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보내지 못한 늦은 답장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의 과도기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탓일까, 내 기억들은 늘 그 경계선에 한 발씩 걸쳐 있는 듯하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이 활발히 보급되며 초등학교에 컴퓨터 과목이 새로 만들어지고, 유행처럼 ‘정보검색대회’나 ‘한글타자경진대회’ 같은 것이 열리던 시절이었다. 그런 물결 속에서 어느 해 담임선생님은 반 아이들에게 포털 사이트에서 계정을 만들고 메일을 보내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렇게 나는 생애 첫 이메일 주소를 가지게 되었다.
메신저가 널리 퍼지기 전이라, 반 아이들은 서로에게 심심풀이로 메일을 주고받곤 했다. 우리는 마치 수업 시간 중에 몰래 돌려보던 쪽지처럼 컴퓨터실에서 메일을 썼다. 그렇게 랜선을 타고 오간 활자들이 제법 쌓이기도 했지만, 결국 포털 사이트의 폐쇄와 함께 그때 만든 메일 주소는 구시대의 산물로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백업하지 못한 메일들은 증발해 버렸고 나는 그때 무슨 말들을 적어 보냈는지 가물가물할 뿐이다.
이제 메일도 그리 혁신적인 수단이 되지 않은지 오래다.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로 짧고 가벼운 인스턴트 메시지를 주고받는 시대에서, 역설적으로 손편지가 갖는 의미가 더 특별해진 것 같기도 하다. 마치 마지막 낭만 같은 느낌으로. 그래서인지 직접 받은 손편지는 오래도록 보관하게 된다. 나는 친구가 많은 아이가 아니었기에 편지의 양이 많진 않다. 하지만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면서도 그 손편지들만큼은 버리지 못한 채 손때 묻은 보관 상자에 그대로 두고 있다.
생각해 보면 편지는 소통의 수단이지만 결국에는 응답 없는 말로 남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내가 보낸 편지는 내 손을 떠난 지 오래고, 나는 그 안에 어떤 말을 적어 보냈는지 모두 기억할 수 없으므로. 결국 내가 간직하고 있는 손편지에 남은 것들은 아직 끝나지 못한 마음의 잔여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빛바랜 편지지와 눌러 적힌 손글씨들을 들여다볼 때면 어쩐지 쓸쓸한 마음이 밀려들곤 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학년말이 되면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받는 일이 하나의 전통처럼 이어졌던 기억이 있다. 미술 시간에는 직접 카드를 만들기도 했다. 색도화지와 반짝이풀로 서투르게 꾸몄던 수제 카드에 장난스레 적은 몇 마디로 친구들과 까르르 웃기도 했다. 이런 ‘크리스마스 카드 주고받기’는 친구들과 원만하게 지낸 해에는 즐거운 에피소드로 남았지만, 그러지 못한 해에는 해소되지 못한 마음의 부담이 되기도 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나가던 겨울, 나는 학교 앞 문구점에서 한 장에 100원~200원 하는 엽서를 열몇 장쯤 샀다. 크리스마스 트리나 겨울 풍경 같은 그림이 그려진, 초록과 빨강의 봉투가 동봉된 엽서였다. 그때의 나는 같은 반 안에서 가까이 지냈다고 믿은 이들에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의례적인 인사와 덕담을 쓰며, 어쩐지 얼룩져버린 그 해를 이렇게라도 조금이나마 씻어보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쓴 엽서들을 끝내 보내지 못했다. 그 시절의 나는 너무 날 서 있었고, 내가 적는 말들에는 어느샌가 모난 마음이 스며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전년까지만 해도 가볍게 건넸던 카드조차 무거운 바윗덩어리를 옮기듯 낑낑대는 마음이 되어, 차마 다른 이에게 건네줄 수가 없어져버렸다. 그렇게 보내지 못한 엽서들은 오랜 시간 동안 ‘받은 편지 상자’에 묵혀 있다가, 결국 어느 해 폐지함에 버려졌다. 그렇게 그때 내가 손으로 눌러쓴 글자들은 미숙하고 못난 기억으로만 남아버렸다.
내가 그때 반 아이들에게 엽서를 건네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손편지야말로 마음을 전하는 가장 진실한 수단이라는 나의 믿음이 무너졌던 경험으로부터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친구라고 믿었던 이들과 계속되는 오해와 다툼으로 지쳐갔던 나는, 진심만을 담아 꾹꾹 눌러쓴 편지 한 통이면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이 모든 갈등은 서로가 서로를 몰랐기에 시작된 거라고, 이 무지를 해소할 수만 있다면 언제든지 좋은 관계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온 마음을 다해 쓴 편지는, 오히려 진심이 지나쳤기에 독이 되었다. 다듬지 않은 날것의 진심은 상대에게 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땐 몰랐다. 전혀 그런 뜻이 아니었음에도 내가 쓴 문장 한 줄에 자신을 우습게 보는 거냐고 화를 내던 상대를 보며, 편지는 때로는 대화보다도 가장 위험한 소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내가 편지를 통해 하고자 했던 것은 소통이 아니었다. 나는 이러하니, 너는 이걸 알아야 한다는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웠다. 차라리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를 했더라면 그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을까.
한때의 실수로 편지를 쓰는 것에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던 탓일까. 내게 직접 손으로 쓴 편지에 우표를 붙여 집으로 보내던 이들의 마음에 제대로 답장도 못한 채, 너무 뒤늦게야 오래된 편지를 가만히 매만지곤 했다. 나는 그들의 정성과 마음씀을 알면서도, 내가 그 마음에 답할 만한 그릇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아주 오랜 후회로 남았다.
내게 손편지라는 건 언젠가 전해지길 바랐던 말이지만, 끝내 닿지 못하고 남겨진 마음의 집약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아직도 그때 쓰지 못하고 멈춘 답장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그땐 몰랐고, 지금은 너무 늦었지만, 빛바랜 편지지 위에 남은 감정만은 오래도록 남아 여전히 내게 말을 걸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수신인이 없을지도 모르는 이 편지는 언제쯤 발송될 수 있느냐고. 그래서 나는 그런 못다 한 말들을 이런 방식으로나마 기록하는 중이다. 한때 내 곁을 스쳐갔지만, 활자 위에서 되살아나는 이들을 추억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