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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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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종금 Apr 05. 2023

< 알 >

4장


 100층 규모의 건물은 거울처럼 바깥 풍경을 비추고 있을 뿐, 내부는 전혀 보여 주지 않았다. 혁이는 M사 앞으로 머뭇머뭇 걸어갔다. 들어가는 문을 찾아야 하는데 좀처럼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혁이가 건물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제자리로 왔을 때였다. 지이잉, 발밑에서 붉은 레이저가 솟더니 혁이의 몸을 감쌌다. 그러곤 유리 벽에 홀로그램 글씨가 나타났다.


생산번호 M1-12 김혁, 집에 돌아온 것을 환영합니다.


 생산번호? 혁이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 제대로 정신을 차릴 사이도 없이 유리 벽이 움직이더니 문이 열렸다. 혁이는 자석에 끌린 것처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에는 하얀 가운을 입은 안드로이드와 운반용 로봇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나선형 에스컬레이터에는 알이 그려진 상자들이 쉴새 없이 오르내렸는데, 준이가 배달될 때 담겨 온 바로 그 상자였다. 상자를 운반하던 안드로이드 하나가 혁이를 보더니 ‘AS 접수대’라고 쓰인 안내판을 가리켰다. 혁이는 영혼을 잃은 로봇처럼 터덜터덜 접수대로 걸음을 옮겼다.


 “뭔가 착오가 있을 거야.”


 접수 대원들은 복제인간들의 머리카락을 헤집고 바코드를 찍고 있었다. 미처 말을 걸 사이도 없이 접수 대원이 혁이의 정수리를 헤집었다. 그리고 “띡” 소리와 함께 “M1-12 김혁”이라는 기계음이 들렸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접수 대원은 혁이의 말 같은 건 관심이 없었다. 재빠른 손놀림으로 혁이 가슴에 이름표를 붙이고 다른 방을 가리켰다. 겁에 질린 혁이는 뒤로 물러나 대열에서 벗어났다. 그러곤 지나가는 직원의 등 뒤에 따라붙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직원은 ‘물류창고’라고 쓰인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물류창고’는 알을 수송하기 위해 만들어진 창고였다. 배달 트럭과 운반용 카트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혁이는 알 상자 뒤에 숨어 주위를 살폈다. 배달 트럭은 두 종류가 있었는데 하나는 ‘고객 배송’이라고 쓰여 있고, 다른 것은 ‘재생공장’이라고 쓰여 있었다.

 얼마 뒤, 안에서 나온 직원이 복제인간들를 데리고 ‘재생공장’ 트럭으로 갔다. 짐칸 문을 열고 복제인간들을 태우려는 순간 누군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주, 준이?’


 준이는 혁이를 못 본 것 같았다. 직원은 복제인간들를 모두 태우고,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혁이는 직원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기를 기다려 트럭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어서, 나와! 다른 분들도 어서 내려요.”


 그러나 다들 데면데면 쳐다볼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혁이는 다시 한번 소리쳤다.


 “어서 도망가시라고요!”


 한 복제인간이 나지막이 대꾸했다.


 “우린 반품되었어. 어디로 가란 말이야?”


 “가족이 있을 것 아니에요? 집으로 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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