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와 의지, 돈으로 사세요.

목표지향을 넘어 만족하는 인생 만들기

by 달리는 작가

다이어리가 가장 잘 팔리는 달은 언제일까? 기업의 마케팅에 속는 사람이 될지라도 번번이 주머니 돈을 털어 호갱이 되고야 마는 내가 보기에, 그건 전년도 11월이다. 이미 올해는 망했으니 내년에 새로 세팅하고 성취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달성의 단맛을 상상할 수 있으며. 실현하느라 움직일 때의 고단함은 아직 몰라라 할 수 있으니까. 나는 몇 해 전부터 10월 말이면 신규 다이어리를 골라보는 재미에 빠져 있다. 다이어리를 고를 때는 현명한 소비자가 되도록 신중하게 종이 무게와 촉감, 내지 디자인과 표지까지 살펴본다. 마치 새해에는 이루고자 하는 모든 것들이 이 선택에 크게 영향받는 것처럼 군다.


새로운 다이어리를 펼치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이루고자 하는 목표 50가지를 추린 리스트작성이다. 20대 직장에서 만난 친구는 한해 50가지 작은 일들만 이루고 살아도 즉 '1주일에 한 개씩만 해내는 삶을 살아도 좀 행복하지 않겠니?'라며 흰 눈이 내린 기념이라고 내게 다이어리를 선물했다. 거창한 목표보다는 이루기 쉬운 만만한 것들로 채워진 리스트를 공유하며 직장동료보다 철부지 스무 살로 서로를 대하고 싶었던 우리는 연이은 야근으로 피곤에 절어있던 누런 얼굴을 하고 한참을 웃었었다. 신당동 떡볶이 먹기, 부장 커피 심부름 듣고 쌩까기(금세 돌아설지라도), 남자친구와 눈 내리는 날 손잡고 머리에 눈 쌓이는 인증숏 찍기 등 인상 깊었던 영화 속 한 장면에서 영감 받아 끼적끼적 쓴 게 대다수였다. 대다수는 이루었고 못 이룬 것들은 다음 해 이룰 목표로 옮겨 적었다. 이십 대 중반이었고 그런 것쯤은 언제든 이룰 수 있을 거라 호기롭게 웃어넘겼다.


회사를 그만두고 두 아이 육아기를 거쳐 다시 프리랜서로 일하는 십 년 동안 나는 계속해서 다이어리를 썼다. 당시 쓰던 다이어리는 모두 모아뒀는데 당시는 남편회사나 거래은행에서 주는 사은품 수첩 한편에 내 이야기, 혹은 읽은 책의 한 줄을 써두는 게 다였다. 가끔 펜을 잡고 내가 어떤 꿈을 꾸고 살았는지 고민해보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리스트의 모습을 갖추진 못했다. 계획된 목표에는 가족, 주로 아이들이 나이가 되면 달성해야 하는 성장지표들이 대다수였다. 그게 다시 일하게 되며 점차적으로 다이어리의 리스트는 정량적, 정성적 형태를 띠게 되었다. 사치 같았지만 디자인과 표지질감을 직접보고 다이어리도 구매했다. 내 꿈을 가족들에게 바라는 희망에서 분리하고 숫자로 구체화하고 만다라트차트로 실현가능성을 높이도록 정성을 기울였다. 효율이 높은 일들을 이루고 성취의 만족감으로 허기진 나를 채웠다.


한동안 카페보다 학원수가 더 많은 밀집된 학력 과장의 동네 정서에 맞춰 불안하지 않게 아이들의 성적에 미리 힘쓰고 방학에는 스트레스를 풀린다는 목적으로 다양한 체험형 액티비티를 알아보고 경험하는 게 내 삶의 목표가 되었다. 다이어리 맨 앞장의 목표 리스트들은 이룬 뒤 밑줄로 지우며 느끼는 부모 됨을 확인하고, 좋은 부모라는 지표를 성취할 수 있는 도구였다. 아이 둘이 십 대 중반이 되고, 자신들의 꿈을 위해 튕겨나가고 나서야 나는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내가 나한테 바라는 게 무언지 그제야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씩 나를 조각하는데 힘썼다. 7년 전 바디프로필 찍기, 5년 전 풀코스마라톤 완주하기. 저자 되기 등이 대표적 성과들이다. 계획을 세우고 그걸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나를 다잡는 루틴들로 만족하며 다른 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가족들과의 여행이나 부모님에 대한 효도 여행 등은 중요하게 여기긴 했지만 나만 노력한다고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니 달성하지 못해도 아쉽진 않았다.


2025년 동안 내가 이루고 싶었던 목표 중 하나는 "계절별 풀코스 마라톤 완주"가 있었다. 평생 한번 하기도 어렵다는 마라톤을 완주하고 나서 나는 그것이 주는 달콤한 기쁨에 오래도록 취해 있었다. 한번 풀코스를 완주했으니 이다음부터는 기록이 차근차근 좋아지고, 체력 또한 3개월의 긴 훈련을 이겨낸 후 계속 유지시킬 거라 다짐했었다. 마라톤 훈련은 대개 12~16주의 준비기를 갖는다. 10월 말과 11월 초의 빅대회가 끝이 나연 한 달 휴지기를 갖고 다시 준비하고, 3월 중순 대회를 마치면 여름부터 준비하는 식이다. 한번 몸을 만들면, 그걸 계속 유지시켜야 함을 머리로는 알아도, 몸은 피로했으니 쉬기를 지속적으로 요구한다. 그래서 러너들 중에도 '런태기'(러닝을 태만하게 하는 시기, 주로 큰 대회에서 목표한 레이싱을 완수할 경우 그 이후 오랫동안 휴지기를 갖는 것을 이미 함)가 오거나 제대로 휴식을 해주지 않아 부상을 겪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루 10km를 마음 편히 뛰는 시간에 할애하는 사람은 소위 '런. 친. 자'라 불려도 좋겠다. 러닝에 미친, 친한 사람이다. 매일을 그렇게 뛰어내려면 체력이 뒷받침되고 스트레스 관리가 잘되는 환경이 주어져야 한다. 고작 10km를 뛰는 것은 러너들에게 일상적인 페이스로 한 시간이 걸리는 평범한 운동량이다. 이를 꾸준히 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고, 또 연습하면 못할 바도 아니다. 하지만 하루 한 시간의 달리기를 매일 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시간의 러닝타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시작 전 20 ~30분 웜업과 운동 마친뒨 20 ~ 30분 쿨다운, 근력을 유지하고 관절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근력 보강 운동 30분 이상, 회복을 위한 질 좋은 수면 7~8시간이 필요하다. 즉 하루 1시간의 러닝에는 10시간의 시간적 투자가 먼저 보장되어야 한다.


이뿐인가? 잠을 잘 자는 사람들은 스트레스 관리 전문가라 볼 수 있다. 이들은 잠자는 걸로 자신의 문제점에 대한 고민을 스위치오프하고 기꺼이 휴식을 취한다. 술이나 격렬한 운동, 혹은 도파민이 넘쳐나는 게임이나 과도한 ott시청을 하지 않는 편으로 호르몬 관리를 스스로 하는 쪽이다. 앞서 수면의 조건에 '질 좋은'에 방점이 있는 이유다. 잠을 '그냥' 자는 게 아니라 '잘'자는 사람들은 '팔자 좋은'사람들이라 볼 수 있다. 자신이 직접 뭔가를 나서서 알아서 해결하지 않더라도 삶이 잘 굴러가는 사람들 아니겠는가? 지난해 이맘때 나는 내 운동량을 유지 키시고, '고3아들의 대학 입학'과 함께 길었던 육아기를 졸업하리라 마음먹었었다. 그래서 기록에 욕심을 부리는 게 아니라 일 년 내내 달리기 연습을 하는 사람으로 살겠노라 마음먹었다. 날이 너무 더워서, 아이가 늦게 귀가해서 혹은 아침에 아이병원에 따라가느라 등등해서 운동을 게을리했었다. 하루 빠지고, 하루 더 쉬는 식의 날들이 반복되면서, 지금 달리기에 대한 내 실력은 전성기에 비해 반정도로 사그라든 셈이다.


그래서 나는 올해 아주 어여쁜 다이어리를 샀다. 러닝 목표를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러닝 일지를 쓰기 위해 샀다. 그리고 기록을 경신하는 게 아니라 자세를 교정하는데 주력인 러닝스쿨에도 등록했다. 착지부터 섰을 때 허리 위치 코어 정렬까지 다시 손보는 중이다. 내년에 마라톤은 얼마나 나가고 또 어떤 기록을 세우고 싶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정말 러닝을 좋아하고 그걸 하고 싶은 마음에 내 시간을 안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뛰는 동기는 내 가슴 뛰는 소리를 크게 확인하고 싶어서다. 그래서 나는 오늘 내 의지를 위해 투자를 한다. 시간과 돈을 들여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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