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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May 14. 2018

#08. 10년 만에 베토벤을 다시 만났다

- 서른살의 교대 새내기 라이프 -

2018.4.16(월) / 교대 입학 50일차.


클래식 음악 교양수업에서 베토벤의 영웅교향곡(Eroica)을 감상했다. 단지 음악만이 아니라, 지휘자의 곡 해석과 그 해석을 연주 기법으로 실현시키고자 하는 의도까지 설명된,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상이었다.


나는 그 영상을 보다가, 수험생활에 지쳐 마음이 아주 힘들었던 고3 시절이 생각났다. 




고3 때 나는 힘든 마음을 피아노에 기대고 있었다. 기숙사 학교라서 피아노를 치려면 음악실에 단 하나뿐인 피아노를 빠르게 차지해야 했고, 나는 늘 저녁식사를 포기하고 피아노를 향해 달려갔다. 


피아노 연주 실력은 레슨을 중단한 중학교 1학년 때 이후로 멈춰 있었으니 형편없었다. 새로 악보를 볼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어서 늘 같은 레파토리만 반복했다. 그래도 건반을 치면 웅- 하고 울리는 그 진동이 입시에 지친 나를 위로해주었다. 


당시 지겹도록 연주했던 곡은 베토벤 비창소나타 1악장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마지막 콩쿨에 들고 갔던 곡이기도 했다. 


우울한 수험생활에, 너무 아름답고 우아한 곡을 들으면 먼 나라 이야기 같고 전혀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 반대로 베토벤의 음악은 왠지 우울하고 사색적이고 격정적인 느낌이 들어 좋았다. 정리되지 않은 마음 속의 우울을 끄집어내어 한바탕 몰아치고 나면, 폭풍우 뒤에 날이 개듯이 조금 편안해졌다.



음악사를 배운 적도 없었고, 각 작곡가의 스타일을 알 만큼 여러 곡을 배우지도 못했지만 그냥그렇게 느껴졌다. 




베토벤의 비창소나타로 힘든 고3 수험생활을 보내고, 하나의 대학과 직장을 거쳐 10년만에 다시 교대에 입학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보여주신 <Eroica> 교향곡에서 나는 베토벤을 다시 만났다.


비창소나타와 영웅교향곡은 다른 곡이지만, 나는 고등학교 시절 왜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며 위로받았는지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영상에서 본 지휘자의 해석에 따르면, 영웅교향곡에는 ‘삶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베토벤의 고민이 담겨있다고 한다. 다양한 악기, 리듬, 멜로디, 셈여림 등 음악적인 요소를 파격적인 방식으로 사용하여, 베토벤은 자기 자신의 희열, 절망, 죽음, 미래, 고민, 에너지 등을 자유자재로 표현해낸다.

 

고3 때 내가 베토벤의 음악을 직접 “느낀” 경험이 없었다면, 이번 수업에서 작곡가가 들려주는 해설을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언어로 된 가사가 있지도 않은데, 단지 ‘소리’를 가지고 어떻게 저렇게 복잡하고 구체적인 의미를 담아낼 수 있느냐며, 과잉 해석이라고 비웃었을 것이다.  


나는 10년 전, 베토벤에게서 ‘구체적인 위로’를 받았던 경험이 있다. 음악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막연한 ‘느낌’ 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번 영웅교향곡 지휘자의 해설이 아주 소중하게 들렸다. 


다른 곡들에 대해서도 각각의 악기, 셈여림, 주법 하나 하나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전문적인 해설을 듣는다면 곡을 더 깊이있게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이 "알고서 즐기는" 재미인가보다. 의미 없이 나를 스쳐가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붙잡아 세우고,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즐기고 싶다. 





서른 살의 교대 새내기 라이프, <나의 꽃같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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