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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나 Mar 01. 2024

사는 것 혹은 사는 곳

아파트에 삽니다. 

5년 전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였다.

띠링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유치원 선생님이 숙제를 알려주시는 문자다. 분명 6살 때까지는 열심히 놀던 아이였는데 7살이 되니 유치원에서도 여러 가지 학습이 많아졌다. 더불어 문장 만들어 오기, 준비물 챙기기 등 아이 혼자 할 수 없는, 즉 엄마의  과제가 많아졌다. 이번 과제는 확인해 보니 부모님이 살던 곳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을 비교하기다. 주간 학습안내를 보니 이번주 주제는 전통이다. 전통 음식, 전통 놀이에 이어 이번엔 가옥 차례인가 보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생활한 사진을 보니 기와집, 초가집 등을 배워왔다. 이제는 지금 살고 있는 곳과 과거의 주거 환경을 비교할 차례다. 숙제를 받았으니 고민을 해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금 살고 있는 곳과, 내가 아이만 할 때, 즉 7살 때 살았던 환경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거참... 이를 어쩌지.

유치원 선생님은 이런 그림을 상상하셨던 걸까. by pixabay


내가 기억하는 나의 첫 집은 주택이다. 주택의 한 층을 빌려 전세로 살았고, 위층은 주인집이 살았다. 응답하라 1998에 나오는 덕선이와 정환이의 집이 비슷했던 것 같다. 그러다 열심히 아끼고 모은 엄마 덕분에 우리 가족은 정말 우리 집이 생겼다. 그것도 아파트. 어느 날 아빠는 이사 갈 집을 미리 가보자며 나를 새로 이사 갈 아파트로 데려가셨다. 40여 년 전이 자세히 기억날 일이 전무하지만 아직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있다면 1층에서 그 큰 건물을 올려다 보고는 나에게 저기가 우리 집이라고 가리키셨던 것. 주택살이 밖에 해보지 않았던 7살 어린이는 당연히 한 건물에는 한 가구만 사는 줄 알았고 그래서 저 큰 건물 한 채가 모두 우리 집인가 라는 다소 엉뚱한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나중에 이사 가서야 저 큰 건물 안에 수많은 집들이 있고, 그중에 한 채만 우리 집이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이 이야기는 아직도 어린 마음이 부끄러운 건지 다른 가족들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동네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등하교도 함께 하고 시간이 나면 동네 놀이터에서도 열심히 놀았다. 피아노, 미술 학원도 함께 다니고, 그 옆의 서예학원도 다녔다. 지금 5학년인 우리 딸과 나의 5학년은 별 다르지 않았다. 

하… 그렇다면 아이 숙제는 어떡하지? 선생님은 뭘 기대하고 숙제를 내주신 걸까? 아이의 부모님들은 시골에서 뛰어놀며 기와집이나 초가집에 살았을 거라고 생각하셨을까? 그래서 그 당시의 주거지의 모습, 엄마를 따라 5일마다 열리는 시골 장날에 구경 가서 뻥튀기나 눈깔사탕을 하나씩 얻어먹는 모습을 상상하셨던 걸까? 고민 끝에 아이 친구 엄마에게도 물었다. 나보다 두어 살 차이 나던 그 엄마도 역시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고 했다. 본인도 지금과 그때가 별반 다르지 않아 아이 숙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고 했다.


그럼 남은 것은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남편이다. 대학생이 되며 서울로 올라오게 된 남편은 나와 한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과거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무척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 어머니가 냇가에서 빨래를 하셨다고 했다. 화장실은 집 밖에 있어 밤에 화장실이 가고 싶을 때는 잠든 누나를 불러 깨워 누나에게 잔소리를 들었다는 일화도 이야기해 주었다. 아니, 대한민국이 얼마나 넓다고, 몇 시간 되지 않는 그 거리에 남편과 나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뭐 덕분에 아이의 숙제는 잘 끝마칠 수 있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주택 살이 이후 계속 아파트에 살았다. 구축이든, 신축이든, 좁아서 발 디딜 틈이 없든, 가족마다 방 하나를 차지할 수 있을 만큼 넓은 크기든 상관없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의 기억도, 결혼하고 처음 독립 후 시작한 신혼의 달달함 모두 배경은 아파트였다. 

네모 반듯한 건물에 모두 똑같은 모양의 집, 이웃 간의 웃음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삭막한 공간. 어쩌면 닭장 같은 공간에서 어떻게 살 수 있냐고 말하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아파트에는 추억이 있다. 친구들과 함께 놀았던 놀이터. 심지어 차도 많지 않아 넓디넓은 주차장에서도 뛰어놀았다. 저녁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어디선가 친구들의 이름이 불리고,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간다. 지금처럼 자동화된 세차장이 없던 시절, 주말이면 양동이에 물을 가득 실어 주차장으로 향했다. 아빠는 열심히 세차를 하고, 나와 동생은 도와주는 시늉을 몇 번 하다가 근처에서 열심히 놀았다. 아마 우리가 따라가지 않았으면 세차는 더 빨리 끝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내가 처음 살았던 그 아파트. 오랜만에 찾아보니 반갑다.  by 네이버 지도

친할아버지보다 더 자주보고, 더 친근하게 느꼈던 경비 할아버지도 계셨다. 지금은 생각도 못할 일이지만, 다들 외출할 때는 집 열쇠꾸러미를 경비아저씨께 맡겼다. 각 호수가 쓰여있는 열쇠판에 우리 집 열쇠가 있느냐 없느냐를 확인하고 아저씨께 크게 인사를 하고는 집에 올라가는 게 일상이었다. 열쇠도 없고, 엄마도 없으면 어떠랴. 그럴 때는 경비아저씨와 놀며 시간을 때우는 것도 재미있었다. 꼬맹이들의 버릇없는 행동들도 귀엽게 봐주고 허허 웃어주던 경비 할아버지께 생각해 보니 무척 고맙고, 죄송스럽기도 하다.

매일 깨끗이 관리되는 단지, 집 앞의 분리수거장과 쓰레기통, 그리고 같지만 같지 않은 공간들. 닭장 같은 공간 속에서도 이웃의 웃음은 피어날 수 있고 온기도 쉽게 전해질 수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날 때면 아이들의 안부를 한 번씩 묻는 어른들, 단지 내 놀이터에서 놀다가 우연히 마주치는 친구들. 이웃들과 나누고 싶은 것들을 슬쩍 문 앞에 걸어두고는 사라지는 우렁 각시들. 삭막하다고만 느껴지는 아파트라는 공간에서도 따스함은 슬며시 피어난다.



지금까지 인생 대부분을 살아왔던,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살고 있을 것 같은 아파트. 요즘 납골당의 모습을 보아하니 어쩌면 나는 평생을 아파트에서만 살다가 죽어서도 아파트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다. 아파트에 로열층이 있듯이 납골당도 로열층이 있다던데 나는 과연 몇 층에 있을까… 가끔 엉뚱한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꿈만 꾸는 주택살이. 로망이지만 자신 없습니다. by pixabay

내가 마당에 꽃을 심고 잔디에 물을 주며 아이들을 맞이할 노년의 모습을 가끔은 그려보기는 한다. 다 큰 내 아들 딸들이 또 본인을 닮은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 집에 올 때면 나와 남편이 마당에서 고기를 굽고, 아이들은 뛰어노는 상상을 해보면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상일 뿐.  내가 남들보다 부족한 건 부지런함이기에 그 꿈은 살포시 접어본다. 


아무도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


아파트가 처음 생겨날 즈음에 만들어졌던 아파트라는 그 노래를 다들 아시는지. 그 옛날 ‘아파트’ 노래의 주인공은 쓸쓸한 아파트였는지 모르겠으나 나의 아파트는 쓸쓸하지만은 않다.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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