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 단순함을 버리고 복잡함을 선택하는 과정
‘착하다’라는 말로 사람의 성격을 종종 묘사한다. 주로 어린이들에게 ‘아이 착하다!’라고 하는데, 나는 이 표현이 다소 불편하다. 상담 장면에서 예상 밖으로 자주 만나는 어려운 유형의 사람들이 바로 착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착하게 살아온 내담자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냥 나쁘게 살지 왜 저렇게 살까...’라는 마음이 불쑥 올라온다.
K군은 어려서부터 착한 아이였다. 대학 생활까지는 그저 조용한 남학생 이어서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었다. 그런데 군생활은 달랐다. 유난히 후임병들에게 관대했던 K군의 군생활은 K군이 선임이 되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정작 자신의 후임들은 악랄하기 그지없는 다른 선임병들의 말을 더 잘 듣고 K군의 말은 은근 무시했다. K군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배신이었다. 전역 후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기가 조금 손해를 봐도 양보하고 배려하면서 직장생활을 했는데, 그런 자기를 알아주기는커녕, 요령과 변칙에 능한 동료들이 더 인정받고 잘 나가는 것을 보고 견디기가 힘들다고 했다. ‘나는 평생을 착하게 살아왔는데 세상엔 나쁜 사람들로 가득하다’라며 K군은 그동안에 착하게 사느라 꾹꾹 눌러왔던 분노를 터뜨렸다. 치유의 시작이었다.
전이(Transference)는 K군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에 유용한 상담심리 개념이다. 전이는 어려서 형성된 생존 전략을 어른이 되어서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아이들의 입장에선, 자신보다 훨씬 강력한 어른들로부터의 압력을 해결하는 것이 매일 당면한 과제이다. 아프다고 하거나, 참거나 혹은 대들면서 상황을 모면하는데 (Pietsch,1974), 결국은 어른들 마음에 들도록 착하게 행동하는 것 역시 상황을 해결하는 여러 방법 중에 하나다. 어른을 공경하는 유교문화가 강한 한국 사회에선 착하게 행동하는 아이에게 여러 가지 실질적 혜택이 따르기도 한다. 문제는 이렇게 어려서 만들었던 전략을 어른이 되어서도 별다른 고민 없이 사용하는 데에 있다. 전이(Transference)에 갇혀 사는 삶이 되는 것이다. K군은 자신을 착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세상 사람들을 착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누었다.
그러나 세상은 항상 그렇게 흑과 백으로 명료하게 나뉘지 않는다. 선과 악이 분명히 나뉘는 것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영화나 결론이 뻔 한 할리우드 액션 영화 에서나 그렇다. 세상은 흑백이 아닌 총 천연색이다.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한다. 때로 혼란스럽고 어렵지만 그 복잡한 과정을 스스로 경험하고 해석하며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 과정이 곧 어른이 되는 과정이다. 그것이 가끔은 지치고 귀찮은 일이기 때문에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종종 등장한다. 특정 인종, 성별 혹은 민족에 대한 혐오의 감정을 조장한 후에 쉽고 간편하게 정의의 편이 되어서 차별과 탄압을 자행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사회 일부가 집단적인 퇴행 상태를 보이는 것 같아 착잡하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착하다’라고만 하지 말고 다양한 표현을 사용하기를 권한다. ‘씩씩하다, 순하다, 밝다, 상냥하다’ 등등 생동감 넘치는 다른 표현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아이가 심부름을 훌륭하게 완수했으면 착하다고 할 게 아니고 고맙다고 말해 주어야 한다.
<참고문헌>
Pietsch, W. (1974). 'Human Be-ing.' TRAFFORD, Cana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