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fe asks...
남편이 경매 도전한다고 했을 때도 싫었지만
고시원 얘기 나왔을 때도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다.
내가 고시원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렇기도 했지만 자꾸 새로운 일을 벌이는 게 싫었다.
그래도 뭔가 해보겠다는 양반을 뜯어말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뭐 하나라도 손해 보는 걸 세상 억울해하는 남편이
갑자기 몇 백을 날리고 고시원을 포기해 버렸다.
고시원 원장 첫 도전하기도 전에 2백만 원 손해를 봤다고??
Husband says...
한의대 공부 그만두고 구매대행, 경매 계속하면서 그때 한창 고시원이 수익률 좋다고 떠서 나도 관심을 가졌어. 내 친척 중에 한 분도 고시원 오랫동안 운영하셨던 것도 기억이 나고.
그래서 한번 알아는 보자 하는 마음으로 찾아보니 여기는 좀 폐쇄시장이더라고. 그냥 물건 소개받는 것도 50만 원 정도 돈을 내야 시작이 가능하고. 막상 고시원 시장에 진입을 하면 그 50만 원이 아주 큰 비용은 아니지만 사실 처음에는 좀 망설여지기는 하지. 근데 마침 내가 속해 있던 고시원 관련 단톡방에 어떤 분이 자기가 내일 고시원 임장을 가는데 같이 동행해 줄 사람 있냐고 모집하더라고. 처음이라 자기 혼자 가기 뻘쭘하고 뭘 물어봐야 할지 모를 수 있으니 일행처럼 같이 가서 질문도 해주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바로 손을 들었지.
그렇게 해서 생애 첫 고시원 임장을 가게 되었어. 을지로에 있는 아주 허름한 건물 속 고시원이었지. 내가 봤을 때는 보증금은 세지만 권리금도, 월세도 낮은 것 같아서 처음 시작하기에는 괜찮겠다 싶었어. 그런데 고시원 소개비는 처음 동행 제안해 주신 분이 냈기 때문에 물건이 좋든 싫든 그 어떤 의견도 제시할 수는 없었어. 헤어질 때 약간 안 할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길래 그 단톡방에 있던 아이디로 검색해서 개인톡을 날렸지. 혹시 계약했냐고 물어보니 아직 망설이고 있대. 그래서 한 일주일 후에 다시 또 물어봤어. 그랬더니 안 할 것 같다고 하길래 그럼 조심스럽게 내가 해도 되냐고 물어봤지. 조금 떨떠름하게 대답은 했지만 해도 된다고 하길래 바로 중개사에게 연락했어.
임장도 다시 한번 더 갔는데 없는 돈에 이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싶었고 다른 사람들이 낚기 전에 빨리 해야겠다는 조급함이 생겨서 계약금, 임대 보증금까지 후다닥 보냈지. 그러고는 다시 고시원으로 가서 구석구석 보는데 옥상에 보니까 의자들이 동그랗게 모여져 있길래 마침 옥상에서 담배 피우는 입실자에게 여기 살면서 불편한 점이 있냐고 물어보니 입실자들이 정기적으로 옥상에 모여서 고기 구워 먹고 술 마시면서 그렇게 싸운다고 하더라고.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동안은 그냥 고시원 건물만 봤는데 그제야 입실자들의 면모가 조금 더 입체적으로 그려지더라. 워낙 허름한 고시원이다 보니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거지.
'입실자들끼리 서로 싸워서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지...'
덜컥 겁이 나더라고.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나도 정말 어려웠던 시절이 떠오르더라. 눈에 초점 없이 지나가는 그 사람들을 보면서 연민의 정 같은 것도 느끼게 되더라고. 이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인가... 별의별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지.
그래도 거기까지는 참을만했는데 고시원 방 개수를 세봤더니 방 개수가 모자란 거야. 예를 들어서 분명 나는 방이 20개라고 들었는데 쓸 수 없는 방이 4개나 있는 거야. 아주 오래된 건축물을 억지로 고시원을 만들다 보니 방 안에 파이프, 공용 보일러 같은 것들이 들어가 있는 거지. 그런데 이런 것까지 다 포함해서 나한테 알려준 거야.
여기서 사실 핀트가 완전 나갔지.
너도 알잖아. 나 손해 보는 거 완전 극혐하는거.
그래서 바로 중개인 불러서 따졌지. 거짓 정보를 준거 아니냐... 계약 파기하겠다... 하면서 내가 거의 뒤집었어. 한 서너 번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임대 보증금은 내주었지만 200만 원 권리보증금은 못 돌려주겠다고 하더라고. 사실 이건 소송을 가도 내가 이겨. 허위 정보를 줬기 때문에 시간의 문제인데 현 원장이 너무 완강하게 나오고 중개사도 원장 편을 들겠더라고. 정말 머리채 붙잡고 한바탕 하고 싶었는데 또 한편으로는 소송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지는 않더라고. 200만 원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어쩌면 괜히 들어가서 방 개수도 모자란데 입실자들 뒤처리만 하다가 나오는 것보다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결국 그렇게 해서 비싼 수업료를 냈다치고 200만 원을 포기하게 되었지. 사실 나 정말 손해 보는 거 싫어하잖아. 그래서 정말 내 인생의 치욕스러운 순간 중 하나야. 돈도 돈이지만 그때 정말 우리 식구들 볼 면목이 없었지.... 그 이후로 사실 한 1년인가 고시원 물건은 아예 안 봤었지. 그리고 경매만 열심히 집중했어.
그렇게 고시원 생각을 접었다.
당분간은.
Wife thinks...
그렇게 남편의 첫 고시원 도전은 실패했다.
그동안 고시원, 입실자들의 상황을 들으면서 나도 조마조마했다.
그래서 몇 백 손실은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감사하다.
그렇게 치욕스러운 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다시 도전해 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