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과 맞바꾼 일상, 건강으로 되돌려 받기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혈압이 낮아졌고 공복 혈당도 100 이하로 떨어졌다. 긴장되는 건강검진을 무사히 마치고 나니 따뜻한 설렁탕 한 그릇이 어느 때보다 입에 착 감겼다.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귀찮은 절차로만 여겼던 국가 건강검진을 이제 인생 고시처럼 받아들이게 됐다. 검진 날짜를 미루는 일이 있더라도 아내는 나와 같은 날짜로 검진을 예약하고는 내 건강 성적표를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그녀는 우리 집 나이팅게일이다. 의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데 어디서 그렇게 건강지식을 쌓았는지, 증상부터 병명, 심지어 처방까지 병원에서 진단받은 이야기와 맞아떨어질 때가 제법 많다. 민간요법에도 일가견이 있어 침대에서 일어나면서부터 건강 잔소리를 시작한다. 우선 입안에 나쁜 균을 제거하라며 양치를 지시하고,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네주는 것으로 진료를 시작한다. 유산균과 물, 십전대보탕을 30분 간격으로 '투약' 하고 나면, 15년째 저녁마다 만들고 있는 채소 수프(삶은 토마토, 브로콜리, 양배추, 당근과 사과를 넣어 갈아낸 수프)를 500ml 담아준다. 그 사이 계란찜기에서는 1인당 두 개씩 배급되는 삶은 계란이 익어간다.
최근에는 두유 제조기를 들여놓고 땀으로 수확한 장인, 장모님 표 '귀족 서리태'로 만든 따뜻한 두유를 추가했다. 직장에 다닐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아침마다 건강을 챙기는 아내의 루틴을 소파에서 가만히 지켜보다 보면 '행복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고 살아온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아내는 '살찐 사람이 좋아서 나를 만났다'라고 했다가 지금은 생각을 바로잡았다. 나의 아버지를 비롯하여 큰아버지 두 분과 작은아버지까지 모두 혈압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환갑을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혈압은 친인척 모두에게 가장 예민한 단어다. 때문에 건강검진에서 가장 큰 관심은 혈압과 혈당이 됐고, 아내가 우리 집 나이팅게일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4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건강검진받기가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특히 혈압이 높아지는 바람에 두 차례나 재 검진과 외래진료를 받아야 했다. '혈압약은 한 번 먹기 시작하면 계속 먹어야 한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조절할 여지가 있다면 최대한 노력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의 조언을 귀담아들었다.
"아직 젊으시고, 혈압도 아주 높은 편은 아닙니다. 다만, 콜레스테롤 수치가 평균 이상이고요 더 큰 문제는 복부비만입니다." 업무상 잦은 모임과 술자리가 많았으며, 스트레스를 담배연기로 해소하던 일상이었기에 충분히 예상했던 진단이었다. "약을 처방할 수도 있지만, 환자분은 원인이 명확해 보입니다. 술, 담배 줄이시고 해로운 음식 조심하세요. 운동 꼭 하시고요" 다음 외래 진료까지 혈압을 지켜보는 것으로 하고, 혈압약 처방은 보류하기로 했다.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던 건강검진은 명확한 숫자로 평균 이상을 보여주면서 직관적인 자극과 강한 자기반성의 시간을 선물했다. 생각해 보니 아내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냥 붙어있는 내 뱃살은,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핑계 삼아 먹는 음식과 술을 합리화했기 때문이었다. 삼시 세끼는 세 끼대로 다 즐기고 나이팅게일이 챙겨주는 식사 대용 식단(채소 수프, 두유, 삶은 계란)은 식단대로 흡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이거 먹으면 살 빠진다'는 말과 '굶지 않고 먹고 싶은 거 먹으면서 하는 다이어트'는 없는 법이다.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긴 시간을 연봉과 맞바꾼 나는 앞으로 해야 할 목록 가장 첫 줄에 '운동&소식(小食)'이라고 적어두고 별(★) 표 3개를 표시했다.
살면서 보내는 시간 중에 가장 아까운 시간은 막히는 도로에서 허비하는 시간과 병원 진료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하물며 감옥 같은 입원실에 누워 지내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아내와 함께 다녀와야 할 아름다운 산과 여행지가 수두룩 남아있다. 나와 아내, 그리고 의사에게 약속한 건강을 지키기 위해, 운동&소식(小食)으로 2025년 송년회에서는 에너지 넘치는 모습으로 가족사진을 남겨보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