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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는 작가 Jun 15. 2023

245? 아니 250!

세상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245? 아니 250!     

오랜 시간 내 몸에 대해 외부적 잣대를 기준으로 평가해 왔다. 외부적 관찰 시점으로 보자면 나는 키 160에 몸무게 54kg, 허리사이즈 25~6인 표준 건강한 몸한다. 최근 3년에 걸친 유산소와 근력운동으로 근력량을 늘리는데 초점을 맞추었고 체지방량을 줄이려 갖은 노력을 해왔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외부인들이 나를 보는 시선으로 스스로를 평가한다.    

  

어릴 때부터 ‘귀엽다’ ‘통통하다’ ‘맏며느리감이다’란 말을 무수히 들어왔다. 비견 나에 대한 칭찬이었을 게다. 물건 품평하듯 사람에 대해 평하지만 대놓고 욕하는 건 우리 동방예의지국의 품격에 맞지 않다. 아이를 낳고서는 보다 직설적인 말도 들었다. ‘아이는 말랐는데 엄마는...( 그다음은 잇지 않았지만 충분히 폭력적인 말줄임표다)’ ‘셋째 가지셨어요? 요새 살이 찌는 듯해서’ ‘다이어트한 게 그 정도면 안 하고 편하게 사는 게 낫지 않아. 자기 생각해서 그래. (생각했다면 그 입 좀 닫아줄래?)’ 10년 전쯤 들은 이 말은 칼이 되어 꽂혔고 다이어트를 그만두려 할 때 다시 시작할 원동력이 되었다.      


가만 보면 그런 말들을 듣고, 혹은 나도 누군가에게 비슷한 어조의 말을 나누었던 기억들이 너무도 많다. 이런 말들은 훗날 내가 거울 속의 나를 볼 때도 메아리처럼 귀를 맴돌았었다. 이렇게 뚱뚱하다니... 어제 그렇게 돼지처럼 (처) 먹더라니. 미쳤나 봐. 이게 사람몸이냐? 등등. 나는 거울 속 내 몸을 이상적인 한 여배우의 그림자에 비교하고 있었다.      


내 몸에 대한 평가는 어릴 때 기억에서부터 비롯된다. 우리 집 식구는 엄마를 제하고 모두 다 손 발이 크다. 특히 187cm의 거구의 오빠는 신장에 따른 배율이 적당하다. 하지만 키가 160cm에 미치는 나로서는 오빠와 동일 사이즈 손과 발사이즈 245mm는 ‘키에 비해 발이 크다’는 소리를 자주 들어왔다. 키는 작은데 발은 크구나부터, 몸이 뚱뚱하니 발이 잘 버텨야지 그래서 발이 큰 거야까지 사람들은 부쩍 내 신발 사이즈를 듣고 한 마디씩 꼭 한다. 듣기 전에는 내가 발이 큰지 작은 지조차 관심도 없었으면서. 

     

고백하자면 내 발은 250mm이다. 러닝화전문 매장에서 발 사이즈에 대해 정확히 다시금 측정하고 잰 결과다. 왼발과 오른발의 차이가 3mm 정도 나지만 근소한 정도라서, 신발전문감별사이자 가게 사장님은 내게 높은 아치가 땅에 닿을 때 충격은 줄이고, 넓은 발볼은 편안하게 해 줄 신발을 권했다. 그런데 나는 이미 내 발이 250인 걸 알고 있었다. 그것도 30년 전쯤에 초등학교 5학년 때 당시 같이 살던 막내 삼촌과 둘이서만 신발가게에 가게 되었다. 삼촌은 내게 240, 245, 250 신발을 여러 개 골라 신겨 보더니 발이 편한 것과 제일 이쁜 것을 고르라 했었다. 그때 이미 250이 편했지만 240을 골라 돌아왔다. 삼촌이 ‘여자는 발이 작아야 이쁨 받는 거야. 도둑발처럼 250은 너무 커’ 라 했기 때문이다.      


그 뒤로 나는 항상 신발을 245를 신어 왔는데, 발 사이즈보다 작은 신발을 신은 덕에 발모양이 변형되었다. 발가락 끝이 둥글게 구부러져 있고, 오른발은 무지외반증처럼 엄지발가락이 바깥을 향해 휘어 있다. 이런 발로 4천 킬로미터를 뛰고 그 이상을 걷고 살았으니 발은 늘 물집과 티눈 투성이다. 부상여파와 속도에 대한 욕심으로 내 사이즈에 대해 탐구하다 얻은 결론이 250을 신자다. 신발 사이즈 하나 크게 신는다고 세상에 큰 변화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너무도 오래 고민해서 다시 12살로 돌아가 내 몸을 긍정하게 되었다.      


이 외에도 내가 내 몸을 부정하고 개선하려고만 했던 시도들은 차고 넘친다. 폭식과 절식, 원푸드 다이어트, 간헐적 단식, 등 의학적 도움을 받지만 않았지, 민간처방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하고, 또 요요를 겪어왔다. 최근 3년간 내 몸무게는 다소 증가가 있을 때(전날 과음, 스트레스로 인한 과자 폭흡, 시골 부모님 댁 방문 등 특이사항)를 제외하고 하향안정기를 취하고 있다. 그간 했던 모든 방법에서 탈피, 식사량과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량을 늘리는 방향만이 정답임을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내게 있어 가장 큰 지지대는 ‘내가 내 몸을 가장 잘 알아내려 노력하기’이다. 나는 매주 인바디를 체크하고, 몸무게와 상반신 바디샷을 찍어 기록해 둔다. 근육의 생성을 확인하고, 한 주간의 과정을 복기한다. 반성과 실망할 때도 더러 있다. 탄수화물의 과도한 섭취,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 폭주 등이 이어지면 몸은 또 정직하게 반영한다. 그러면 또 열심히 운동하면 된다. 또 상체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은 주에는 어깨라인이 제법 마음에 들어 보인 적도 있다. 샤워할 때 달라진 내 몸을 보면 만족감이 최고조다.      


내가 나를 긍정하게 되면서 삶의 회전축도 변화한다. 타인과의 약속에서 내가 먹고 싶은 것, 혹은 제한되는 음식을 피하자고 제안한다. ‘늘 다이어트’냐며 타박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 나를 존중해 준다. 관리하지 않으면서 군살이 느는 사람에게는 식단에 대한 조언도 곁들인다. 내가 해온 것에 대한 자신이 붙어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습관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든다.  

    

오늘도 내 발에 꼭 맞는 러닝화를 신고 내가 원하는 속도로 아침을 시작해 본다. 오늘도 건강하므로 하루를 잘 시작할 수 있었고, 그래서 나의 생기도 돋울 수 있었다. 긍정의 마음 하나가 매일을 시작하는 원동력이 된다. 더불어 몸에 대한 좋은 기억과 등허리를 곧게 편 바른 자세를 기억한다. 나를 믿는다.  

새로 장만한 운동화. 호카.. 당연히 25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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