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유어 마인드
싸이 월드 = 일촌 공개
사람 쉽게 변하지 않아.
최근 싸이 월드 미니홈피 서비스가 다시 오픈하며, 긴 기다림 끝에 사진첩까지 복구되었다. 오래전 기억 속의 나의 미니홈피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기대에 차 접속한 난 정말 말 그대로 ‘빵’ 터졌다. 아기자기한 미니룸의 미니미 왈, “푸딩이는 일촌만 보아용~” 정말 사람 쉽게 안 변한다더니 그 성격 어릴 때부터 그대로구나 싶었다.
그만큼 난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성향으로 '친구'라고 칭하는 관계에 있어 나름의 엄격한 기준이 있었다. 단순히 학연이라고 해서 친구라는 범위에 넣지 않으며 연락이 껄끄럽지 않아야 한다. 이건 인스타그램이라는 플랫폼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고, 직장 생활로 일하며 알게 된 동료라고 해도 지인의 범위 정도일 뿐 팔로우도 팔로잉도 하지 않는 것이 나만의 룰이었다. 뭐 엄청난 게 있어서는 아니고 나의 사생활이나 가치관으로 인해 나에 대한 편견이 생기는 것이 싫었고, 나 역시 그 사람의 사생활과 가치관으로 인해 편견을 갖기 싫었기 때문이다.
원칙을 중시하던 나에겐 일을 하며 직급이 올라가는 만큼 직원들을 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치우침 없이 바라봐야 한다는 나의 원칙 때문이기도 했다.
(2) 이유 있는 전체 공개
프로페셔널 계정으로 전환하기
본론으로 돌아와 그런 나에게 인스타그램 전체 공개라니, 굳이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를 공개할 이유가 있나 싶었지만 이 회사에 다니는 이상 이런 개인적인 생각으로 NO!를 외칠 수는 없었다. 타당한 이유가 없는 상황에 직급자로서 회사의 방침에 반기를 들긴 어려웠다. 회사의 대표가 "우리의 방향은 이것이다."라고 공표한 시점에 이견을 제시하는 건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게 맞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회사의 지침대로 전체 공개로 한 회사 계정을 만들었고, 시키는 대로 프로페셔널 계정-비즈니스 계정으로 전환했지만 당시에는 프로페셔널, 비즈니스 계정에 대한 개념도 없었고, 설명을 들어도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목적을 가지고 인스타그램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이 두 가지는 필수이니 하시길 권한다.
'전체 공개'는 나를 팔로우하지 않아도 그들에게 내가 '노출'될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단, 오해는 없어야 하는 것은 전체 공개라고 무조건 내 계정이 잘 노출되는 것은 아니다. 이 역시 자세한 건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전체 공개는 아무것도 아닌 내 계정을 나를 팔로우 하지 않아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프로페셔널 계정은 계정의 확장성을 의미하기 하는데 특히 회사나 소속으로 활동할 예정이라면 프로페셔널의 비즈니스 계정을, 개인의 특정 카테고리라면 크리에이터 계정으로 운영하는 걸 권한다.
그렇게 정말 시키는 대로 만든 계정은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오랜 기간 고민했던 카페, 공간 위주의 포스팅으로 피드가 꾸며지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나 자신이 잡은 콘셉트에 갇혀 인물 없는 계정이 되어 버렸다.
이건 뒤에서 내가 설명할, 사람들이 찾는 계정의 세 가지 요소 중 단 하나, 정보뿐인 계정이 되었다는 뜻이고 이 계정을 사람들이 찾을까 미지수였다.
그러다 문득 이건 회사 계정이니 이 계정의 피드에서는 콘셉트만 보여주고 활동성은 스토리로, '나'라는 사람은 본 계정으로 보여주기로 방향을 잡았다. 이 결론에 이르기까지 수개월이 걸렸다.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나의 본 계정을 과감하게 연동시켰다. 사실 나의 본 계정은 2021년 10월 당시 팔로워 300명의 비공개 계정이었고, 이 일을 하며 전체 공개만 해놨지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다. 2016년 처음 계정을 만들어 5년여 동안 나의 일기처럼, 앨범처럼 간직하던 계정의 결과물이었다.
"인며들다."
인스타그램에 스며들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도 모르게 인스타그램에 스며 들기 시작한 건.
나를 보여주기 위해 본 계정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배운 대로 나를 나타내는 뷰티과 공간을 나만의 방식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확대한 듯 대문짝만 한 음식 사진만 가득하던 피드에 점점 테마가 생기고 사진도 자리 잡아가기 시작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불과 1년 전과 지금의 내 계정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고 할 수 있고, 누가 봐도 깜짝 놀랄만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시키는 것도 잘 못하면서 과제를 주면 반감이 먼저 앞섰던 나의 생각과 태도가 참으로 어렸던 것 같다. 서른아홉 다 큰 어른이, 사회생활 좀 오래 했다고 머리만 커서 철부지 어린애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때의 그 시간과 많은 과정들이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 얼마나 소중한 지 이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절실함이 그때의 나에겐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왜 그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