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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는 작가 May 30. 2023

달리기에 지친 당신에게

  

작가들은 글을 뭘로 쓰나요?      

엉덩이로 쓴답니다. 루틴처럼 글쓰기 습관을 잘 가지고, 오랜 시간 습작한 결과로 글을 직조해 내지요. 창의적인 직업이라고 하지만, 체력과 세포에까지 박혔을 것 같은 ‘습’의 힘이 아니고서는 출산에 버금가는 창작의 고통을 버티기 힘들죠. 그렇다면 그 루틴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달리기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착실하게 달린다’고 하는 말은 구체적인 숫자를 들어서 말한다면, 일주일에 60킬로미터를 달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일주일에 6일, 하루에 10킬로미터를 달린다는 것이다. 사실은 일주일에 7일, 매일 10킬로미터를 달리면 좋겠지만, 비가 오는 날도 있고 일이 바빠서 시간을 낼 수 없는 날도 있다. 오늘은 피곤하니까 달리고 싶지 않은 날도 있기 마련이다.“(『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p.21)     


아무렇지도 않게 말합니다. 매일 10킬로미터를 달리면 좋겠지만. 어쩌다 못 뛰는 날이 있다고. 그러니까 하루끼 씨에게 매일 10킬로미터 러닝은 디폴트 값인 셈입니다. 착실함의 최고봉을 보는 것 같아요. 힘들 수 있는 날을 대비해 하루를 쉬게 두라고 말하죠. 이 책에서 작가는  너도 뛰라고 한 번도 말하지 않지만 독자들은 완독 후 반드시 뛰고 싶은 ‘열병’을 앓게 됩니다.? 매일 같은 루틴을 행하는 사람의 모습이 멋져 보이기 때문이죠.    

  

저와 같이 운동하는 ‘달리는 여자’ 그룹(줄이면 달! 려!입니다. 네이밍 딱이죠?)은 혼자 달리거나 달리기를 시작하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달리기라는 걸 해보고 싶은데 혼자 하려니 영 재미가 덜하다고, 혹은 자꾸만 안 하려는 핑계를 찾게 되어 ‘강제성’과 ‘의무감’을 갖기 위해서 그룹에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뛰려는 자발적인 의지는 이미 가진 사람들인데도 달리기를 그만 둘 핑계를 찾을라치면 매일 백 개도 넘는 이유가 다 각각 있다고 웃으며 말합니다.      


나는 매일 힘들다고. 매일 아침에 현관문 나가기가 고역이라고 아침에 한 시간씩 달리고 샤워까지 하고 나면 90분 정도를 써야 하는데. 엄마에게 보통 일이 아니라고. 나는 바빠서 아파서 달리기를 할 수가 없다고. 집 앞 길이 오늘 너무 어두워서 혹은 너무 햇살이 뜨거워서 달리는 시도조차 할 수 없다고 혹은 자신의 운동을 못한 건데 운영자라고 제게 죄송하다고 조심스레 이야기합니다.   

   

그럴 때 저는 또 부드럽게 다가갑니다. 이럴 때 몰아붙이면 사춘기를 맞은 아이처럼 엇갈릴 수도 있으니 말이죠. 당신의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 주시니 우리는 접점이 생긴 셈이며 그런 당신을 이해하노라 이야기합니다. 그럴 때 당신의 마음의 소리는 이렇게 나타났을 겁니다.      

” I hate running “     

보통 러너들은 하루의 대다수 시간을 달리기를 생각하며 지낸답니다. 날씨가 좋다. 달려야겠다. 00 마라톤이 D-00일이군. 달려야겠군. 아 러닝화 할인 쿠폰이 떴네. 사고 신나게 개시해야지. 달려야겠군. 비가 오네. 그치기만 하면 달려 나가야겠군. 오늘 덥네. 가을 마라톤을 위해 오늘은 참아내며 달려야겠군. 다리가 아프네, 또 달리는데 지장 있겠군     


이 정도면 뇌 지도를 그려볼 때 ‘러닝’의 지분이 7,8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봐야겠죠? 달리기를 통해 알게 된 지인들 중 책을 읽다 달리기를 시작한 분들이 꽤 있었는데 이 분들 중 몇몇은 달리기를 위해 독서를 포기합니다. 둘 다를 병행할 시간짬은 도저히 안된다며, 달리기에 총력을 다하겠노라 합니다. 이 사람들은 달리기를 사랑 아니 달리려 태어났다고 봐야겠네요.      


오늘 뛰기 싫으면 뭐 어떤가요? 하루 달리기를 쉰다고 해서 ‘러너’ 자격 박탈! 이런 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오늘 운동을 내일의 나에게 부탁한다고 해서 세상이 뒤집히는 것도 아닌데요. 그냥 재미있어질 때, 또 온몸이 근질근질 달리던 내 몸을 그리워할 때, 그때 못 이기는 척 러닝화를 발에 끼고 나가면 되는 거죠. 입던 옷에 운동화만 신으면 언제 어디서건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이 바로 ‘러닝’ 아닌가요?     


달리기를 싫어해도 좋아요. 그냥 한발 떼는 용기만 있다면 당신은 이미 러너인 셈이니까요. 그럴 때 나는 당신에게 ‘슬로러닝’의 초대장을 보내봅니다. 페이스 이런 거 중요하지 않고요. 거리도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오늘 한 발이 중요해요. 가끔 뛰던 곳에서 나와 풍경이 아름 다운 곳을 걷듯이 움직여 보세요. 다리가 허락하는 만큼만요.      

친구와 걷듯이 풍경을 보며 이야기 나눠 보세요. 잠시 멈추어 풍경에 나를 실어 보면 왠지 한발 더 내딛고 싶어지진 않나요?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꽃대에 몽실몽실 떠다니는 구름에 시선을 맡겨보세요. 달리다 잠시 멀리 바라본 자연 풍경에 내가 일부가 되어 숨 쉬는 걸 느껴 보세요. 러닝을 싫어할 순 있지만, 달리는 내가 그리워질 그 순간을 저장하세요. 오늘의 당신이 하루키 씨가 만났던 어쩔 수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해도 자책하지 마세요. 당신은 걷기에서 달리기를 배운 빼어난 ‘러너’(learner : 배우는 사람) 임을 잊지만 않으시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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