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세계로 올인하다
‘경계선 정도겠지…’라고 생각한 마지노선이 무너지고 한바탕 감정의 태평양에서 허우적거리자,
또 다른 거대한 파도가 저를 덮쳤습니다.
‘이제… 어쩌지?’
매체를 통해서만 접했던 자폐가 이제 제 현실이 되니,
뭘 어찌해야 할지에 대해서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완전 미지의 영역이었죠.
사실 이때 저는 막 새로운 회사로 이직한 지 불과 2달밖에 되지 않았던 시점이었습니다.
첫 회사에서 7년, 두 번째 회사에서 11년이라는 근무했던 외국계를 뒤로 하고 큰 결심을 하며 처음으로 한국 대기업으로 이직해서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초기 적응 시기를 지나가며 조금씩 시동을 걸어야 하는 그때, 자폐 진단이 나온거죠.
냉정하게 판단해서,
새로운 회사와 자폐라는 미지의 세계를 동시에 감당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답해야 할 질문은 하나.
이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중요하고 시급한가?
답은 뻔했습니다.
이직한 회사에는 송구스럽지만 그 회사는 꼭 제가 아니어도 되나,
제 아이에게 저는 대체불가능한 ‘엄마’이니까요.
그리고 잘은 모르지만 하루라도 빨리 아이와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결국, 아이에게 올인하기로 했습니다.
결론은 하룻밤만에 나왔고 바로 다음 날 회사에 사직 의사를 밝혔습니다. 당연히 놀라셨지만 감사하게도 회사에서는 성숙하게 받아주셨습니다. 새롭게 영입하여 빨리 적응하게끔 적지 않은 투자를 한 것을 생각하면 아쉬운 소리를 하실 법도 한데도 오히려 사직이 아닌 ‘6개월 휴직’을 권고해주셨습니다. 어떤 분은 본인의 경험을 공유해 주시면서 ‘우린 전문가가 아니니까 전문가를 고용할 수 있는 경제력을 확보하는 것이 더 도움될 수도 있다’라는 실질적인 조언도 해주셨습니다. 사실 충분히 설득력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일단 휴직 제안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6개월 후 다시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결국, 6개월 후에도 다시 회사로 돌아가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휴직을 받아들일 때도 이게 수개월 내 끝날 이슈는 아님을 알았지만 어쨌든 잠시마나 마음으로라도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주었음에 감사할 뿐입니다.
그렇게,
18년간 인생의 한 챕터가 지나가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