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 하나뿐인 거실에서 꿈꾸는 우리 집의 모습
우리 집. 이제 더는 엄마, 아빠의 집이 아니라, 나와 오빠가 주인이 된 집이다. 공과금 한 번 내본 적도, 낼 줄도 모르는 내가 앞으로 일구고 꾸려나가야 할 집. 설렘과 책임감이 뒤섞인 그 이름이 ‘우리 집’이다.
우리 집에는 TV가 없다. 각종 혼수나 가구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해도 좋다고 말하던 오빠는 단 한 가지 제안만 했다. 거실에는 TV를 두지 말자는 것이었다. 오빠가 꿈꾸는 가족의 모습은 나중에 아이들과 함께 거실에서 책을 읽거나, 보드게임을 하거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TV를 틀어놓고 일방적으로 바라보는 모습이 아닌, 진짜 대화와 교감이 있는 가정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말에 나도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선택 덕분에 우리 집 거실 창으로 매일 다른 모습으로 물드는 영화 같은 노을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
하늘이 홍매색 빛깔로 물들여질 때면 우리는 하던 것을 멈추고 나란히 창가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몇 분 되지 않아 사라져 버리는 그 찰나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일 달라지는 하늘은 우리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선물했다. 우리 집 최고의 장점은 바로 이 해 질 녘 노을이었다. 그 노을은 마치 지친 하루에 대한 보상 같았다. 아무리 회사에서 힘들고 지친 하루를 보냈더라도,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우리만의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도 깊은 행복일 줄은 몰랐다. 그저 편히 쉬고, 자유롭게 뒹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마도 장거리 연애의 결실이라는 점이 우리에게는 더 뜻깊게 다가왔던 것 같다. 서울과 순창을 오가며 겨우 데이트하던 지난날들이 이제는 함께 집에 돌아와 하루를 마무리하는 순간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행복이라는 말보다 더 진하고 풍부한 단어로 표현하고 싶을 만큼 벅찼다.
노을이 더 잘 보이는 방향으로 소파를 옮겨 보았다. TV가 없으니 소파를 이리저리 옮겨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저 창가에 앉아 노을을 더 가까이 느끼고 싶었다. 지금은 소파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거실이지만, 우리는 그 빈 공간을 보며 앞으로의 모습을 그려나갔다. 창가에는 작은 테이블을 두고 노트북으로 작업도 하고, 차도 마시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얘기를 나누었다. 거실 한쪽 끝에는 예쁜 화초를 두어 생기가 느껴지도록 하고, 결혼사진은 우드톤 액자에 담아 벽에 걸면 참 자연스러울 것 같았다. 저 모서리에는 스탠드 조명을 하나 놓아두면 더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될 것 같았다. 이렇게 앞으로 꾸며 나갈 우리 집을 상상하다 보니 마음이 한없이 즐거워졌다.
창밖으로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아서인지 아이들은 여전히 뛰놀고 있었다. 배달 오토바이, 시내버스 소리, 경적 소리로 가득했던 서울 친정집을 떠나 이곳에 오니 왜 다들 지방에서의 삶의 질이 더 높다고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아무리 커도 소음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아파트촌에 생기를 불어넣는 듯했다. 그림 같은 노을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어우러지니, 이곳은 그저 천국 같았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물론 부모님의 품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우리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앞으로 마주할 크고 작은 문제들, 해결해야 할 현실들이 머릿속을 스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설렘이다. 무엇보다 오빠와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에, 나는 걱정보다 기대가 더 크다. 그렇게 우리는 첫날밤, 우리만의 집에서 우리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