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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다 Feb 17. 2022

무엇이 궁금한가?

  오전에 하는 교육을 받을 일이 생기면 나는 살짝 긴장하는 편이다. 주로 오전에 듣는 강의나 교육에는 남자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상담 훈련을 받기 시작하면서 늘 있었던 일이어서 익숙해질 법도 한데 머쓱한 기분은 어쩔 수 없다. 한 번은 강의실에 들어섰는데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 교육생 한 분이 친근감과 호기심을 표시하며 이것저것 물으셨다. 결혼은? 아이들은? 직업은? 나는 막힘없이 단답형으로 공손하게 대답했다. 이어서 이 어르신은 자신의 자녀와 손자 손녀에 대한 자랑을 한참 동안  하셨다. 지루했다. 행복하게 잘 사는 남의 집 이야기는 대체로 지루하다. 그래서 불행의 종합선물세트인 막장 드라마가 인기가 있는 법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상대방의 신상에 대해 내가 궁금한 것은 내가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들이다. 내가 번듯한 직장에 다니면 새로 만난 그 사람은 직업이 뭘까 알고 싶어 지고, 우리 아이가 시험에서 100점을 받아오면 다른 아이들 점수가 궁금해진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 사이에서도 '넌 요즘 뭐하냐?'라고 묻는 녀석들은 대체로 탄탄한 대기업에 다니는 잘 나가는 친구들이다. 

궁금하지 않을 때도 있다. 내가 백수이던 시절 나는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의 직업이 궁금하지 않았다. 직업에 대한 이야기가 아예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명문대학으로는 취급되지 않는 그저 그런 대학을 나왔는데, 그 때문인지 누구를 만나도 그 사람이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가 궁금하지 않다. 대신에 나는 영어를 잘하기 때문에 영어교사나 학원강사를 보면 궁금해진다. 저 사람은 어디서 영어를 배웠을까? 나처럼 영국식 발음을 선호할까? 감명 깊게 읽은 원서는 무엇일까? 등등이 궁금하다. 집단상담이 내 전문 분야여서 상담하는 사람을 만나면 집단상담도 하는지 개인상담을 주로 하는지가 궁금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런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만날 일이 자주 없기 때문에 나의 질문으로 상대를 당혹스럽게 할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나이, 성별, 직업, 학벌, 소득 수준, 종교, 거주지역 등등의 한 사람의 사회 문화적 자산은 알게 모르게 그가 세상을 보고 느끼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친다 (Hammer et al., 2016). 그것이 자신도 미처 모르는 사이 기득권과 신념이 되었을 때 상대에 대한 무례함으로 드러나게 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꼰대’가 되는 것이다. 한부모 가정과 조손가정 아동들을 여러 차례 상담하고 난 이후부터 나는 어린이를 처음 만났을 때 ‘부모님은 뭐하시니?’라고 묻지 않는다. 대신에 ‘집에 가면 어른들은 누가 계시니?’라고 물어본다. ‘부모님’이라는 단어 하나에 움츠러들고 기가 죽는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다.  

상담 현장에 꾀 오래 있었지만,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만나는 것은 간단치 않다. 사람을 만나기 전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편견과 선입견을 일단 제거해야 한다. 나를 더 드러내고 싶은 욕망도 다스려야 한다. 무엇이 궁금한가? 그것이 나의 안녕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인지 상대의 안녕을 위하는 마음인지 잘 구분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Hammer, T. R., Crethar, H. C., & Cannon, K. (2016). Convergence of identities through the lens of relational-cultural theory. Journal of Creativity in Mental Health,11,126-141.

http://doi.org/10.1080/15401383.2016.1181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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