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만큼은 차라리 꼰대가 이득
먹음직스러운 떡볶이를 뒤로 하고 냉정하게 돌아섰다.
군 복무 중 발이 골절된 아들이 민간 병원에서 진료를 받던 날이다. 각종 검사와 치료방법, 입원 절차 등 3시간 넘게 병원에 있다 보니 머리가 지끈거리고 피곤이 몰려왔다. 내 코는 불편한 병원 냄새를 거부한다며 깨끗한 공기를 요구하고 있었다.
"나 바람 좀 쐬고 올게"
아내와 아들을 두고 주변 공원을 한 바퀴 둘러볼 참이었다. 신선한 가을 냄새를 기대하고 병원 출입문을 열었는데 오히려 고소한 기름 냄새가 훅 들어왔다. 본능일까 조금 전까지 흐리멍덩했던 눈이 매의 눈으로 바뀌더니 기어코 흰 바탕에 빨간 글씨로 된 'OO 떡볶이'간판을 찾아냈다.
"오빠! 이거 탄수화물이야 특히 떡볶이 하고 튀김은 절대 안 돼!"
아내가 내 어깨 위에 앉아서 귀에 대고 소리쳤지만
'몇 개만 맛보고 나머지는 애들 갖다 주면 되지 뭐!'
사탄의 속삭임이 와이프의 외침을 사뿐히 지르밟았다.
나는 잽싸게 매대로 바짝 섰다.
"저 떡볶이 1인분 하고요 오징어튀김 3개, 김말이 2개..." 하고 있는데
멀찌감치 있던 남자가
"여기서 도와드릴게요" 한다.
'나한테 하는 말인가?' 다시 주문에 집중하려는데
"여기서 도와드린다고요" 다시 한번 날카로운 음성이 들렸다.
매장으로 들어가 보니 그의 앞에 카드 단말기와 포스가 보였다. 그는 코팅된 메뉴판을 건네주며 한번 더 강하게 말했다.
"여기서 도와드릴게요"
계속 도와주겠다고는 하는데 내 눈에 그는 몹시 불편해 보이는 얼굴이었고 그 불편한 표정은 고스란히 말투로 배어 나오는듯했다. 아마도 위생을 위해 음식 앞에서 주문하는 것보다 매장 안에서 계산을 하고 나면 음식을 내어주는 모양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이 가게에 처음 왔고 먹음직스러운 음식에 시선을 뺏기다 보니 주저리주저리 적혀있는 주문방법을 보지 못한 것뿐인데 잔뜩 찡그린 얼굴과 말투로 나를 도와준다고 하니 저자의 도움을 받아야 할지 난감했다.
결국 그자 앞에서 주문 한 뒤 페이앱을 여는 순간 떡볶이 생각이 확 떨어져 버리는 머릿속 신호를 받았다. 동시에 내 손가락은 페이앱을 얼른 닫아버렸다.
"제가 약속시간이 있었는데 시간을 잘못 봤네요"
되지도 않는 핑계를 대고 서둘러 가게에서 빠져나왔다. 이 순간만큼은 차라리 꼰대가 되는 게 이득이었을까 공원을 산책하고 가을 냄새를 실컷 맡았으며, 길거리 떡볶이와 튀김이 나를 유혹했지만, 넘어가지 않았다고 아내에게 자랑을 늘어놓을 수 있었다.
만약 그자가
"손님 여기서 주문하고 계산해 주시면 담아드리겠습니다." 했더라면
아마도 나는 아내의 잔소리를 된통 들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