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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인사

아름세계 2025년 5월호 ㅣ 짧은 산문 ㅣ 강아름

by 강아름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다 견디기 힘든 외로움이 원초적인 쾌락을 요구할 때. 더 이상 보고 싶은 것도 없어져서 통화 목록을 둘러보다 익숙한 이름에 잠시 머무르지만, 곧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야식을 잔뜩 배달시키고 습관처럼 누워서 죄책감을 삼킬 때. 누군가가 나를 방에서 꺼내 주었으면 하지만 이미 밖은 깜깜하고 방문도 단단히 잠겨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을 것 같을 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문득 며칠 전 우연한 만남이 운명적인 인연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며 실제로 그녀에게 마땅한 이유 없이 인사를 건네고는 이 행동으로 그녀가 꽤 당황했을 것이라고 짐작될 때. 몇 분 뒤에 온 답장에서 느껴지는 뜻밖의 반가움이 몸을 일으킬 때. 깊은 잠을 자고 깬 것 같은 개운함으로 민첩하게 머리를 굴리고 손가락을 움직일 때. 이 빠른 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자신이 우습지만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음을 어느 때보다 명확하게 깨달을 때. 영화를 보기로 약속하고 짧은 작별 인사를 하는 것과 동시에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듣게 되었을 때. 이런 심정으로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도착한 야식을 먹을 때 나는 드디어 방에서 완전히 벗어나 방 안에 가득한 상처와 한숨을 한순간에 실체 없는 존재로 만들고, 반면에 나 자신은 차가운 아랫배가 뜨거운 혈액으로 감싸짐을 느끼며 회색의 재에서 진정한 실체로 활활 불타오른다. 이런 느낌은 자기 전 침대에 누워 그녀와 팝콘을 나눠 먹는 상상을 할 때 더욱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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