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퇴사해요. 그래도 계속 아리씨예요
저 퇴사합니다!
급작스러운 소식 같겠지만, 올해 5월 정도부터 고민하다가 내린 결정이다. 이직하는 건 아니고, 내년 1월부터 회사의 법인을 세우기 위해 11월부터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다. 그 결정을 하게 된 이유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아리씨에서의 회사생활이었다.
나는 1년 3개월의 짧은 시간 동안 아리씨에서 정말 많은 직무를 경험했다. 회사의 중추가 되는 위원회의 장을 맡기도 하고, 회사에 새로 입사한 신입에게 직원 교육도 해보고, 함께하는 리더들이 더 많이 성장할 수 있도록 재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 생전 해본 적 없는 미팅을 잡기도 하고, 200명이 참가하는 행사를 운영했다. 7월부터는 회사의 경영전략을 담당하면서 지출과 수입 관리, 자원 관리까지 했다.
그 과정을 누군가는 '뺑뺑이' 또는 '착취'라고 말할 수도 있다. 회사의 체계가 없기 때문에 나에게 그 모든 것들을 시키는 것 아니냐고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맞다. 하지만 그건 흔히들 비하하듯 말하는 좋소에서 늘 사람을 이리저리 굴려쓰는 것과는 달랐다. 적어도 나는 그 안에서 회사 하나를 운영할 수 있는 모든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다. 꿈보다 해몽이라기엔 늘 자리가 바뀔 때마다 그에 걸맞는 수당과 평가, 보상을 받았다. 갖춰진 틀 안에서 움직이는 회사가 아니라 사람을 이리저리 쓸 수 있는 환경이라서 가능했던 일이다.
나는 1년간 참 많이 성장했다. 제안서나 발표 스킬, 커뮤니케이션 능력, 사업 수완, 브랜딩 등등 1년 전의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일들을 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작년보다 업무 시간도, 일을 생각하는 시간도 줄었다. 아리씨는 나에게 참 많은 걸 알려주었다.
나는 올해 1월부터 '아카데미'에서 원장이라는 역할을 맡았다. 쉽게 말하면 직원 교육이었다. 매주 화, 수, 목, 금 1시간씩 교육을 해야 했다. 처음 이 일을 받아들었을 때는 지자체에게 다양한 미디어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답게 컨설팅 교육을 해야겠다고 해서 열심히 책도 읽고 커리큘럼을 짰다. 그랬다가 나의 의도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흥미를 잃어버려서, 근본적인 부분을 자극하는 방식을 찾아야 했다.
아리씨 리더는 모두 사업가다.
주체적으로 일하고, 모두가 리더로 불리는 회사에서 귀가 따갑게 들은 말은 바로 이 한 줄이었다. 남이 시키는 대로만 하고 성찰 없이 일을 할 때 어김 없이 '그건 사업가가 아니다'라는 평가를 마치 혹평처럼 쓰는 회사였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사업가다!라는 슬로건 아래 아카데미의 주제를 이걸 우리가 미래에 사업으로 한다면 지금 어떻게 해야할까요? 라는 식으로 치환해서 교육했다. 기획 사업을 하려면? 영업을 하려면? 회사를 세웠을 때 비전과 미션을 세우려면? 우리의 회사의 브랜드 평판을 올리려면? 이런 식으로 대주제를 짜고 그 하위에 있는 계획서 쓰는 법, 회의를 제대로 하는 법 등을 정리해서 개념부터 실습까지 진행했다.
리더들에게 매 시간마다 읽을 자료나 책을 찾아와서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그러기를 어언 10개월 그 결과는 어떠했느냐? 내가 알려준 리더들이 사업가가 되는 것보다 내가 사업가가 되는 것이 빨랐다. 나는 갑자기... 대표가 되기로 했다. 뭔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의 준비 과정에서 사업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가설과 이론을 나도 모르게 공부하고 간파해버렸기 때문이다. 완전히 습득하려면 내가 가르칠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맞다.
돌아보면 아카데미도 나에게는 하나의 사업이었다. 며칠을 고민해서 커리큘럼을 다 짜고 진행하려는데 거대한 위기에 봉착했다. 다들 책을 읽기를 싫어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자료를 책을 기반해서 준비했는데, 텍스트를 읽어오라고만 하면 풀이 죽었다. 처음에는 왜 못 읽지? 하다가 이내 지치고 고된 회사원들에게 책을 읽히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다들 동태되어서 옴) 그래서 같이 모여서 읽기도 하고, 읽은 부분을 토론하게 만들기도 하고, 상품을 걸고 대결을 시키고, 어떻게든 공부를 하게 하려고 난리부르스를 쳤다. 지금은 모두의 책상에 (반강제적으로) 책이 있다. 업무적 어려움이 있을 때 책을 읽으려고는 한다. (그치, 얘들아? 믿어 ^^) 아카데미를 통해서 아리씨를 위해, 나 자신의 미래를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가 피부로 느끼게 하는 데에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성과와 결과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나만 좋은 방식으로 하던 것을 누군가가 필요를 느껴 하도록 만들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시키는 건 오래 못 가고, 느껴서 자발적으로 하는 것만이 멀리 간다. 나는 아카데미를 통해 이 진리를 깨닫고, 내 팀의 업무에서도 모두가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끔 하는 데 집중한다. 한 사람의 동기부여를 주는 데는 돈과 성과, 목표, 가치 등등 사람마다 다양한 버튼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런 것들을 자극해서 그 사람이 자발적으로 새로운 자극이나 세계를 받아들이고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이 재밌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도 넓어지고 깊어진다는 감각을 즐긴다. 하게끔 하는 것이 결국 나에게는 사업이자, 그 자체로 동기부여가 된다는 걸 알았다.
모르는 걸 물어보면 내 첫 사수는 말했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에요. 알아서 해야하는 거예요." 사회생활이라는 건 누가 알려주지 않고, 알아서 눈치껏 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해한다. 그 이도 그만의 일이 있었을 테고, 같은 계약직 처지에 뭘 가르칠 시간에 퍼포먼스를 더 내는 게 중요했을 것이다. 회사는 물론 성과와 목표가 중요하고, 나를 가르쳐주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전제를 설움과 함께 꿀꺽 삼키며 이런 것이 어른의 버석한 삶의 한 결이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러고 나면 내 모든 열의의 불꽃도 사그라들고야 만다. 마음을 뜨겁게 불태울수록 더욱 차가운 찬물 세례가 돌아올 것을 알아서, 더 열심히 할 필요도 없어. 딱 돈 받는 만큼만 일해. 주변은 그렇게 말했다. 여기서 직장인은 둘로 나뉜다. 열심히 안 할 수 있는 사람과 안 할 수 없는 사람. 나는 늘 뭐든 열심히 해야만 했고, 정도껏 하는 법을 몰랐다. 회사원으로서는 너무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이것만 하라고 하면 맨날 나혼자 이상한 데에 꽂혀서 안 해도 될 것을 더 해갔다. 그렇게 회사의 방식을 바꿔가면서 일하면 안되는 시스템인 줄 몰라서 내 기준에 효율적인 방식으로 일을 쳐내고 나중에 혼날 때도 많았다. 다른 사람이 하는 일에도 항상 '저거보다 빨리 하는 방법이 있을 거 같은데' 말해주고 싶어서 답답해 했다. 그야말로 오지랖이었다.
그런 내가 사수가 되자 이상한 일이 생겼다. 나는 내 사수가 했던 것과 정반대로 했다. 학교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주고, 실제로 어떻게 하는지 지켜봐주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까지 상담해 주었다. 부사수가 헤매고 있으면 귀신 같이 뒤에서 나타나서 방향을 잡아주었다. 나의 첫 부사수는 우화 속 콩나무처럼 쑥쑥 자라났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부사수로 골치를 앓던 내 친구들이 어떻게 그렇게 했느냐고 물으면 그저 홍시 맛이 났다던 장금이처럼 벙벙해졌다. 그냥 다 눈에 보였다. 지금 이해를 못했구나, 다음 스텝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구나 알아챌 수 있었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남한테 항시 관심이 많고, 뭐하는지 뭘 할 건지 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
그런데 아리씨에 와서는 나의 그 오지랖이 장점이 되었다.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부분에서 내가 역할을 맡으면 구체적인 지시가 없어도 알아서 그 방향에 맞게 만들어갔다. 기획전략실 답게 해봐! 라는 말만 듣고 내가 왜 기획전략실이지? 생각하다가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했다. 뉴스레터, 블로그, 카카오톡 플친, 전화할 일이 생기면 극심한 콜 포빅을 꾹꾹 누르고 전화기를 들었다. 나는 왜 그렇게 나댈까? 스스로를 자책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냥 부정할 것도, 다그칠 것도 없다. 그렇게 살아야 사는 것 같고, 그렇게 살아도 잘 살고 있다고 말해줄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안다.
대학 시절 연극할 때, 내가 맡은 역할이 '나다운 게 뭔데!!'라고 외치는 장면이 있었다. 사실 그때 나는 정말 나다운 게 뭔지 모르고 한창 오해하고 있었을 때다. 십 여년이 흐른 지금 나는 이제 나다운 게 뭐야! 라고 말할 수 있는 동시에 나다운 게 무엇이라고 정의해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벗어났다. 이제 나는 행선지를 옮길 뿐이다. 나는 아리씨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사업가라는 아리씨답게 사업가가 되어 더 넓은 세상으로 도약한다. 아리씨의 상황과, 맡았던 역할들로 당장은 보여지기 어려웠던 여러가지 나의 강점들을 마주하고, 펼쳐보려고 한다.
내가 나일 수 있는 건 결국 나혼자 죽어라 애쓴다고 되지는 않더라. 내가 그동안 브런치에 써온 동료들, 나의 페이지에 아직 기록되지 않은 동료들이 나와 함께 일하며 알려주었다. 우리는 모두의 꼴을 인정한다. 그 사람은 왜 저렇고 이해가 안 되고 그 과정에서 외면하거나 기피하지 않는다. 일단 들어보려고 한다. 아리씨 리더들은 뭐든지 문제라고 생각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안달복달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지켜봐주었다. 자신의 어려움을 나에게 나누어주고, 나의 어려움을 듣고도 외면하지 않았다. 나의 전략과 선택을 따라주었고, 그 너머에 내가 기대한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있을 거라고 믿어주었다. 사실 나에게는 엄청난 부와 성공보다는 이렇게 나를 믿어주는 눈빛들이 가득한 나만의 울타리가 필요했던 것일지 모른다.
실패와 좌절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단단한 마음을 준 아리씨에 감사를! 아리씨라는 이름 아래에서 영원히 만날 우리 리더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2024.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