai richiedesti compensi…
…fedel compagna di sventura…
Addio, senza rancor!
“오래된 코트여, 들어라.
너는 언제나 나에게 충실했고,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았다.
고단한 시절을 함께 버틴 충실한 동무여…
원망 없이 안녕을 고한다.”
"너는 낡았지만, 세상의 부조리에 한 번도 등을 굽히지 않았다. 너는 결코 어떤 보상도 요구하지 않았으며, 나의 불운한 시절의 충실한 동무였다."라고 하는 철학가의 고백이 내 심장에 꽂혔다.
콜리네는 코트를 팔기 전에 마치 평생의 철학을 함께 나눈 벗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듯 노래한다. 그 코트는 가난한 청춘의 자존심이자, 추위 속에서 지켜준 최소한의 존엄이었으며, 예술가의 고독을 함께한 존재였다. 코트는 콜리네 자신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은 비록 가난했지만, 혹독한 현실에 단 한 번도 굴하지 않았다는 자기 자신을 상징하고 있는지 모른다.
청춘이 가진 마지막 체온을 내어주며, 가난한 예술가의 절제된 존엄성 앞에, 죽음 앞에서 사랑도 예술도 현실도 모두 벗어놓는 철학가의 노래가 나를 울렸다. 미미와 로돌포의 키스보다, 콜리네의 작별 인사가 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콜리네는 “내 주머니에는 돈 한 푼 없었지만, 그 속은 늘 시인과 철학자들이 잠시 머물다 간 작은 동굴 같았다.”라고 말한다. 그의 주머니 속에 늘 시집과 철학책들이 돌돌 말려있을 것을 상상하니, 영문학에 푹 빠져 항상 문학책을 품고 다녔던, 가난했지만 열정으로 빛이났고, 무지했지만 눈부시게 찬란했던, 바보같이 순수하게 아름다웠던, 나의 20대 때 모습이 떠올랐다.
간혹 공연 중 어둠 속 어딘가에서 들리던 흐느낌은 무엇에 대한 울음이었을까? 미미의 죽음이 남긴 비통함 때문이었을까, 로돌포의 절규 때문이었을까? 마음속 어딘가에 오래 잠들어 있던 청춘의 한 조각이 조용히 떠나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을까? 지나간 청춘을 향한 늦은 작별인사 때문이었을까?...
미미의 죽음은 한 사람의 마지막 숨이 아니다. 《라 보엠》이 품고 있는 청춘의 가장 순수한 빛이 서서히 꺼져가는 순간이며, 청춘이라는 계절 자체가 서서히 사라지는 장면이다. 병과 가난, 그리고 시간이 드리운 잔혹한 그림자 속에서 조용히 소멸해 가는 장면은, 청춘이 끝날 때의 모습을 나타낸다.
미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로돌포의 절규는 사랑을 잃은 남자의 울음이 아니다. 그는 그 순간, 자신의 청춘을 품고 있던 마지막 불꽃과도 작별하고 있었다. 가난 속에서도 견딜 수 있던 열정, 서로를 믿던 맹목적 용기, 사랑만 있으면 모든 고통을 이길 수 있으리라 믿었던 순수함, 그리고 예술을 위해 무엇에도 굽히지 않던 당당함. 그 모든 것이 미미의 마지막 숨결과 함께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다. 그래서 그녀의 죽음은 로돌포만의 비극이 아니라, 작품 속 모든 젊은 영혼들이 -관객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던 어딘가의 청춘마저- 조용히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이다.
그녀는 겨울 난로의 마지막 불씨처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꺼져 간다. 아무도 그 소멸을 막지 못하고, 누구도 되돌릴 수 없다. 푸치니는 청춘의 끝을 폭발이 아니라 소멸로 그린다.
천천히, 그러나 정확하게. 고요하게, 그러나 더할 나위 없이 잔혹하게...
마지막 순간, 미미는 철학적 유언을 남기지 않는다. 그녀의 죽음은 소리 없이 닫혀버린 창문처럼 조용하고 담담하다. 청춘은 이렇게 사라지는 것일까?... 어느 날 누군가의 손을 잡고 있던 온기가 조용히 빠져나가고, 더 이상 그 손을 움켜쥘 힘이 없어지는 순간. 아무도 청춘이 끝났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문득 돌아보면 이미 지나가 버린 계절처럼.
미미는 청춘의 온기를 몸에 품고 세상에 나타났다가, 그 온기를 잃으며 사라진다. 그녀는 조용히, 아주 천천히 잦아든다. 마치 청춘이 그렇게 사라지듯이. 누구의 기억 속에서도 청춘은 폭발처럼 끝나지 않는다. 어느 날 문득, 손을 맞잡고 있던 따스함이 사라지고 나서야 우리는 그것이 끝났다는 것을 깨닫는다. 미미의 마지막 숨처럼.
미미에게 전하는 마지막 “안녕”은 청춘에게 고하는 작별이다.
청춘은 아름답지만 영원하지 않고, 짧지만 눈부시며, 사라지기 때문에 더욱 가슴에 남는다. 미미의 죽음은 사랑의 상실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던 세상의 순수함과의 마지막 이별이다.
그래서 《라 보엠》의 진짜 의미는 사랑의 비극이 아니다. 그것은 청춘이라는 계절이 얼마나 짧고,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쉽게 사라지는지를 전하는 이야기다. 푸치니는 노래 대신 침묵으로, 장대한 선언 대신 작은 숨결로 말한다. 청춘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욱 눈부시고, 사라지고 난 뒤에도 오랫동안 우리를 울린다.
“Alles Schöne vergeht leise;
erst im Schweigen merken wir, dass es fort ist.”
“모든 아름다움은 조용히 사라진다.
우리는 그것이 떠난 뒤에야 그 침묵 속에서 비로소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마리아 라이너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중
나의 청춘이 그토록 찬란했음에도 정작 그 순간엔 알지 못했듯, 지금의 나 또한 지금의 아름다움을 모른 채 지나치고 있겠지... 언젠가, 십 년 혹은 이십 년 뒤의 내가 지금의 나를 조용히 떠올리며 작은 미소 하나 지을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 미소는 말할 것이다. 그때의 나는 서툴렀지만 성실했고, 불안했지만 삶에 최선을 다했으며, 흔들렸지만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세상의 추위 속에서도 나만의 온기를 놓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니 지금의 내가 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헤아리지 못한다 해도 괜찮다.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건네는 그 따뜻한 연민의 미소 하나가 내가 지나온 모든 시간을 충분히 아름다웠던 것으로 만들어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