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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Apr 30. 2018

#05. 글쓰기, 현실의 재구성.

- 서른살의 교대 새내기 라이프 -

2018.3.24(토) / 교대 입학 27일차.


한 국어과목 수업 과제로 "타인 소개서 쓰기"를 받았다. 대입과 취업을 거치며 '자기 소개서'는 지겹게 썼지만 '타인 소개서'는 낯설었다. 


과제는 임의로 짝지어진 학생들끼리 상호 인터뷰를 하고, 그것을 완결된 글로 정리하는 것. 교수님은 과제를 교수님께 개별 제출하는 것 대신, 모두가 볼 수 있는 공개 게시판에 올리라고 지시하셨다. 이에 더해 다른 사람 글을 읽고 댓글을 다는 것까지가 과제였다.


나는 제일 먼저 과제를 업로드 해놓고, 게시판을 여러 번 들락날락 했다. 내 글에 달리는 댓글을 확인하는 재미가 하나, 그리고 다른 친구들의 글을 읽는 재미가 또 하나였다.




내가 인터뷰한 짝꿍은 스물 두 살 삼수생이었다. 재수를 해서 모 대학에 입학했고, 대학에 다니며 다시 한 번 수능을 봐서 이 학교에 합격했다고 한다.


타인소개서에 반드시 제목을 달아야 한다는 과제 요구사항이 있었고, 나는 <무엇이든 시작한다면, 어떤 것도 늦지 않았다>라는 제목 아래에 그 친구의 이야기를 손가는 대로 써내려갔다.


내 글에 달린 댓글과, 나를 소개한 짝꿍의 글을 읽으면서 재미있는 점을 발견했다. 같은 사람을 소개해도, 같은 글을 읽어도, 모두 각자 자신의 상황에 대상을 투영해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내가 인터뷰한 짝꿍의 이야기에서 팩트는 ① 재수를 해서 타 대학에 입학했다 ② 타 대학을 다니며 다시 수능을 봐서 이 학교에 입학했다 는 두 가지 뿐이다. 


그러나 서른 살에 교대에 입학한 나는, "늦은 나이에도 무엇이든 도전하면 이룰 수 있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글을 구성했다. 반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단번에 입학한 친구들은 나의 짝꿍 소개서를 읽고 "ㅇㅇ언니처럼 교대를 간절히 원했는가에 대해 반성하게 된다"거나, "교대를 향한 노력과 의지가 대단하다"는 식의 댓글을 달았다.





두서없이 오가는 상대방의 이야기 속에서, 나름의 주제와 제목을 잡고 필요없는 부분은 가지치기를 해가며 글을 쓴다는 것은, 글쓴이의 편향을 반영하는 과정일 것이다. 어쩌면 내 짝꿍은 그저 "길고 지루한 3수 수험생활 힘들었어요." 를 말하고 있었을 뿐이고, 그것을 나는 "늦은 나이에 도전하는 용기"로 편향적인 글을 쓴 걸지도 모른다.


별다른 자기 검열이나 퇴고도 없이, 손 가는 대로 생각이 흐르는 대로 쓰고 있는 내 글들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 매거진이 '일기'라는 이름을 달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이 곳에 매일 무엇을 먹었고 어디에 갔는지를 연재하는 것이 아니다. 


별다른 일 없이 학교에 가고, 밥을 먹고, 수업을 듣고, 술을 마시는 작은 일상 속에서, 나는 지금 내 머릿속을 차지한 특정 화두에 대한 이야기만 걸러내어 글감으로 삼는다. 매거진 <나의 꽃같은 날들>의 주제인 '서른살의 교대 생활'에 부합하는 이야기들을 골라내어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객관적이려고 애써봤자, 내 글은 Fact 그대로를 기술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전혀 편향되지 않은 글을 쓸 자신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다만 나는 편향된 나의 글이 '세상을 바라보는 유일한 관점'임을 주장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독자들이 나의 글을 통해 '세상의 다양한 빛깔 중 하나'를 엿볼 수 있기를, 조금 다른 방향에서 3초 정도 머무르며 세상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가지기를 바랄 뿐이다.





서른 살의 교대 새내기 라이프, <나의 꽃같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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