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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유빈 Sep 22. 2024

점심시간에 비빔밥 해 먹는 회사

To. 어머니, 밤에 나물 무치게 해서 죄송해요

그 언젠가 학교 급식이 마음에 들지 않을라치면 집에서 가져온 반찬이랑 고추장, 참기름, 밥을 양푼에 비벼 먹곤 했다. 그 때는 내일 친구들이랑 비빔밥해 먹을 거야~ 재료 내일 학교에 가져가야 돼~ 하며 남은 숙제는 다 엄마에게 떠넘겨 버리고 방으로 쑥 들어버리면 그만이었다. 자취 10년차이자 직장인 6년차에게는 아득한 추억이 되었다.


고 생각했는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16명 중 10명 정도가 20대인 회사. 이사님이랑 대표님은 점심시간에 잘 안 계시고, 작은 이 회사 회의실에서 비빔밥 정도는 같이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된 비빔밥 프로젝트. 쇠뿔도 단김에 빼는 나는 늦은 저녁 회사 사담 톡에 파문을 일으킬 돌 하나를 던진다.


아리씨에서는 이런 주도성을 가진 사람을 리더십이라고 부른다. 이번 비빔밥 리더십은 나.


평소 카톡 선물하기로 과일이나 디저트를 받으면 회사로 가져와 파티를 즐기곤 했기 때문에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오랜 자취 경력이 있기 때문에 비빔밥 재료는 뚝딱인 나와 달리, 동료들은 부지런히 조달할 수 있는 재료를 찾기 시작했다.


없어서 지금부터 무치려는 오 모 팀장


아닌 밤중에 냉털하다가 엄마한테 혼난 이 모 팀장


엄마한테 시금치와 생채 무침을 해달라고 하는 송 모 팀장
아닌 밤중에 된장찌개 주문을 하는 최 모 팀장과 또 된장찌개를 끓이는 박 모 본부장
지독한 업무 분장...

그렇게 모두의 손길이 모여서...

다음 날 재료가 한 데 모였다.

나물나물 타령을 하던 이 모 팀장... 어머니가 직접 나물을 싸주셨다.

*저는 절대로 결단코 늦은 밤 어머니가 노동을 하시게 만드려는 의도는 없었음을 이 지면을 빌려 말씀드립니다. 나물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야무지게 비벼야지~ 했지만... 너무 많았다.


현란한 손놀림으로 비비려고 했으나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 국자로 열심히 비벼서 10명 남짓이서 배식해서 맛있게 먹었다. 이렇게 먹는 비빔밥은 왜 이렇게 맛있을까?



된장찌개도 얼마나 맛있는지... 비빔밥 비빌 때 된장 몇국자 넣어주는 거 무조건이다. 본부장의 인스타그램 계정에도 우리의 비빔밥 대장정이 기록되었다. 사실 이 때 얼마전인 거 같지만 날이 쌀쌀한 2월이었다. ㅎㅎ 지금 이 글을 작성하는 순간에도 애틋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렇게 다같이 먹었을 때는? 가위바위보로 치우는 사람 결정하자! 가위바위보에서 이기고 결연하게 손을 맞잡는 이긴 사람들의 모습이다. 동영상이 더 생생한데, 다들 초췌한 몰골이라 이정도 화질구지에서 타협하는 것으로 한다.


다음 메뉴는 파스타로 하고 싶은데, 면을 어떻게 삶을지 고민이 된다. 나는 이런 가족 같은 회사(리터럴리)가 너무 잘 맞고 좋다. 앞으로도 함께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즐거운 일 많이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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