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에서 확증으로
급히 검사를 받기 위해 서울대학교 병원에 연락해서 간신히 초진 일정을 잡았습니다.
지금은 아마 더 심해졌겠지만 조금이라도 유명하신 선생님들은 최소 1년은 기다려야 했고 그렇게 기다려서 초진을 받아야 검사 일정을 잡고 또 그 결과를 듣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을 인내해야 합니다. 운좋게 진료 취소건이 생길 수도 있다 해서 웹사이트를 하루에도 몇번씩 드나들어 용케 빈 자리를 움켜쥘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전화 예약만 가능한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몇 달 후 병원으로 향했죠.
여러 후기글들로 예상은 했지만, 의사 선생님과의 초진은 허무할 정도로 짧았습니다. 하선이의 행동에 몇번 눈길 주시고 아이의 이름을 불러 보시더나 결론은 역시 “일단 검사해보자” 였습니다.
함께 간 남편이 저보다 더 답답했는지, “혹시 현재까지 보시고 조금 이상하다 싶은 행동이 보이는지요?”라고 물으니 다소 의외의 부분을 지적하셨습니다.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낯선 의사 선생님을 게의치 않고 책장에 있는 장난감으로 돌진한 것. 우리 부부는 이에 대해 딱히 문제 의식을 느끼기 보다는 오히려 낯선 환경에도 적응을 잘한다라고 좋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보통은 낯선 공간과 사람에 대한 경계를 하면서 눈치를 본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아, 우리가 아이를 몰라도 너무 몰랐구나…’라는 회한이 밀려들면서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진료실을 나온 후 다음에 있을 검사날을 초조하게 기다렸습니다.
회사 일정 때문에 검사 당일은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다녀왔습니다.
K-CARS, ADOS라는 발단진단법으로 작은 검사실 안에서 검사자가 하선이와 교류하면서 관찰하고
아울러 부모들이 작성하는 긴 설문지를 바탕으로 평가를 하게 됩니다.
대략 1달 뒤, 결과를 듣기 위해서 다시 의사 선생님의 진료실로 향했습니다.
‘그래, 자폐는 자폐일거야. 그런데 경계선이겠지.’
그것이 제가 스스로 정한 마지노선이었습니다.
초진 때와 같은 의사 선생님을 마주보며 앉았는데
기계처럼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 CARS 점수가 37.5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점수면 어느 정도인가요? 경증인가요?”
“중증이죠”
순간 뇌가 멈추는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가면서 온갖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왜 진작에 내 말을 듣지 않았나에 대한 가족에 대한 원망,
분명 의사 선생님께서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하셨지만 ‘혹시?’라는 생각들이 머리 속에서 날뛰었습니다.
내가 노산이라서?
임신했을 때 야근을 해서?
시험관이라서?
출산이 잘 되지 않아서 아이의 머리를 인위적으로 빼서?
회사 때문에 내가 아이를 잘 못 봐서?
TV를 보여줘서?
짓누르는 죄책감에 미칠 것 같은 밤을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