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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노트 Oct 19. 2024

골리앗을 상대하는 다윗의 무기

파셀샌드위치바


대전은 어느새 베이커의 중심지가,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전 국민이 성심당의 빵을 사러 대전을 방문하고, 빵에 조금 더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대전에 있는 맛있는 빵집을 순례하는 여정을 떠나곤 해요. 이창민 기능장의 '하레하레'부터, 성심당 출신 파티셰들이 만든 '보보로베이커리'와 '슬로우브레드', 휘낭시에 맛집으로 유명한 '콜드버터베이크샵'과 '정동문화사' 등, 정말 많은 베이커리가 양질의 빵과 디저트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서울에서 경쟁하는 것보다 더 힘든 환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상권의 힘보다, 상품 그 자체를 판단하는 소비자가 많기 때문이죠. 경쟁하는 상대의 면면이 전국 어디에 내놔도 밀리지 않는 베이커리이기도 합니다. 그 속에서 빛나는 브랜드가 된다는 게 쉽지는 않은 일처럼 느껴져요.

스몰 브랜드의 시대라고 하지만, 스몰 브랜드가 살아남기에 좋은 환경은 아닙니다. 그만큼 뚜렷한 색깔과 강점이 필요하고 거기에 더해 전문성까지 필요하기 때문이죠. 내수 시장의 한계와 소비 감소로 인해 크고 유명한 브랜드들은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추세이기도 해요. 더불어 다양한 사업 아이템들이 시장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만큼, 블루오션을 찾는 일도 하늘에 별따기나 마찬가지입니다. 스몰 브랜드를 시작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성장 궤도에 오르는 건 힘든 일이에요. 진입은 쉽고 엑싯은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런 힘든 환경 속에서도 경쟁력 있는 스몰 브랜드가 태어납니다. 골리앗을 상대하는 다윗처럼 자신만의 특별한 무기를 들고 나타나요. 좋은 시장 포지션으로, 개성을 담은 상품으로 차별화를 만들어냅니다.


대전의 빵지순례 목록에서 유독 눈에 띄는 브랜드가 '파셀'이었어요. 정확히 말하면 파셀이 2호점으로 오픈한 '파셀샌드위치바'가 시선을 끌었습니다. 샌드위치 전문점이면 전문점이지, 샌드위치바는 무슨 개념일까 하고 궁금했거든요. 파셀의 1호점은 식사 대용 빵을 판매하는 베이커리로 테이크아웃만 가능한 반면, 2호점인 파셀샌드위치바는 샌드위치를 위주로 판매하며 매장 식사가 가능한 공간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샌드위치바는 '매장에서도 식사가 가능한 샌드위치 가게'인 셈이죠. 파셀에서 빵을 구매하기 위해 기나긴 웨이팅을 경험했던 소비자에게는 '샌드위치바'라는 이름이 반가웠을지도 몰라요. 기다림 끝에 포장만 하고 가는 것과, 매장 내에서 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건 또 다른 경험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이렇듯 생소한 개념도 소비자가 어떤 경험을 했느냐, 브랜드를 어떻게 인지하고 있느냐에 따라 익숙하게 다가옵니다.

또 하나, '샌드위치바'라는 이름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이미지의 연상 때문이었어요. 최근에 '바'라는 명칭을 붙인 개념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에스프레소바'입니다. 대중적인 커피의 범주가 아닌 에스프레소 위주의 커피를 다루는 에스프레소바는, 좁은 공간에서 다양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컵을 쌓아 올리는 이미지를 연상케 해요. 커피에 진심인 사람들이 모여 커피를 즐기는 공간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파셀샌드위치바'라는 이름을 마주했을 때, 에스프레소바에서 느꼈던 이미지가 그대로 연상됐어요. "전문적인 샌드위치를 만날 수 있겠구나" 하고 말이죠.


파셀의 샌드위치바 | 사진: 네이버지도의 파셀샌드위치바


골리앗과 다윗의 이야기는 작고 약한 대상이 크고 강한 상대를 맞서는 상황을 묘사하는 대중적인 의미가 됐어요. 모두가 두려워하는 대상인 골리앗을 쓰러트린 어린 양치기 다윗은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무장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골리앗을 상대합니다. 이때 다윗의 손에 들려있던 건 조약돌 5개였어요. 골리앗은 그런 다윗의 행색에 분노해 방심한 상태로 다윗에게 한 걸음씩 나아갔고, 다윗은 준비한 조약돌로 팔매질을 하여 골리앗의 이마에 조약돌을 명중시켜 승리합니다. 골리앗의 전투 방식이 아닌, 양치기로서 다가오는 동물을 위협할 때 쓰던 팔매질로 자신보다 크고 강한 상대를 이겨낼 수 있었죠. 다윗의 싸움 방식은 스몰 브랜드가 크고 유명한 브랜드들 사이에서 경쟁하는 방법과 같아요. 어떤 무기를 들고 싸울 것이냐, 그 지점에서 경쟁은 시작됩니다.




어떤 무기를 들고 싸울 것이냐



시작 단계에서 중요한 건, 내가 어떤 강점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에요. 어린 양치기였던 다윗이 팔매질을 전투에 이용했듯, 각자의 영역에서 가지고 있는 자기만의 무기를 구체화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파셀은 2호점이 나오기 전에도 웨이팅이 길게 늘어설 만큼, 작지만 이미 유명한 베이커리였어요. 영업일은 목, 금, 토, 3일뿐인 데다가 재고 소진 시 조기 마감이어서 고객들이 애정 어린 원망을 표현하기도 했죠. 2호점으로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게 많은 손님을 받으며 다양한 빵을 판매하는 방향으로 욕심을 부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파셀은 정확히 반대 방향의 전략을 취했어요. 파셀에서 판매하던 샌드위치 라인업만 빼서 전문화했고, 영업일은 수요일만 추가된 4일간 진행했으며, 재고 소진 시 조기 마감하는 방식은 2호점에서도 동일했습니다. 방문한 고객들이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 게 2호점을 내면서 부린 유일한 욕심이에요. 테이크아웃만 가능한 1호점의 특성상, 가끔 방문해 준 고객들이 공원이나 길가에서 빵을 먹는 사진을 보내주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2호점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했죠.

파셀이 대전이라는 베이커리의 성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든 무기는 '기다림'입니다. 길게 늘어선 웨이팅은 파셀이 가지고 있던 강점이었어요. 물론, 고객을 기다리게 하는 게 목적은 아닙니다. 소수의 인원으로 좋은 품질의 빵을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준비 시간과 노력은, 파셀을 방문하는 고객이 긴 웨이팅에 참여하는 이유였어요. 짧은 영업일을 가져가는 만큼 좋은 품질의 빵을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죠. 파셀은 확장을 통해 많은 상품을 팔기보다, 고객이 파셀의 빵을 사기 위해 기다리는 이유를 지키는데 집중합니다. 파셀의 2호점, 파셀샌드위치바가 원격 줄 서기 플랫폼인 테이블링에서 '2023년 재방문율 best 3' 매장에 선정될 수 있었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죠.


테이블링에서 '2023년 재방문율 best 3'에 선정된 파셀샌드위치바 | 사진: 테이블링의 인스타그램 계정 @tabling_official


파셀의 또 하나의 무기는 샌드위치였습니다. 요일마다 다르게 내놓는 식사 대용 빵과, 별도로 구분해 놓은 샌드위치 라인업은 고객들이 파셀을 사랑한 이유였어요. 그 가운데 방문 고객이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을 구현한 2호점에 어울리는 샌드위치를 간판에 내세웁니다. 2호점으로의 확장인 듯 보이지만, 오히려 좁은 시장을 타기팅 하며 파셀만의 영역을 구축해 냈어요. 마치, 팔매질로 골리앗을 상대한 다윗처럼 말이죠. 그렇게 파셀샌드위치바는 자신만의 무기를 들고 강한 경쟁자와도 부딪힐 수 있는 스몰 브랜드가 됩니다.




조약돌은 어떻게 골리앗을 쓰러트렸나



'피넛버터바나나'에서 보였던 낯선 익숙함이 파셀샌드위치바에서도 느껴져요. 예상하지 못했던 단어에서 익숙함을 가져오거나, 익숙한 단어에서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연출하면 소비자는 낯선 익숙함을 경험합니다. 소비자가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샌드위치이지만, '샌드위치바'라는 개념을 접하게 되면 소비자는 새로움을 느껴요. 이때의 상황은 다윗이 조약돌 5개를 들고 골리앗 앞에 서있는 모습과 같습니다. 어디서나 집을 수 있는 조약돌로 골리앗을 쓰러트릴 수 있다고 말하면, 그 말을 믿을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결국, 누가, 어떻게 던지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양을 지키기 위해 팔매질을 해왔던 양치기 다윗은 정확히 목표물에 돌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이 있었어요. 팔매질에 익숙한 다윗이기에 골리앗을 쓰러트리는 게 가능했다는 이야기죠.


파셀은 가급적 유기농 원재료를 사용하며, 좋은 재료를 아끼지 않고 제품을 만드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가격경쟁력은 갖추지 못했다고 인정하면서도, 건강한 제품을 만들기 위한 소신은 계속 유지하겠다고 말해요. 파셀이 추구하는 가치에 반응하는 고객들은 아낌없는 사랑을 보내주었고, 그렇게 2호점인 파셀샌드위치바가 탄생할 수 있었죠. 파셀의 샌드위치는 하루아침에 개발된 제품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그들만의 소신이 담겨있고, 소비자들로부터 얻은 피드백이 듬뿍 녹아있어요. '샌드위치바'라는 콘셉트가 완성이 되려면 샌드위치를 누가, 얼마나 전문적으로 만들었느냐를 봐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파셀은 다윗이 될 자격이 충분했어요.


파셀샌드위치바의 잠봉뵈르 | 사진: 파셀샌드위치바의 인스타그램 계정 @sandwichbar_parcel


브랜드가 가진 콘셉트는 밑그림에 불과합니다. 콘셉트를 소비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증명해야만 비로소 완성된 그림이라 말할 수 있어요. 내가 가진 강점에서 무기를 찾고, 유리한 전장을 만들기 위해 나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무기를 사용하는 방법을 체득하고 있을 때, 조약돌은 골리앗을 쓰러트릴 스몰 브랜드만의 무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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