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순하고 말을 잘 들었던 나는 부모님과 주위 어른들의 칭찬을 많이 받았다. 칭찬이 좋은 면도 있으나 부작용도 있었다. 너무나 성실했던 나는 어른들의 기대에 맞춰 사는 게 가끔 버거울 때도 있었다. 공부도 열심히 심부름도 착실하게, 교회도 안 빠지고 다녔으며 헌금하라고 받은 돈으로 과자 한 번을 안 사 먹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공부를 칭찬받을 만큼 하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혼신을 다 해 공부를 해도 돌아오는 칭찬은 딱 내 성적만큼이었다. 누나의 전교 석차와 내 반 석차가 비슷했던 우리 남매의 성적표 탓이었지 싶다. 거기에 더해 나에게는 컨디션 안 좋아 실수할 때만 전교 2등을 하는 사촌 형까지 있었다. 이런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었으니, 공부 잘한다는 말 한마디 들어보려는 나의 노력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 했다.
그런데 다 크고 나서도 머리를 떠나지 않는 칭찬이 하나 있다. "아이고 우리 아들 밥 잘 먹네" 이러면서 엉덩이 두드려 주시던 엄마의 칭찬. 그게 문득문득 떠오른다. 밥을 잘 먹는다고 칭찬을 받다니... 밥은 그냥 내가 맛있어서 먹었을 뿐이다. 그런데 엄마의 그 칭찬이 묘하게 힘이 된다. 그 말을 떠올리면 잘 차려진 따뜻한 밥을 먹고 난 것처럼 마음이 든든해진다. 밥 잘 먹는다고 칭찬을 해주는 것은 그야말로 존재를 향한 무조건적인 지지와 긍정이다. 이 밥을 먹고 내가 생명을 이어가고 몸이 자라나는 그 근원적인 현상에 대한 지지와 긍정인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있는 것 그 자체로 사랑스럽다는 표현이다.
칼 로저스가 처음 주장한 이 무조건적인 지지(Unconditional positive regard)는 공감(Empathy)과 진솔함(Congruence)과 함께 사람의 정신 건강에 없어서는 안 되는 3대 필수 영양분이다 (Rogers, 1961). 마치 식물이 물과 흙과 햇빛이 있어야 사는 것처럼 사람도 이 세 가지가 갖춰진 환경에서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한다. 이 분은 정신과 의사였는데, 수 없이 많은 중증 혹은 경증 정신질환자를 치료하고 연구조사하면서 이 정신건강의 3대 구성 요소를 발견했다. 후에 이것은 모든 상담훈련에 기초가 되었다.
경쟁이라면 지구 상의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대한민국이다. 성적, 대학 서열, 스펙, 직장, 연봉, 아파트 평수, 자동차 크기, 명품 가방의 브랜드 등등 우리는 어려서부터 치열하게 경쟁하며 비교당하고 비교하며 살아간다.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지 않은 삶은 의미 없는 삶이 되고 만다. 경쟁의 노예로 사는 삶이다.
그러나 사람의 자신의 대한 근원적 믿음은 상대적 우월감에서 오지 않는다. 조금 모자라고 허술해도 괜찮다. 그저 있는 그대로 당신이 좋다는 조건 없는 지지와 사랑을 받을 때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이 꽃 피게 된다. 치열한 경쟁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루를 그럭저럭 잘 버텨낸 당신은 충분히 사랑받을만한 존재다. 그냥 그 자리에 있어줘서 고맙고 사랑스럽다. 있는 그대로 좋다.
참고문헌: Rogers, C. (1961). On Becoming a Person.(진정한 사람 되기). London. Consta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