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개월 아기에게 바라는 게 많은 아빠
나는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는 '남자' 직장인이다.
건설업 특성상 여성보다는 남자의 비중이 높아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직원은 거의 없다.
100명 중 1~2명 정도 사용할까 말까이다.
다행히 30대 젊은 직원들 중심으로 몇 년 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진급, 고과에 간접적으로 영향이 있기에 눈치를 많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육아휴직을 사용한 건
내 인생의 우선순위가 세팅되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나는 시간 흘러가는 대로 사는 직장인이었다.
딱히 무엇을 이루고 싶거나,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출근 → 퇴근 → 취침 → 출근 → 퇴근 → 취침"의 반복이었지만 대체로 만족하며 살았다.
하지만 번아웃을 겪고 내 삶은 180도 달라졌다.
몇 개월간 지속된 회사 내 인간관계의 스트레스를 겨우 버티다가 결국 번아웃에게 무릎을 꿇었다
퇴근 이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불 꺼진 탁자 앞에 홀로 앉아 새벽까지 나의 심연을 여러 날 들여다보았다.
안타깝게 아무리 내 심연을 들여다봐도 '나'에 대해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30년 동안 '나'에 대한 탐구가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제는 내가 살기 남기 위해서 '나'에 대한 탐구가 필요했다.
"나는 왜 살아야 할까?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나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살아가는 데 있어 나의 우선순위는 무엇인지 몇 개월을 고민하였고
마침내 나의 0순위는 '가족'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이후, 내 삶은 '가족'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일례로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가족을 위해 육아휴직을 사용한다고 팀장님께 사전에 공지하였고
첫 육아를 할 때는 그저 건강했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1개월, 2개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는 점점 더 아기에게 바라는 게 많아지고 있었다
"통잠을 잤으면
이유식을 잘 먹었으면
기저귀 갈 때 가만히 있었으면"
하루에도 수십 번 아기에게 여러 가지를 바랐다
이성적으로는 말 못 하는 아기임을 알지만
간혹 바라는 걸 아기가 응해주지 못할 때면 욱하는 감정이 갑자기 튀어나온다.
심신이 좋을 때는 "이게 뭐야"하고 감정 컨트롤이 가능하지만
심신이 지친 날에는 욱하는 감정을 주최하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탁자를 강하게 '탕'하고 쳤다.
그러면 아이는 눈을 크게 뜨고 놀래서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1초 후 칭얼대는 울음에서 서러운 울음으로 바뀌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닭똥 같은 눈물이 아기의 눈에서 흐르는 걸 보곤
"아차... 내가 실수했네..."하고
수십 번 미안하다고 말하며 얼른 안아서 달랬다.
아기는 존재만으로 사랑스러운 존재다.
그걸 제일 느끼는 순간이 바로 '아기가 아플 때'다.
평소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았기에 아기의 건강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먹던 분유를 분수처럼 뿜어내고,
풍선에 바람이 빠진 듯이 서서히 고개가 축 쳐졌다.
체온 38도가 넘는 뜨거운 몸을 지탱하는 힘이 없었는지 가슴에 폭싹 안겼다.
그때 심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다.
얼마나 슬픈 심정인지...
"우리 아기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무슨 일이 발생하면 어떡하지.."
온갖 나쁜 상상이 나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아기가 고열일 때, 가장 위험한 시간은 새벽이다.
몰려오는 잠과 사투를 벌이고 매시간마다 열은 더 오르지 않았는지
숨소리는 괜찮은지, 혹시나 다른 이상은 없는지 계속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는데
한 번이라도 체온이 38도가 넘어가면 우리 부부의 심장은 덜컥 내려앉는다.
종교를 믿지 않지만 그때만큼은 열혈 신도가 된다.
"신이시여,. 제발 우리 아기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더 바라지도 않을게요
지금까지 제가 못난 아빠였습니다.
이전처럼 생긋생긋 웃고 건강하면
더 바라지 않을게요"
우리가 공기의 소중함을 망각하듯이
아기가 건강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사실을 자주 잊어버린다.
이번 육아를 하면서 이것 하나만큼은 알게 되었다.
아기가 건강하다는 것만으로 우리에게 해야 할 도리는 다 했고
그것만으로 세상에 대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