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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다 Feb 26. 2022

중년의 위기

50대 초반 내담자 A 씨는 고졸사원으로 입사해서 30년 직장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명예퇴직을 했다. 그러나 이 내담자는, 그동안에 모아놓은 돈도 있고 아내도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당장은 급할 것이 없었지만, 한사코 무언가를 하려 했고 몸이 예전처럼 버텨내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노라고 호소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어학원 혹은 헬스장에서 자기 훈련으로 하루를 시작해서 밤늦게까지 야근을 밥먹듯이 하던 삶을 회상하며 ‘내가 그때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성실함과 근면함을 따지면 감히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지였다. 나는 상담 내내 이 내담자의 삶에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던 A 씨에게 당장 아침에 일어나서 갈 곳이 없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커다란 변화였다. 그동안 쉼 없이 달려온 자신을 위로하고 다시 찬찬히 지금 현실을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시도를 했으나, 이런 나의 노력은 번번이 실패했다.


상담심리에서 '전이(Transference)'라는 개념은 이런 꽉 막힌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유용하다. 어린 시절 자라오면서 형성된 삶을 대하는 자세는 성인이 된 후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Peck, 1978). 예를 들어, 엄격한 부모 밑에서 순종적으로 자란 어린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직장이나 사회에서 윗사람들에게 순종적인 삶의 태도를 계속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나는 한 사람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어린시절 뿐만 아니라 청년기와 중장년기에도 계속해서 형성되고 그 이후의 삶의 단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위 내담자는 아마도 본인이 20-30대에 열정적으로 살았던 그 삶의 단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세상은 매 순간 끊임없이 그리고 생각보다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20년 혹은 30년 전의 경험과 인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를 고집한다. 예전 같지 않은 중년의 몸 여기저기에서 노화의 신호를 보내고 있으나 그것을 알아차리고 다가온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미디어 광고 문구에 ‘인생 100세 시대, 꽃 중년’ 등등의 표현을 쓰며 중년을 축하하고 새롭게 의미 부여하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실제로 기대수명이 100세가 되었으므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런 광고 문구가 나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꽃 중년’으로 포장한 그럴싸한 모델이 소비자들의 심리를 3-40대로 돌려놓고 관련 상품이 더 많이 팔리기를 바라는 것일 뿐이다. 전이를 부추기는 나쁜 광고들이다. 잔인한 이야기이지만, 지나온 삶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 ‘나 때는 말이야’를 수 없이 반복해도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삶의 절반을 보낸 시점에서, 예전 같지 않은 몸과 마음으로 확연히 느껴지는 것은, 지나온 시간에 대한 상실감이다. 아프지만, 그 상실감을 충분히 표현하고 마주해야 한다. 그 과정을 잘 거치고 나면 우리는 비로소 ‘지금 여기’를 보게 된다. 지나온 시간에 가슴 아프도록 애착이 가는 만큼, 생에 남아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도전과 성취 욕망과 좌절로 가득했던 생의 전반기를 뒤로하고 보다 풍성해지고 성숙해지는 인생 후반기를 열어갈  수 있게 된다.


Peck, M., S. (1978). The Road Less Travelled 끝나지 않은 길. Touchstone,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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