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차마 건네지 못한 모든 안녕

사라졌지만 지워지지 못한 마음

by 바란

핸드폰 연락처에 저장되어 있는 사람들의 숫자를 세어 본다. 서른 개 남짓이다.


번호를 남겨둔다는 것은 이 사람과 다시 연락이 닿을 거라는 가능성을 품는 일이다. 이름 석 자와 열한 자리 숫자라는 데이터에 불과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연결고리가 된다. 연락을 주고받을 만한 가능성조차 없어진 사람들은 결국 그 미약한 연결마저 끊어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내 핸드폰에서 사라져 간 사람들이 몇 명일까. 그리고 나라는 이름과 내 번호는 몇 명의 핸드폰에서 지워졌을까.


그러나 나도 모르는 새에 번호가 바뀐 사람은 굳이 내가 지워내지 않아도 이미 ‘지워진 사람’이 되어버린다. 연락처 목록에서 낯선 사람의 프로필 사진을 발견할 때엔, 이젠 정말로 닿을 수 없다는 상실감과 동시에 어떠한 씁쓸함이 밀려온다. 어차피 멀어져 갈 관계에 억지로 종지부가 찍힌 느낌. 그럼에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관계가 주는 아이러니이자 삶의 필연적인 통과의례이니까.



나는 인간관계가 넓은 사람은 아니다.


학창 시절에도 여러 명의 친구들과 몰려다니기보다는 마음이 맞는 친구들 한두 명과 친하게 지내는 쪽이 편했다. 말수가 적고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미취학 아동이었을 때에는 혼자 있는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 “너는 이름이 뭐야?”라고 먼저 물었고, 스스로 내 성격을 ‘활발하고 외향적’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점차 나이가 들어가며 내 성격은 ‘외향’이라기보다는 ‘외성’에 가까웠음을 깨달았다.

‘외성’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고 ‘외향’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곧 관심사인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렵진 않다. 다만 그것이 내 관심사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춘기 시절에야 교우 관계가 제일 중요하다 보니 친구 때문에 많은 내적 갈등을 겪었어도 지금에서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보다 있는 친구들을 더 챙겨야겠다는 마음이 크다.


어렸을 때 생일인 당사자에게 친구들이 학교에서 깜짝 파티를 해 주는 것을 부러워했던 적이 있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관계가 기브 앤 테이크라는 걸 알게 된 후, 그리고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그 부러움은 차츰 어떠한 깨달음으로 바뀌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그렇게까지 할 에너지는 없다. 성격과 성향이 그렇게 타고났다. 왁자지껄하게 파티를 열고 많은 이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과는 나는 결이 다를 뿐이다. 나는 생일을 맞은 사람에게 마음이 담긴 선물과 편지 한 통을 조용히 건네는 편이며, 나조차도 상대에게 그런 걸 받는 걸 더 좋아한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 나와 연이 닿았던 사람들, 그러나 이제는 어떻게 지내지는조차 모르는 사람들을 회고하며 ‘나’라는 사람의 관계 맺기를 돌아보는 글을 써 려고 한다. 내 주된 관심사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없다.


나는 혼자가 편하다.

그럼에도 내게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내 일부분을 만들어 주었음을 이제는 안다.


그러므로 이 글은, 멀어져 간 사람들을 통해 결국 나를 조금씩 이해해 가는 글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