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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노트 Jun 17. 2024

브랜드를 만들어 가는 과정

몰리노 프로젝트




F&B 브랜드를 기획하고 운영해 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좋은 고객 경험을 주는 매장에 들르면 '이 매장의 첫 기획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하고 궁금해져요. 그럴 때마다 브랜드명을 한번 곱씹어봅니다. 앞서 소개했던 밀도<식빵이 가장 맛있는 온도>처럼 브랜드명에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가 숨어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의미가 명확히 떠오르지 않더라도 대충 이미지를 연상하곤 합니다. 지금은 좋아하는 커피인 빈브라더스의 블랙수트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는데, 빈브라더스는 왠지 원두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카페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러고 보면 이름은 정말 많은 걸 함축하고 있는 듯합니다.


브랜드를 만들 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죠. 브랜드 철학은 무엇이고 어떤 컨셉에 어떻게 고객의 인식을 만들어낼지, 브랜드의 중요성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손에서 멀어지는 느낌입니다. 홍성태 교수님은 그의 저서 <브랜드로 남는다는 것>에서 브랜딩을 무엇부터 시작하냐는 질문에 '이름 붙이기'라고 답해요. 아이를 낳으면 이름을 지어줘야 세상의 존재가 되듯, 이름 없는 잡초가 아닌 화초로 살아가기 위해 브랜딩을 위한 이름이 필요하다는 뜻이에요. 브랜드명을 곱씹어보며 기획 이유를 연상해 보는 저의 습관은 브랜드의 시작을 찾아가는 일이기도 하네요. 이 책은 브랜드에 관심이 있는 분이면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쉽고 명확하게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일을 정의해 주시거든요. 몸으로는 알지만 추상적으로 둥둥 떠있는 개념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이름 붙이기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서 한 F&B 브랜드가 떠올랐어요.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진 않지만, 브랜드명과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가 잘 연결되어 있거든요. 무엇보다 이 브랜드가 성장하는 과정이 단계별로 한 걸음씩 내딛는 게 눈에 잘 보인다고 할까요? 멕시칸 음식점 엘몰리노, 라까예, 에스콘디도를 운영하고 있는 몰리노 프로젝트가 그 주인공입니다.


엘몰리노 | 사진: 네이버지도의 엘몰리노




내가 하고 있는 일



<몰리노 프로젝트>


프로젝트라는 단어가 붙은 만큼 무언가 해내고 싶은 일이 있는 듯한 브랜드명이에요. 의미를 찾아보면, 몰리노(Molino)는 스페인어로 옥수수를 가는 곳을 뜻합니다. <몰리노 프로젝트>의 '몰리노'에는 매일 옥수수 알갱이를 멕시코의 전통적인 방법으로 조리 및 분쇄해 또띠아를 만드는 과정이 멕시코 음식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담겨있어요. 한국에 제대로 된 멕시코 음식을 알리고 싶다는 취지가 더해져 몰리노 프로젝트가 탄생합니다.


몰리노 프로젝트를 기획한 사람은 '2018 베스트 셰프 멕시코'의 우승자이자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푸욜'에서 살사 파트를 맡은 멕시코 요리 전문가, 진우범 셰프입니다. 어릴 때 떠난 유학 생활 중 캘리포니아에서 맛봤던 트럭에서 파는 타코에 반해 한국에서 타코 트럭을 운영하는 꿈을 꾸기 시작하죠. 이후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우고 싶어 멕시코시티의 르 코르동 블루(Le Cordon Bleu)에 입학해 요리사의 기본적인 소양과 멕시코 음식에 대해 처음부터 배워나갑니다. 이때 우리도 흔히 갖고 있는 멕시코 음식에 대한 선입견을 깼다고 해요. 길거리에서 파는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이 아니라, 현지의 정통성이 잘 담겨있는 멕시코 요리로 말이죠. 시간이 지나 멕시코 요리 대회에서 우승하고 푸욜에서 1년간의 여정을 마무리한 진우범 셰프는, 멕시코의 음식 문화를 한국에 알리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멕시코 생활을 정리한 후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의 목표를 실현할 몰리노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죠.


진우범 셰프의 성장 과정과 몰리노 프로젝트의 뜻이 담긴 인터뷰를 읽었을 때, 다른 브랜드보다 조금 더 취지에 공감이 된 이유가 있어요. 몰리노 프로젝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타코 집 사람들>의 예전 영상을 봤기 때문이에요. 많은 영상이 남아있는 건 아니지만, 몰리노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전이자 멕시코에서 생활하고 있던 진우범 셰프의 타코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있어요. 타코란 무엇인지와 같은 전문적인 이야기도 있고 음식 문화에 대한 개인의 고민도 담겨있습니다. 영상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감상은 업의 본질을 찾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이었어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연구하고 정의하는 사람이 브랜드를 통해 영향력을 펼치겠다는 느낌 말이죠. 진우범 셰프는 성장 이야기의 끝이자 새로운 시작으로 몰리노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내놓습니다. 매장도 없는 상태로 자기 브랜드의 이름부터 만들었지만, 이미 몰리노 프로젝트라는 브랜드는 살아 숨쉬기 시작합니다.


유튜브 채널 <타코 집 사람들>




Start Small



몰리노 프로젝트가 운영하고 있는 매장은 캐주얼 멕시칸 비스트로 엘몰리노, 멕시코 정통 스트릿 타코 전문점 라까예, 멕시칸 파인다이닝 에스콘디도입니다. 같은 멕시코 음식점이지만 각기 다른 유형으로 나누어 매장을 하나씩 오픈하며 다양한 멕시코 음식 문화를 전파하고 있어요. 몰리노 프로젝트의 시작은 다음 중 어떤 매장이었을까요? 재밌게도 몰리노 프로젝트의 시작은 오프라인 매장이 아니었습니다. 와디즈 펀딩을 통한 과카몰리 판매가 시작이었어요. 몰리노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진행한 펀딩은 소비자의 관심과 성원을 얻어 오픈 2일 차만에 2000% 달성률에 도달합니다. 이 과정에서 배운 게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량 생산에 대한 노하우라던지, CS처리, 넓게는 전반적인 비즈니스의 흐름까지도 말이죠.


몰리노 프로젝트의 성공적이었던 와디즈 펀딩


스타트업 생태계에는 가설검증이라는 개념이 자주 쓰입니다. 내가 생각한 비즈니스 아이디어가 실제로 시장의 호응을 얻을만한지 검증하기 위한 단계예요. 가설검증의 필요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증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디어 그 자체가 비즈니스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고 믿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몰리노 프로젝트를 한국에서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우리나라의 소비자들이 멕시코 음식에 생각보다도 더 거부감이 있다면 어떨까요? 이 프로젝트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겠죠. 어떤 비즈니스를 수행하기 전에 내 아이디어가 시장에 맞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실패의 가능성을 줄여줍니다. 결국, 비즈니스를 이어나가기 위한 시간과 돈을 아껴주는 게 바로 가설검증이죠.

한편, F&B 업계에서는 가설검증을 하는 게 꽤나 까다롭습니다. 특히 오프라인 매장의 비중이 큰 비즈니스의 경우, 초기투자매몰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초기 아이디어를 검증하는 일도, 중간에 비즈니스를 변경하는 일도 어려워요. 이에 대응하기 위해 공유주방을 이용하거나, 임대료가 저렴하고 크기가 작은 매장에서 시작하곤 합니다. 몰리노 프로젝트가 보여준 와디즈 펀딩도 새로운 접근법 중 하나인 듯해요. 브랜드가 나아가려는 방향을 설명하고 소비자의 피드백을 효과적으로 받을 수 있는 수단이 온라인인 건 확실하니까요. 




올바른 그릇에 담아내기



몰리노 프로젝트가 전달하려는 멕시코의 음식 문화는 꽤 다양해 보여요. 제일 먼저 오픈한 엘몰리노에서는 캐주얼하면서도 다이닝스러운 멕시코 음식을 선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멕시코 음식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싶은 마음이 담긴 매장 같아 보였어요.

멕시코 정통 스트릿 타코 전문점인 라까예는 신당 중앙시장에 위치합니다. 시장 안에 있는 타코 집이 참 생소한데, 스트릿 타코의 정체성을 보여주기에 알맞은 장소라고 느꼈어요. 라까예의 음식을 개편해서 더현대서울에 폴랑코라는 이름으로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멕시칸 파인 다이닝 에스콘디도는 유명한 파인 다이닝 식당이 많은 한남동에 오픈합니다. 에스콘디도에서는 음식만큼이나 주류 페어링에도 신경을 씁니다. 에스콘디도에서 선보이는 테킬라와 메즈칼 페어링을 통해, 멕시코 음식에 관한 선입견과 더불어 저렴하게 마시는 증류주라는 인식을 부수기 위함이에요.


라까예와 에스콘디도 | 사진: 네이버 지도의 라까예, 에스콘디도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가 소비자에게 잘 와닿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브랜드가 던지는 메시지가 추상적인 경우도 그중 하나예요. 말하고 싶은 게 많아서 이것저것 붙이거나, 애초에 개념이 명확하지 않으면 추상적인 대화로 헛돌 뿐입니다. 몰리노 프로젝트는 브랜드가 시작하기 전부터 멕시코 음식 문화에 대해 정의했고, 어떤 문화를 선보이고 싶은지 개념을 정립해 나갔어요. 게다가 하나에 몰아서 보여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적절하게 세분화하고 적합한 위치와 장소에 선보였죠. 메뉴 라인업을 기획할 때 메뉴를 담을 식기를 함께 고민하는 것처럼, 브랜드에 담긴 철학도 소비자에게 잘 전달하려면 그에 맞는 올바른 그릇에 담아야 합니다.






뚜렷한 철학으로 시장에 뛰어드는 브랜드를 마주하는 건 F&B 업계의 성장에 있어서도 참 소중한 일입니다. 몰리노 프로젝트를 엘몰리노 매장이 성수점에 오픈할 때 알게 됐는데, 브랜드의 성장을 계속해서 관찰하는 걸 보면 저에게는 강렬한 브랜드 인상을 남겨준 곳이 아닐까 싶어요. 멕시코 음식의 어떤 문화를, 어떤 형태로 우리나라에 하나둘씩 정착해 갈지 여전히 궁금한 브랜드입니다. 성장 과정에 대해 조사하고 글로 정리한 지금 시점에서는 조금 더 많은 기대를 하게 됐어요. F&B 업계에 '브랜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교과서처럼 만들어 갈 거란 기대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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