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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coming Jane Oct 15. 2019

그리워요. Dorothy 할머니

스물 한 살, 나의 인생 멘토 


 안녕, 그동안 잘 지냈어?
 



빅토리아에 도착하자마자 아직도 그곳에 사는 21살에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주도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빅토리아라는 곳에서 20대의 1년을 보냈다. 대부분 한국인이 그렇듯 나에게는 첫 독립과 다름없었던 그 시간은 물리적으로 훨씬 길고 중요했던 20년이라는 시간을 압도할 만큼 나의 모든 것을 흔들어 놓았다. 


 작은 시골 마을, 사슴이 뛰어다니고 너구리와 토끼를 매일 한 번씩 만날 수 있는 이 동네에서 매일 아침, 바다를 바라보며 녹차를 마시는 호스트와 가족처럼 1년을 보냈다. 나의 호스트였던 Dorothy 할머니는 대학교 교직원으로 오랫동안 재직하셨고 교수이셨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쓸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외국 유학생들을 위한 호스팅을 시작하셨다고 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조금 알아듣기만 나를 데리고 수영도 가고 장도 봐서 매일 밤 저녁도 해먹으며 할머니가 좋아하는 올드무비를 감상하는 것이 우리의 일과였다. 매주 목요일이면 '피쉬앤칩스' 단골 가게로 출동했고 명절 때마다 할머니의 가족들과 파티를 했다. 80살의 할머니와 21살의 동양 여자아이가 그렇게 1년의 세월을 보냈다.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가며.


 박하 잎을 따다가 차를 끓여 먹고 해질녘 집 앞 해변으로 달려가 모래성을 쌓거나 함께 강아지를 산책시키던 초등학생 손자들은 내가 결혼을 해서 남편과 다시 그곳을 방문했을 때 어느새 18살이 되어있었다. 세계여행을 하며 맨 처음 여행지를 빅토리아로 가겠다고 말하자마자 할머니는 본인의 Master Bedroom을 우리에게 내어 주셨고 일주일 내내 맛있으면 음식을 대접해 주셨다. 빅토리아가 처음인 남편을 위해 관광객들이 갈만한 곳들도 손수 운전해서 데려다주시기도 했다. 90이 가까운 할머니의 나이 탓에 조금씩 주변을 정리하시기로 하셔서 이 집을 팔게 되었고 우연히도 우리가 이 집에 마지막 손님이 되었다며 우리를 정성껏 대접해 주셨다.


 

 나의 20대를 결정했던 1년의 추억이 다 사라지기 전에 마로의 이곳을 소개해 줄 수 있어서, 20대의 나를 만나게 해줄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그리고 Dorothy 할머니에게 내 소중한 친구이자 반려자를 소개할 수 있어서 더없는 영광이었다. 아직도 해보고 싶은 것이 많고 가보고 싶은 곳이 많은 철없는 나라서 아이를 갖는 것이 무섭다고 말하는 나에게 “아이가 있다고 해서 네가 좋아하는 것을 멈출 필요는 없어. 아이가 생겨도 여행을 다니고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면 되는 거야.” 라고 90년 연륜이 담긴 조언을 해주실 때는 눈물이 핑 돌았다. 캐나다 동부로 건너가기 위해 집을 떠날 때, 부끄러워서 괜히 겸연쩍어서 마지막 인사를 하며 꽉 안아드리지 못한 것이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 언제 다시 만날지도 모르는데 너무도 쉽게 할머니의 손을 놓은 건 아닌가? 가슴이 내려앉을 때가 많다. 그리워요. Dorothy 할머니.








*Today's Place : 캐나다, 빅토리아 


캐나다 서부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인 밴쿠버에서 3시간 정도 걸리는 곳으로 BC주의 주도이기도 한 영국스러운 도시예요. 캐나다인들이 은퇴하고 살고 싶은 도시로 손 꼽을 만큼 아름다운 경관과 온화한 날씨를 가지고 있고 '꽃의 도시'라는 별명에 걸맞게 어디를 가든 꽃과 정원과 바다를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아름다운 장소입니다. 주요 관광시설은 이너하버(Inner harbor) 주변에 모여있으며  부차드 가든(The butchart gardens)이라는 정원에서 에프터눈 티를 즐겨보라고 강력 추천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관광지는 아니지만 UVIC 이라는 대학교 근처에 Cabboro Bay라는 곳을 추천합니다. 제가 살았던 동네와 가까운 곳인데 현지인들만 가는 곳이라서 고요하면서도 아름다운 빅토리아의 느낌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장소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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