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되지 않을 나의 덕질 이야기
어떤 첫 만남은 문장으로 풀어내기에 역부족이다. 몇 초 안 되는 그 짧은 스쳐 지나감은 정지된 화상처럼 선명하게 남아 아주 오래 남은 기억이 되었다.
연미복을 입고 갈색 머리를 한 그가 무대 옆에서 걸어 나오던 순간. 이미 그때부터 이후 일어날 일들이 총천연색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무수한 장면들의 맨 첫 페이지에 기록될 그날, 나는 결국 ‘덕통사고’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처음 만났던 그 해의 나는, 자기혐오가 극에 달해 억지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겨우 버티는 중이었다. 한 해의 절반을 넘는 시간이 그런 안간힘으로 훌쩍 지나가버렸고, 어느덧 무더위가 들이닥친 8월이 되었다. 내내 집에만 있다가 뭐라도 외출할 구실을 만들자는 마음으로 방청을 신청한 음악프로그램에 덜컥 당첨이 되었다. 그렇게 별생각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보러 갔던 공연에서 그와 마주치고 말았다.
그를 만나기 이전, 내가 했던 덕질들은 대부분 방 안에서 별다른 이벤트 없이 조용히 이루어졌다. 덕질은 현실에서 살짝 비껴간 환상 속에서 머무는 즐거움이면 충분했다. 현실에 존재하는 이와 현실의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이 나의 첫 덕질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를 알게 된 후, 나는 홀린 듯이 그의 공연을 연달아 예매했다. 공연 후 사인회에서 그가 날 처음 알아보았던 때의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또렷이 남아 있다. 그땐 그게 뭐라고 그렇게 기뻤을까. 애정을 지니게 된 대상에게 내가 ‘익명’의 누군가가 아닌 이름을 가진 누군가로 기억되는 것 또한, 결국 어떠한 관계 맺기라는 걸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내게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도.
‘설마 이것까지 하겠어’ 싶었던 일들을 그를 좋아하며 하나씩 해보기 시작했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그 시기에 내게 그렇게까지 몰두할 대상이 생긴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자책과 무기력으로 이어지던 일상 속에서, 그를 향한 나의 열정은 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준 힘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건 사랑이었다. 사랑이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그를 알게 된 이후 내 세계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경험을 쌓았다. 이전의 나의 일상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고요한 호숫가에 앉아 물바라기를 하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그를 만나고 난 이후의 나는, 사방팔방 튀어 오르는 폭죽 한가운데에 있게 되었다. 터지는 불꽃들이 다소 정신없고 시끄럽긴 했지만 덕분에 잠자고 있던 오감이 깨어났다. 글이 저절로 써졌다. 순조롭게 계약도 했다. 그 시절은 그보다 더 빛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그와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결국 폭죽은 모두 타들어가고 매캐한 연기만 남는다.
나는 눈이 따가울 정도로, 쉼 없이 색색깔의 불꽃을 바라보는 중에도 이미 알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이 빛의 향연이 지속될 수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그에 대한 애정은 관성적으로 흘러갔다. 여전히 그를 만나러 공연장을 찾았지만, 그의 주 장르가 나와 주파수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그를 보러 가는가. 마음 한편에서 조금씩 자라난 질문은, ‘나는 왜 그를 덕질하는가’라는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다.
그래도 여전히 사랑했다. 무대 위에서 빛나는 그를 볼 때마다 충만한 기쁨으로 가득 차올랐다. 그를 아끼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게 뿌듯했다. 그의 가장 빛나는 순간들을 오래 남기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 수많은 사진과 영상들이 하드 속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하지만 그 데이터의 용량과 내 마음이 정비례하지는 않았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그를 남기는 것에 열중했다.
그러나 결국 매번 카메라를 챙겼던 열정조차도 미지근해졌다. 그의 모든 공연을 보겠다고, 그가 무대 위에 오르는 모든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은 온데간데없이 아주 드물게 그를 보러 갔다. 나를 알아볼 때마다 오랜만이에요,라고 말하는 그에게 마음의 부채감이 쌓여 갔다. 그의 공연을 볼 때마다 행복함만으로 꽉 찼던 마음이 복잡해져 여러 감정이 뒤엉켰다. 나를 잊지 않아 준 그에게 교차하는 고마움과 미안함. 역시 상대가 나를 알아보는 덕질은 애초부터 하는 게 아니었다는 자책. 이제는 나보다 더 열렬히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으니, 나 하나쯤은 안 보여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합리화…
올해는 단 한 번도 그를 보러 가지 못했다. 그는 이제 정말 다른 세계에 있다. 그의 새로운 도전으로 유입된 새로운 팬들,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달라진 팬덤의 규모, 어쩔 수 없이 많이 달라져버린 덕질의 양상. 이 모든 걸 따라가지 못해 멈춰버린 나의 덕질은 이렇게도 이기적이고 보잘것없는 것이었을까. 그러면서도 그의 팬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가 바닥을 치고 있던 시절 나에게 선물처럼 다가온 사람이었다. 아니, 내가 그 만남을 흘려보내지 않고 그라는 선물을 기꺼이 받아들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그가 내게 남겨준 것들을 여즉 한 움큼 쥐고서 살아가고 있다. 한정된 테두리 안에서 머물렀던 나의 감각이 그라는 사람으로 뻗어나갈 수 있었다. 그 확장된 외연으로 나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랬기에 내가 어둠에서 걸어 나오려던 그때, 그라는 빛을 만날 수 있던 건 행운이었다.
그의 이름은 빼 버리면 그만인 책갈피가 아니라, 꾹꾹 눌러 접은 책장의 귀퉁이가 되었다. 한 번 접힌 종이는 다시 펴도 자국이 남듯, 그를 만나 애정을 쏟았던 시절은 나라는 책 안에 분명한 선으로 남아 있다. 어떤 페이지를 펼치더라도, 나는 그 접힌 자국 덕분에 그의 이름이 적힌 페이지를 단번에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덕질에는 탈덕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완덕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문장처럼, 아직 덧붙일 말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덕질은 미완으로 남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그날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