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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임브랜더 Oct 23. 2022

오래된 미래, 브랜딩에서 답을 찾은 독일 정육점

Schaller & Weber (1937)

고객들에게 고층 건물로는 채울 수 없는
마음을 채우는 것이 우리의 의무거든요.
 

전통과 혁신은 서로 상반되지만, 슬로건으로 자주 차용되는 단어들이다.

“전통과 혁신의 승부”
“전통과 혁신의 조화”


뻔한 클리셰이지만, 매번 뉴스 기사에 언급되는 걸 보니,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문화가 아무런 거부감 없이 현대 문명에 스미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오래된 미래, 브랜딩에서 답을 찾다.

뉴욕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한 정육점 안에는 배고픈 고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가게 카운터에는 화려한 소시지와 돼지갈비로 가득 채워져 있고, 고객들은 한 손에는 샌드위치 주문서, 다른 한 손에는 파테(독일식 소시지)를 들고 있다.


오늘은 고집스러웠던 전통을 유연한 자세로 대처한 한 독일 정육점 쉘러&웨버 (Schaller&Weber)에 대해 인터뷰해본다.

리브랜딩한Schaller & Weber 내부 모습. Photo by NYtimes.
소세지가 천장을 장식하고, Pate로 가득한 진열장. Photo by 장미인.


인터뷰어 장미인, 이하  으로 표기

인터뷰이 1대 페르디난드 쉘러 사장님 (Ferdinand Schaller), 이하 네모칸으로 표기



 SCENE #1  뻔한 이야기, 독일 하면 소시지


 페르디난드 사장님! 독일 하면 소시지, 소시지하면 독일이잖아요!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어렸을 때부터 독일 함부르크에서 수습 생활을 했어요. 알자스(프랑스와 독일이 근접한 지역)에서 익혔던 정육기술로 뉴욕에 작은 정육점을 내볼까 하던 찰나에 토니 웨버 (Tony weber)를 만났죠! 우린 고향 사람들이 밀집된 요크빌(뉴욕의 어퍼 이스트 사이드 Yorkville)에 창업을 시작했답니다. 이름을 걸고 자랑스럽게 시작한 쉘러 & 웨버 (Schaller & Weber)가 그 시작이죠.
초기 Schaller&Weber 매장과 현재 매장. Photo by 장미인.


 1900년대 뉴욕은 헝가리, 오스트리아, 체코 등 유럽 문화가 공존했던 시기라고 들었어요. 당시 이민 규모가 어느 정도였나요?

맞아요. 그중 독일인 숫자는 독보적이었죠. 1938년까지 뉴욕에서 가장 큰 독일어 신문 ‘staats-zeitun’g이 하루에 8만 부 이상 팔렸으니까요. 숫자로 접하니, 독일 인구가 어느 정도였는지 상상이 가죠?
독일어 신문 ‘staats-zeitun’g. Photo by wikipedia.


19세기 말까지 뉴욕은 빈, 베를린 다음으로 독일어권 인구가 세 번째로 많은 곳이었어요. 대다수 독일인이 요크빌로 이주했는데, 특히 79번가와 96번가, 3번가와 이스트 강에 접한 이 지역은 저먼타운(German-town)으로 불렸고, 86번가는 사워크라우트 (sauerkraut) 길이라고 불렸죠.

 

PB상품 좌-사워크라우트 (sauerkraut) : 양배추를 싱겁게 절여서 발효시킨 독일식 김치. 우측 피클과 더불어 서양 김치의 대표 상품.


 하하, 한국으로 치면, 뉴욕의 K-town을 ‘김치길’ 이라고 부르는 거네요?

그때 당시 인종차별도 심했을 것 같은데, 사장님은 이민 생활이 어렵진 않으셨나요?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죠? 예컨대 1930년대의 요크빌은 독일계 미국인들 중 친-나치 단체 집결지였어요. 최대 집회 때는 2만 명까지 모였죠. 우리 가게 앞에서 매일 시위가 열린다고 생각해봐요. 소음과 교통체증으로 얼마나 고생이었게요! 1941년 미국이 세계 2차 대전에 돌입 직후 프랭클린 루스벨트 (Franklin Roosevelt)가 무고한 독일인 1만 명을 구금했어요. 저 또한 독일인이란 이유로 수용소 생활을 했답니다. 그때 겪었던 수감 생활 때문에, 왼쪽 무릎이 아직도 쑤시네요.




 SCENE #2  브랜드의 존재 이유 


 그렇지만 지금은 뉴욕에서 ‘독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대표 브랜드가 되셨잖아요! 동네 정육점이 브랜드가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우린 비록 $10로 시작했던 뉴욕의 작은 정육점이었지만, 미래의 정육 왕국을 건설하리라! 마음먹었어요. 이웃 누구에게나 친절해야 하고, 독일 음식을 모르는 사람들에게조차도 열려있어야 한다! 를 모토로 삼았죠. 그러다 보니 어느덧, 우리 매장은 수십 년 동안 뉴요커들이 최고급 고기를 사기 위해 방문하는 곳이 되었어요.
각종소시지가자랑스럽게 걸려있는 매장. Photo by 장미인.
쉘러&웨버의 명성은 점점 높아갔고, 사람들의 입맛은 점점 고급화되었죠. 미식 고객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차별화된 독자 기술 개발이 필요했어요. 특단의 조치로 1960년대 초에 우리가 원하는 품질을 고정적으로 생산해 낼 수 있는 생산 시설을 만들었죠. 육즙과 식감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모든 소시지 가공 작업은 뉴욕 퀸즈(Astoria, Queens)에 있는 자체 공장에서 만든답니다. 지금 매장에 있는 천장의 금속 철제도 60년대 정육 시 사용했던 부품들을 그대로 인테리어에 반영한 거예요!


 삶이 풍요로워질수록, 고객의 입맛은 까다로워지잖아요. 쉘러&웨버의 끊임없이 연구하는 모습이 바탕이 되어,  100년 브랜드가 될 수 있었군요!

우리 기업은 고객에게 맛있고 신선한 재료를 제공하는 것이 원칙이에요.
하지만, 더 이상 고객의 입맛을
감동시키지 못한다면
브랜드로서 존재 이유가 없어요.

 맛이라면 제가 보장해요! 뉴욕에 있는 동안 3번이나 찾아올 정도였다니까요? 세 번째 왔을 땐, 카운터에 계신 매니저님이 저를 보고 어찌나 반가워하시던지~ 제 이름까지 부르면서 손 흔들어주셨어요!

이곳 이탈리안 샌드위치, 로스트 비프 샌드위치는 꼭 먹어야한다. Photo by 장미인.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먹은 순간, 제발 이곳 더 유명해지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지금보다 더 유명해지면 제가 먹을 수 있는 기회도 적어지니까요!

하하, 맛있게 먹었다니 고마워요! 다음엔 후라이드 치킨도 꼭 한번 먹어봐요. 이건 비밀인데, 돼지고기를 요리했던 팬에 치킨을 튀겨서, 풍미가 끝내주거든요.



 SCENE #3  오래된 브랜드의 생존법, 유연한 대처


 고집스러운 전통이 현대에 자연스럽게 스미는 방법이 궁금해요.


흐르는 시대를 자연스럽게 흡수하는 것은
리브랜딩 (Re-branding)을 통해 가능했어요.


이 부분은 아무래도 우리 손주 제레미 Jeremy 덕분이죠. 내 아들들 (Ralph, Frank) 뒤를 이어 3대 사장으로 일하고 있는데, 패션을 전공했던 아이라 워낙 감각이 있거든요. (뿌듯)
사실 전통을 고집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요. 요즘 젊은이들은 낡은 노포 집보단 인스타그램에 핫플레이스를 찾아다니는 재미에 쾌락을 느끼잖아요. 트렌드에 뒤쳐지니, 한 동안 쉘러&웨버엔 우울한 기운이 감돌았죠. 문제점을 인식한 제레미가 벽을 까맣게 칠하기 시작했어요. 다들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지만, 결론적으론 아니었죠. 가게를 21세기로 탈바꿈하는 과정이었던 거예요.


 제레미 사장님이 사업 확장에 주요 공신이시네요?

맞아요, 바로 옆의 소시지 바 스텁 (Stube : 독일말로 ‘room or bar’)에선 프레첼로 만든 핫도그도 맛볼 수 있어요. 소시지를 감싼 부드러운 프레첼은 쫄깃쫄깃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예술이죠. 이 프레첼은 우리 아니면, 뉴욕에서 구할 수 없어요. 도저히 우리가 원하는 퀄리티를 찾을 수 없어서, 독일에서 직수입해 왔답니다.
사워크라우트가 뿌려진프레첼소시지는뉴욕 중 오직 한 곳에서만맛볼수 있다. Photo by 장미인.


이외에도 우리 매장 뒤편에 오스트리안 와인 바, 칵테일 바도 운영하고 있어요. 제레미는 자신의 이름을 건 와인바를 만드는 것이 평생 꿈이었다나요? 하하, 하고 싶은 건 다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니까요.
가게뒤편의칵테일 바. Photo by Schaller and weber


 오너쉽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다양한 열정과 야망이 시각화되었네요.

그럼에도 쉘러 & 웨버의 본질은 잊지 않았죠. 현대인의 입맛을 위해 새로운 아이템을 소개하면서, 우리의 본질을 잇게 한 전통 레시피는 보존하고 있답니다. 시대가 바뀜에도 우리의 전문 기술과 장인 정신은 겉모양 새만 변화할 뿐이에요.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개최된 대회에서 받은 메달 20개가 실력을 증명해주죠.


훌륭한 소시지를 찾는 이들이 행복한 곳,
이것이 우리의 본질이랍니다.




 SCENE #4  철학과 스토리가 만들어낸 ‘팬덤’


 지금까지도 쉘러 & 웨버의 골수팬들을 이끌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한 단골손님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향수병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준 브랜드’ 이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우리가 아니었으면, 독일에서 크낙 부어스트(Knackwurst : 짧고 굵은 독일 소시지)를 밀수입할 뻔했다더군요, 하하!
Schaller & Weber 대표 상품들. Photo by Schaller & Weber.
우리 가게를 찾아주는 ‘단골’들은 작은 브랜드가 대형 기업을 이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비결이에요. 고객들에게 질 좋은 고기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친밀한 유대관계를 쌓으면서 오랜 시간 동안 차곡차곡 빌드업된 결과죠.


 앞으로의 쉘러&웨버 행보도 기대돼요!!

그리 쉽지만은 않을 거예요. 우리도 매일 전통을 지키는 방법 고민하고 있어요. 알다시피 뉴욕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비싼 부동산 시장이잖아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건물을 팔라고 전화가 불통이에요. 현 시세의 4배 금액을 주겠다는 개발업자들의 유혹이랍니다.
페르디난드 창업주. Photo by Schaller & Weber
뉴욕 전역에 퍼진 고층 건물들처럼, 지금 이 건물도 50층짜리로 세우려고 하겠죠. 새로운 건물을 짓고, 1층의 몫 좋은 곳에 가게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약속하겠다더군요.
근처에 있던 양조장, 시가 공장 등과 함께 일하던 독일,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이민 후손들이 떠난 지 오래예요. 오랜 전통을 자랑하던 레스토랑들도 물론 사라졌고요. 안타까운 일이죠. 하지만, 우린 고객들이 우릴 찾는 한, 꾸준히 이 자리를 지킬 겁니다.
고객들에게 고층 건물로는 채울 수 없는
마음을 채우는 것이 우리의 의무거든요.



해당 내용은 필자가 실제 매장 방문 및 리서치를 바탕으로 가상 인터뷰로 각색하였습니다.

- 끄읕 -




쉘러&웨버 공식 홈페이지

https://schallerweber.com/


쉘러&웨버 공식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schallerweber/


참고 자료

뉴욕타임스 https://www.nytimes.com/2022/09/08/dining/drinks/schaller-weber-upper-east-side-jeremys.html

PRnewswire https://www.prnewswire.com/news-releases/schaller--weber-launches-new-brand-identity-and-new-product-offerings-3013040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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