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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Apr 30. 2018

#04. 노점 떡볶이, 야근의 맛.

- 서른살의 교대 새내기 라이프 -

2018.3.23(금) / 교대 입학 26일차.

2015년 9월, 나의 인스타그램 게시물.


한가한 금요일이었다. 나는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느지막히 일어나 학교 과제를 조금 끄적이고 있었다. 남자친구는 늦은 시간까지 회식을 했고, 회사 앞 노점 트럭에서 떡볶이를 한 봉지 사들고 나를 찾아왔다.


남자친구는 내가 도망친 그 회사를 아직 열심히 다니고 있다. 그러니까 그가 회사 앞에서 사온 떡볶이는, 내가 회사 다닐 때 자주 먹던 그 떡볶이. 어느 프랜차이즈에서도 팔지 않는 주황색 밀가루 떡볶이였다.


내가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새벽 열두시가 다 되도록 입이 바짝바짝 마르게 야근을 하고 나면 늘 그 떡볶이 트럭에서 떡볶이와 오뎅을 포장해갔다. 아무리 늦은 시간이어도 나는 떡볶이를 안주삼아 맥주를 한 잔 하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오늘 남자친구가 떡볶이를 사는데 떡볶이 트럭 사장님이 물어보셨단다. "여자친구는 왜 안와요? 항상 늦은 시간에 왔었는데..."


"여자친구는 회사를 그만둬서 자주 못 올거에요. 그래도 여전히 이 떡볶이를 너무 좋아해서 제가 사가는 거에요." 남자친구는 떡볶이트럭 사장님에게 상황을 설명 했고, 돌아와 내게 그 이야기를 전했다.


회사를 그만두고서도 몇 번은 남자친구와 함께 었는데, 사장님이 나를 기억하셨나보다. 사장님이 장애가 있으셔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 보니, 사실 "떡볶이 2천원어치 주세요!" 또는 "감사합니다!" 외에는 길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나를 기억해주시는 것이 감사하고 신기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장님이 나를 기억하지 못하기에는 내가 너무 자주 떡볶이를 사가기는 했었구나.



어쨋거나, 그 옛날 야근을 마치고 먹던 눈물젖은(!) 떡볶이를 오늘 다시 먹으면서, 나는 늘어지게 여유로운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다.


"여자친구는 요즘 왜 안오냐"는 사장님의 한 마디에, 나는 기억 저편에 접어두었던 야근의 기억들을 한번 더 떠올렸고, 지금 이 순간이 갑자기 굉장한 행운, 굉장한 사치처럼 느껴졌다.


야근을 마치고 나를 위로하기 위해 먹었던 그 까끌까끌한 떡볶이와 맥주의 맛이, 지금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나의 회사생활은 정말로 옛날옛날 과거의 일이 되었다.





서른 살의 교대 새내기 라이프, <나의 꽃같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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