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엄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절제다.
식사도 늘 적당히 드셨고, 배가 부르다 싶으면 미련 없이 수저를 놓으셨다. 내가 조금 더 드시라고 권해도 손사래를 치시며, 평생 배가 터지도록 먹어 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어쩌면 이는 단순한 식습관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엄마만의 태도였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물건도 꼭 필요한 것만 사셨다. 요즘은 스마트폰 터치 몇 번이면 웬만한 물건이 집 앞까지 배달되는 시대다 보니, 나는 가끔 무심코 충동구매를 하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본 엄마는 처음엔 신기해하시다가도, 점점 늘어나는 택배 상자를 보며 과소비가 아닐까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셨다. 엄마에게 소비란 단순히 돈을 쓰는 일이 아니라, 필요와 욕망을 구별하는 과정이었던 거 같다.
그렇다고 돈을 무조건 아끼는 분은 아니었다. 남에게 한 개를 받으면 반드시 돌려주셨고, 두 개를 받으면 두 배로 갚으셨다. 자식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남에게 하듯 철저하게 선을 지키셨고, 때론 그런 태도가 자식 된 입장에서 서운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기념일이 되면 엄마는 자식들에게 받는 용돈보다 오히려 더 많은 돈을 쥐여주곤 하셨다.
"살아생전 주고 고맙다는 소리 들어야지. 움켜쥐고 있으면 뭐 하냐?"
늘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특히 사위들에게는 한 순간도 부담을 주지 않으려 하셨다.
딸만 낳으신 엄마는 가끔 "나는 자식이 없다"라는 말을 하셨고, 그 말이 서운하게 들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만큼 독립적인 삶을 사셨던 분이었다. 단 한 번도 자식에게 기대거나 폐를 끼치려 하지 않으셨다. '보고 싶다' 오라는 전화조차도 받은 기억이 없을 정도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 당신의 원칙이었을 것이다.
그런 엄마는 자신의 마지막까지도 직접 준비해 두셨다. 당신이 잠들 곳도 직접 선택하셨고, 장례비용도 미리 마련해 두셨다. 조의금으로도 충분하니 제발 그러지 마시라고 했지만, "조의금은 결국 다 빚이다. 각자의 것은 각자가 감당해야 한다."며 당신의 뜻대로 하셨다.
결국 엄마가 준비해 둔 돈으로 장례를 치렀고, 조의금 봉투를 나누면서도 자매 간에 다툴 일이 전혀 없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엄마를 떠나보낼 수 있었다. 얼마 되지 않는 유산이었지만, 그것조차 생전에 명확히 정리해 두셨기에 나와 동생은 어떤 불만도 없었다.
엄마가 떠난 뒤에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그분이 얼마나 철저한 준비성과 절제된 삶을 살았는지를.
그래서일까. 딸과 조카들조차 "할머니처럼 살고 싶다."라고 말할 정도다.
살아생전 누구보다 단단하고 주도적인 삶을 살았던 분이다.
그런 엄마를 내 인생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기억한다.
가장 존경하는 사람, 내 엄마처럼.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단단하지만 따뜻하게, 절제하되 풍요롭게, 기대지 않되 언제나 곁에 머무는 사람으로 늙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