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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May 13. 2018

#07. 서른살, 대학교 엠티에 가다!

- 서른살의 교대 새내기 라이프 -

2018.4.14(토) / 교대 입학 48일차.


처음으로 대학교 엠티에 다녀왔다.


우리 반 동기들끼리 가는 비공식 엠티였다. 학교나 과에서 진행하는 공식 행사와는 달리, 부담없이 동기들과 얼굴을 익히기 좋은 기회인 것 같았다. 입학한지 두 달이 다 되어가도록 어떤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던 나도, 큰맘 먹고 참석하기로 했다.


엠티라니!! 세상에, 서른 살에 대학교 엠티라니!!


내게는 나보다 7살이 어린 남동생이 있다. 내가 중학교 때 동생은 겨우 유치원생이었고, 내가 업어키우다시피 한 '아기'인데 내 대학 동기들보다 3살이나 많다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하여간 남동생은 내 대학생활에 대해  "누나, 제발 낄끼빠빠 잘 해. 애들한테 민폐 끼치지 말고."라며 면박을 주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전부 '빠'졌으니 한 번쯤은 '끼'어도 된다는 항변을 하며 엠티 참불 조사에서 '참석'을 꾹 눌러 체크했다.




나는 장보기 조를 맡아 동기들 몇 명과 함께 코스트코에서 먹을거리를 샀다. 부피가 큰 것들은 미리 인터넷으로 배달을 시켰는데도, 내 차가 작다보니 트렁크에 가득 싣고도 모자라서 뒷좌석에 한 사람 앉을 자리만 겨우 남겨놓고 가득가득 짐을 채웠다.


정말정말 뒷좌석까지 꽉 찬 내 차의 모습.


차가 없는 보통의(?) 대학생들은 이것들을 다 어떻게 사들고 가는 것일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나도 예전엔 차 없이 뭐든 이고지고 다니며 잘 살았을 텐데, 차가 생긴지 2년 만에 차 없는 생활은 상상도 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장을 보면서도 혼란스러웠다. 내 기준에서 '맛있고 저렴하네!'싶어서 집었다가도 다시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아이들 입장에서도 이 정도면 저렴한 걸까, 아니면 대학생 주머니 사정 모르는 직장인의 사치인 것일까? 매 품목마다 고민이 되는 것이다.


나는 함께 장을 보러 간 스물한살 친구에게 일일이 물어가며 카트에 음식을 담아야 했다.




이번 엠티에서 나는 스무살 친구들과 거의 처음으로 술자리를 함께 했다. 스무살의 술문화에서 내게 충격적인 것이 두 가지 있었다.


첫째는 술을 아예 마시지 않는 아이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었다.


내 주변에도 종교적인 이유나 건강상의 이유로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은 종종 있다. 그러나 "그냥 맛이 없어서"라는 이유로 술을 한 잔도 마시지 않는 친구들이, 엠티에 온 서른 명 중에 열 명 가까이 있다니.


물론 나는 또래들 가운데에서도 애주가에 속하기는 한다. 그래도 여전히 충격적이었다. 취하도록 마시지 않더라도, 술을 한 잔 하며 "크으~~ 역시 이 맛이야!" 하는 건 역시 삼십대의 표상인 것인가?!



둘째로 충격적이었던 것은 술과 음식을 따로 먹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좋은 음식을 보면 자연스레 그에 어울리는 주종(酒種)이 떠오른다. 삼겹살엔 맥주로 목을 축여야 하고, 회를 먹을 땐 소주나 청하를 마셔야 그 감칠맛이 더 살아나는 기분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1차로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도 술을 거의 먹지 않았다. 물론, 나와 비슷한 또래 몇몇은 아이들의 문화에 어리둥절하며 우리끼리 맥주를 열심히 마셨다.


엠티의  꽃, 삼겹살 바베큐로 저녁식사 중인 모습.


고기를 다 먹고 치운 후에는 조별 대항전 비슷한 레크리에이션 몇 가지가 진행되었고, 그 후에야 엠티를 진행하는 누군가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는 시간"을 선포했다. 


당연히 고기는 남아있지 않았고, 배도 부르고, 마땅히 안주랄 것도 없었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둥그렇게 둘러앉아서 맥주와 소주와 과자를 가운데에 놓고 본격적으로 알코올을 마시기 시작했다. 음식으로서의 술이라기보다는 "지금부터 CH3CH2OH를 체내에 흡수시켜 취기를 느껴볼까?"에 가깝달까.


나는 안주 없이 술 먹기가 싫어서, 조용히 부엌으로 갔다. 먹다 남은 김치를 부침가루와 휘휘 섞어서 김치전을 부쳤다. 세상 간편한 요리인데 '엠티에 이런 고퀄 요리를!!!' 이라며 맛있게 먹는 아이들의 모습이 귀여웠다.


물론, 리액션이 워낙 좋은 아이들이라 그리 맛있지 않은 내 김치전에도 그렇게 격렬하게 반응해준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귀엽긴 마찬가지다.



직장인 취미 동호회에서도 엠티를 몇 번이나 갔었고, 회사에서 워크샵도 몇 번 갔었지만 대학생 엠티는 정말 다르다. 특히 스무살은 정말 고등학교 4학년, 술을 합법적으로 마실 수 있는 고등학생 같은 느낌이다. 뭘 해도 그 설익은 풋풋함이 귀엽다는 이야기다.


강의실에 함께 앉아 지겨운 수업을 딴짓으로 승화시키고, 실과 수업에서 같이 감자를 심고, 체육 수업에서 같이 앞구르기, 뒷구르기를 하다보면 동기들과 나이차를 잊고 살게 된다. 그런데 술 마시는 패턴이나 주종이나 안주선택 모두에서, 나이차 정도가 아니라 세대차이 같은 것이 느껴진다.


아이들과 있으면서 이렇게 문득문득 내가 삼십대임을 실감한다.






글을 다 써놓고 읽어보니, '서른살 對 스무살' 의 차이라기보다는, 그냥 애주가의 시선에서 바라본 非애주가의 모습인 것 같기도 해서 스스로 조금 찔렸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그냥 내가 술을 너무 좋아하는 것일까?!





서른 살의 교대 새내기 라이프, <나의 꽃같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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