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아이를 키우는, 특히 학령기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일명 학부모들 사이에서 통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유전자 검사를 하고 싶으면 아이의 공부를 시켜 보라고. 아무래도 내 아이를 가르친다는 것은 다른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과 무척 다르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어서 나온 말이 아닐까 싶다.
열심히 육아를 하는 다른 부모들 과는 다르게 내 육아의 모토는 “첫째를 둘째처럼!”이었다. 모토라는 말로 그럴싸하게 포장은 했지만 쉽게 말하면 대충 키우는 것이다. 처음 부모가 되면 아이가 행여나 다칠까, 다른 친구들보다 부족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게 일상이다. 주변을 둘러봐도 아이를 기르는 친구들은 아이의 먹을 것, 교육, 체험 등 아이를 위해 물심양면 노력하고 있었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 일찌감치 문화센터를 시작으로 영어수업, 사고력 수학 등 여러 수업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난 꼼꼼한 성격도, 어떤 일에 몰두하는 끈기와 집중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내 마음 편한 대로 쉽게 기르고자 했다. 위험한 꿀이나,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과일 등을 제외하고 이유식을 마무리할 때즈음은 어른들이 먹는 반찬도 함께 나누어 먹었고, 아이가 놀이터에 놀거나 길을 걸을 때 넘어져도 일으켜주기보다는 툭툭 털고 일어나게끔 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최대한 영상 노출을 자제하라는 전문가의 말을 뒤로하고 우리 아이는 일찌감치 티브이에 눈을 떴다. 뽀로로를 시작으로 레이디버그를 거쳐 겨울왕국까지. 덕분에 난 겨울왕국 1을 100번은 본 것 같다. (다행히 겨울왕국 2가 나오고 난 후 아이의 흥미가 줄어 겨울왕국 2는 10번쯤 보고 마무리 되었다.)
이렇게 대충 키웠다고 자부심(?)을 가졌던 내가 놓지 못한 것이 있으니 바로 아이의 공부였다. 누가 말했던가 부모와 학부모는 엄연히 다르다고. 최대한 자유롭게 키우고자 했던 내 마음은 아이가 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 달라졌다. 한글 떼기와 연산. 유치원 졸업을 앞둔 겨울부터 부랴부랴 한글공부를 시작했다. 게다가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은 졸업 전에 한자급수 시험을 보고 있어 한자시험까지 함께 준비해야 했다. 유치원생에게 한자 시험이 뭐 그리 중요하겠냐마는 아이가 붙고 떨어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 아이”만” 떨어지는 게 중요했을 뿐.
한자시험 8급이다. 한자나, 한글 쓰기도 없고 쉬운 한자를 읽을 수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7살, 아직 한글도 모르는 아이가 한자까지 하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아이도 힘들고 도대체 왜 이 쉬운 걸 이해하지 못하는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내 마음도 답답해진다. 엄마는 그럴수록 조급해지고 목소리가 커진다. 옆에 지나가며 “지금 나이에 그런 거 까지 해야 하나.”라고 한마디 툭 던지는 남편에게 화살이 돌아간다. 이 상황에 그래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 라며 시험준비를 그만두어 우리 아이”만” 시험에 떨어지면 그때도 마냥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까? 뻔히 그렇지도 않을 거면서, 그렇다고 아이 공부를 직접 시키지도 않을 거면서 그렇게 말하는 남편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렸다.
한자는 한자대로, 한글은 한글대로 수업을 시작했다. 스티커를 붙이고 열심히 써보고, 수학도 연산을 시작했다. 10이 넘어가는 연산은 내 손가락도 빌려주고, 안되면 집에 굴러다니는 구슬도 모아보았다. 노력 덕분인지 다행히 아이는 한자시험은 통과를 했고, (모든 아이들이 통과가 되었다고 들었다.) 한글도 어려운 글자 몇 개를 제외하고 교과서 수준은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연산은 아직 서툴지만 입학해서 계속하면 되니 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계속 1학년이 아니다. 2학년이, 3학년이 되니 내 마음이 조금씩 동요한다. 3학년이 되기 전에 파닉스를 끝내야 한다. 어느 정도 동화책도 읽었으면 좋겠고, 영어 노래도 신나게 불렀으면. 어쩌면 내 마음 깊은 곳에는 무엇이든 일단 “다른 아이들보다 뛰어났으면.”했던 생각이 자리 잡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아이는 내가 아니다. 어린아이가 내 마음을 속속들이 알아줄 리도 없고, 안다고 해도 실천할 리도 없다. 역시 책 보다 만들기에 관심이 많았다. 하루에 색종이를 몇 장이나 오리고 붙이고, 공주님들을 주야장천 그려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있는 독서록 숙제덕에 어쩔 수 없이 책을 한 권씩 읽기는 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도저히 안될 때는 책상에 의자를 하나 더 가져다 두고 공부를 시켰다. 더하기 빼기… 어렵지도 않고.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될 문제를 수없이 틀렸다. 채점을 할수록 비가 내렸다. 그리고 내 마음에도 비가 내렸다.
결혼 전에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많은 아이들을 보았다. 수업도 잘 듣고, 과제도 꼼꼼하게 잘해오는 아이, 성격은 좋아서 늘 웃고 있지만 어딘가 덤벙대는 아이, 학습은 포기한 듯 매일 출석체크만 하는 아이, 어머니에게 차라리 집에 있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하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 없는 아이.. 등등. 미혼 때는 막연히 내 아이는 첫 번째 아이가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학부모님들이 나에게 연락해서 아이들 공부 좀 시켜달라고, 말 좀 잘해달라고 얘기했을 때도 알았다고 대답은 했지만 내심 ‘엄마말은 안 듣는 아이가 내 말은 들을까.’ 싶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특히 학부모가 되어보니 그 학부모님이 나에게 그렇게 얘기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것도 아주 깊이.
아이가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엉덩이는 의자 끝에 간신히 걸터앉아 있고, 자세도 비뚤다. 연필은 간신히 손가락을 벗어나지 않고 아슬하게 붙들려있다. 아이는 말 한마디 없이 공부하기 싫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런 자세에서 정답률이 높을 리가 없다. 결과물은 예측대로다. 공부하는 모습에서부터 화가 끓기 시작했는데 비 내리는 문제집을 보자 부글부글 끓던 내 속은 결국 폭발해 버렸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마! 다 때려치워! “
이제야 아이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기 시작하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린다. 하기는 싫지만, 그렇다고 때려치우기도 싫다. 공부하려면 싫다 그러더니 하지 말라 그러니까 그것도 싫단다. 그럼 대체 어쩌란 말인가?
가끔은 아이가 불량한 태도로 공부나 과제하는 것을 보면 조용히 방문을 닫아 버린다. 차라리 눈에 안 띄는 게 집안에 평화를 가져다준다. 보고 있으나 안 보고 있으나 아이의 학습 태도는 변함이 없을 테지만 안 보고 있으면 적어도 아이에게 화는 내지 않을 테니.
아이는 이제 5학년이 된다. 길고 긴 겨울방학 (나 혼자) 야심 차게 계획을 세웠지만 흐지부지한 채 한 달이 지나갔다. 이제 방학은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이 한 달이라도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남들은 중등수학이니, 역사 수업이라며 저만치 앞서 뛰어간다. 하지만 세상에서 두 번째로 긍정적이라면 서러울 나의 아이는 누가 뭐라 해도, 어떤 길을 간다 해도 난 내 갈길을 간다며 꿋꿋하게 느림보로 간다. 걸그룹 언니들에 눈을 한참 팔았다가 태권도에도 기웃거린다. 세상엔 공부 이외의 재밌는 것들이 어찌나 많은지... 자꾸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한눈을 파는 딸을 보는 어미의 마음은 타들어가지만 어쩌겠는가. 아직 초등학생이라는 말로 위로하는 수밖에.
오늘도 난 역사책 검색을 해보고, 아이 교육에 관한 유튜브를 찾아본다. 누구를 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도움이 되겠지… 도를 닦는 마음으로 오늘도 아이에게 밀린 과제를 마쳐야 한다고 한마디 하고는 조용히 방문을 닫아본다. 나와 우리 가족의 평화를 위해.
아는 게 힘이라지만 아이의 공부하는 모습만큼은 모르는 게 약이다.
오늘도 한숨과 주름이 또 하나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