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영주권

Beer brewer 로 캐나다 영주권자가 될 수 있나요?

by Beer Alien

** 본 내용은 캐나다살이 카페에 과거 작성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본 내용은 2019년에 작성한 내용입니다.


안녕하세요 캐나다에서 맥주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민 목적이 아니라 공부 목적으로 캐나다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의 우울한 글은 이 모든게 맥주를 하고 있어서 생긴 일이라. 참. 이렇게 얘기를 시작할 수 밖에 없네요


맥주 왜 시작했냐하면 평생을 ( 그리고 여전히) 부모님의 말 잘 듣는 아이로 ( 지금 50이 가까워도 부모님 말씀 잘 듣는 거 보면 아이로 보여요 ㅎㅎ. 그러니 부모님들은 여전히 자식의 삶이 손 안에 있길 바라시구요. 저는 반대 성향이라 저만 매번 나쁜 며느리가 됩니다. ) 살던 신랑이 나 이거 하고 싶어! 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고 싶다고 하길래 40 넘은 나이여도 그래도 지금이라도 찾아서 다행이다 그렇게 시작하고 방법을 찾아찾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짧게 쓰는 글로야 그래서 맥주학과 졸업하고 브루어리로 취직했습니다 짜잔! 할 수 있는 문제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았답니다.

맥주학과를 들어가기도. 들어가서도. 졸업해서 취직하기도 단 한 번도 수월했던 적이 없었답니다.

학과에 있는 동안도 교수님들 예쁨 받으면서 인정 받고도 질기게 노력했고 그 와중에도 지나치게 부지런했고 동기들 선생님들 감탄도 무수히 받았습니다. 졸업시에 교수님이 면접 볼 때 제출하라는 레코멘데이션 레터도 얼마나 칭찬이 많았는지 눈부실 지경이었습니다 ( 선생님이 비밀이라고 절대 동기들한테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ㅋㅋ) 여기서 브루어들한테 아! 할 수 있는 멋진 브루어리들에서 먼저 면접보자고 연락도 받았습니다. 선생님들은 멀리 가지 말라고. 심지어 맥주학과 학장님은 신랑 성품상 가르치는 일이 잘 맞을거라며 당분간 학교 근처에 취직해서 학교와 계속 인연이 닿아 있어야 한다며 그리 주변에 브루어리들 다녀오실때마다 이력서 내 놓으라고. 당신이 직접 주겠다고 하셨었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그리 해 주셨습니다. 허나 취업은 쉽지 않았습니다. 졸업 시기도 그러했습니다. 성수기인 여름이 막 끝나 브루어리들이 바쁘지 않은 시즌이었거든요. 지금 취업한 브루어리도 꽤 좋은 곳이지만 처음부터 면접 제안 들어온 곳들이 너무나도 좋은 곳들이었기에. 갔음 좋겠다의 리스트에 없었던 곳이었네요. 주제에 참 건방졌던 거죠 뭐.

면접 결과 발표났을 때. 너무나 의외의 결과들이라 우리가 밀려난 건 결국 우리가 이방인 소리가 귀에 메아리로 들려 그 서운함이 참. 컸습니다. 지금 다니는 브루어리는 과 선배들이 있는데 선배들이 얘는 꼭 데려와야 한다고 그리 설득들을 했다고 뒤늦게 들었고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 역시 인맥이네요. 캐나다.


신랑이 취직한지 3 개월이 됐습니다. 모기지 이율 적당한 걸로 갈아타겠다며 서류 제출 중인데. 저도 워크 퍼밋이 있으면 좋겠다네요. 일 할 수 있으면 하자고. 저라고 왜 안 하고 싶겠어요. 신랑 컬리지 졸업 후 워크 퍼밋 받을 때 국경에서 저도 주세요 했더니 잡 오퍼 없음 안 돼 라고 잘렸습니다. 근데 나중에 visitor 비자 주면서 3 달 뒤 풀타임 증명서랑 pay 명세서 3 번 ( 정확힌 3 달이라고 분명히 말했지만 지금 보니 payslips 3 개가 필요한 거네요) 가지고 오면 work permit 발급해 줄 수 있어 ! 라고 분명히 보더에서 그랬거든요.


그래서 오늘 신랑 회사에서 준 근무 증명서와 페이롤 가지고 flagpole 하러 혼자 씩씩하게 갔습니다


국경 가는 길에 중고차가 30만 키로를 넘어간 지라 우아앗 하고 있었는데 국경 가까워지기 10 키로 전엔 아주 크게 가드를 부수고 넘어간 차 사고가 보이고 질척하게 쌓인 눈을 가르면서 가는 길에 차 뒤쪽에서 난데없이 끼기긱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아. 차 좀 더 오래 타고 싶다. 수리 하더라도 300 불은 안 넘겼으면 좋겠다. 뭐 그런 현실적인 고민을 했더랍니다.


미국 국경 주차장에 파킹하고 들어가면서. 사는 거 참 팍팍하다. 이왕이면. 새 차 살 수 있으면 좋겠다 하고 바래보지. 뭘 수리비 비싸지 않았음 좋겠다를 한계금액까지 세세하게 상상하고 있냐. 상상도 소심하다. 하고 스스로를 살짝 잠깐 비웃었더랍니다.


미국 국경에서 기다리는 동안 가져간 책도 하필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 - 눅눅하고 조악하게 삶이 무너지는 모습을 카버 보다 잘 쓰는 사람은 아직 못 봤네요. 그런데도.책에 집중했음에도 영어가. 저처럼 완벽치 않은 사람에게도 확 귀를 사로잡는 말들이 귀에 들리는 겁니다.

낮 Fox 뉴스에서 Turley 라는 분이 counsel 의 질문에 대답하는데 자세히 알고 보니 법대 교수라고 자막에 나왔지만 lawmaker 같았습니다. 와 근데. 언어를 저렇게 섬세하게 쓰면서 명확하게 설명하고 트럼프 탄핵에 게을러서는 안 된다는 뉘앙스의 의견을 전달하는데 뉴스를 진짜 푹 빠져서 봤네요. 와 진짜 멋있었어요. 미국 국경에서 안 지루해 보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언어란 자고로 저렇게 장난하지 않고 진지하고 명확하게 써야하는 것이지. 나는 영어로 저런 순간이 올까?? 그런 생각만 했어요.


오늘 flagpole 은 참으로 간만에 모두 친절했습니다. 아니 생각해보니. 참 국경에서도 전 불쾌한 분들보단 친절한 분들을 더 많이 만났네요. 질문들도 간단했구요.


심지어 캐나다 국경에서 심사원은 보자마자 what can I do for you? 하며 웃었답니다. (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참 정말 좋았겠죠? )

사실 전에 비자 받으러 왔는데 날 보고 잡 오퍼 없음 안 된다고 했는데 잡 오퍼도 받을려면 apply 를 해야 하잖아. 그래서 내가 잡들 apply 하고 있는데 work permit 이 없으니 인터뷰도 안 잡아줘. 신랑 풀타임으로 3 개월 됐고 그 때 신청 가능하다고 해서 오늘 다시 온거야. 아 그래? 그럼 워크퍼밋이 있어야 일을 잡지. 알았어 보자 신랑 직업이 뭐야? Beer brewer 야. 알겠어. 잠깐만. 서류 가져왔지?

한참을 들여다보고 컴퓨터에서 드문드문 클릭클릭 한 5분을 하고나선 사라졌다가 와선 얼굴에 웃음기가 싹 없어져선 프린트 물을 한 30 장은 가져와서진지하게 체크하고 형광펜 칠하고. 심각하게 턱 고이고.


결론은 미안. 너 워크 퍼밋 못 줄것 같아. 미안해

왜?? 뭐 때문에?? 이유는 Beer Brewer 는 cic 카테고리에서 LEVEL 0, A,B 직군이 아니기 때문이야. 브루어는 굳이 카테고리를 하자면 food , beverage and associated product processing 으로 Level C 직군이야. Supervisor 가 되면 B 군이 될 수 있어 미안해. 하며 형광펜으로 자세히 설명해주네요. 헐. 니가 미안해 할 일은 아니지. 설명 고마워. 알겠어 잘 알아들었어.


솔직히 저희가 맥주를 선택한 탓에 마주한 여러 상황이 이번이 처음이 아닌지라. 금방 또 헛웃음이 나더라구요. 맥주 관련한 일들은 매번 고개를 헉헉 거리며 넘어가는데 그럼에도 잘 하고 있네. 고생스러웠겠다 위로되는 결과는 하나도 없습니다.


기술을 배웠으나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건 아니어서 브루어리 외엔 취직될 곳이 없고, 그렇다고 인기없는 직종은 아니어서 매번 헉헉 거리며 경쟁해야 하고, 그렇게 취직이 되어도 wage는 공개가 의미가 없을 정도로 기본급이 엉망입니다. 그래도 서로 하려고 하니 참 시급 한 번 올리기 힘든 곳이더군요. 외국인이 거의 없다 보니 회사에서 외국인들에게 서류 해 주는 일을 귀찮아 합니다. 그나마도 브루어리들이 작은 규모들이 많아 서류를 갖출 수 있는 곳들도 거의 없구요. 외국인의 환경을 이해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또 알았네요. 아 맥주로는 배우자 워크 퍼밋도 안 나오니 영주권은 근처도 못 가겠구나. ㅎㅎ. 애들이 학교 가고 싶다고 하면 어쩌지. 브루어 월급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하면 일을 할 수 있을까. 머리 속 복잡하게 돌아왔어요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동안 차에선 그 끼기긱 소리는 한 번 도 더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한동안은 버틸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뭐 시작한 일이니 끝까지 어쨌든 노력은 해 봐야할 일이고. 그래도 작년하고 비교하면 신랑은 그래도 취직을 했다는 다행스러운 상황이지 않은가. 생각했습니다.


방법은 더 찾아볼 예정입니다. 아직은 떠오르는 생각이 없지만. 뭐가 더 나빠지겠습니까 아직 다행인 상황도 있으니까요.


오늘 하루. 이렇게 보내며 다시마 소고기 국물 우려 떡국 끓이고 있습니다.


떡국이 먹고 싶었는데 마침 떡이 냉동실에 남아 있어서 기뻤습니다.


오늘 하루 일기 수다로 풀어내니 시원하네요.

모두들 좋은 저녁 되세요



* 그리하여 지금의 내용을 업데이트 하자면 신랑은 캐나다 브루어리에서 좋은 대접을 받으며 나름 유명세도 있는 상태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만 영주권은 아직입니다. 회사에서 변호사 비용 및 각종 비용을 다 서포트 하면서 돕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요원합니다. 여러 억울한 상황도 발생했었지요. 운이라는 상황이 돕질 않는구나 싶은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더 신중히 고민합니다. 계속 캐나다에 머무르는 것이 맞을까? 아마 신랑은 다른 나라로 또 맥주 공부하러 옮길지도 모르겠습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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