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한나 Feb 23. 2024

아바라의 계절

커피를 좋아한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라는 노래처럼 하루에 한잔씩 필수, 두 잔 이상은 선택이다. 무슨 말인지 모를 수많은 영어 메뉴들 사이에서 내 선택은 늘 바닐라라테. 달콤한 바닐라 라테 한 모금을 들이켜면 어깨 가득 쌓여있던 피로도 싹 달아나는 느낌이다. 게다가 한 손에 들고 있는  커피컵은 나를 더 도시여자로 보여주는 듯 착각이 들기도. ‘흠.. 이 정도면 성공한 여자군. ’ 물론 카페인 덕에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는 더 쌓여갈지도 모르지만.

가장 인기 있다는 아아, 아이스아메리카노는 늘 내 선택 밖이다.  몹시 더운 날 한잔쯤은 생각이 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일은 극히 드물다. 비싼 카페든, 저렴한 프랜차이즈 카페든 상관없이 내가 고르는 메뉴는 늘 같다. 물론 젊었을 때는 늘 아바라(아이스바닐라라테)를 외쳤지만 마흔이 넘어가니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요즘 아이스는 멀어져 갔다. 아니 못 마시게 되었다. 역시 추울 때는 따바라가 최고.


제대로 커피를 접하게 된 것은 대학교 때였다. 고등학교 때 학교에 자판기가 생기고, 친구들이 공부를 핑계 삼아 캔커피를 마실 때도 난 늘 주스나, 탄산음료를 마셨다. 어릴 때부터 커피는 어른이 되어야 마실 수 있다는 엄마의 말씀 때문이었는지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대학생이 되어 진짜 어른이 되고부터는 늘 친구들과 점심 먹고 자판기커피 한잔. 창가 벤치에 앉아한 잔씩 하고 나면 커피 속 카페인이 활동도 느려지는 것인지 따스한 햇살 덕에 노곤해 지곤 했었다.


친구들과 만나게 된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코엑스로 향했다. 당시 나는 시골 같은 풍경이 펼쳐진 읍내에 위치한 수도권의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커피는 자판기냐, 매점이냐. 둘 뿐. 아메리카노 같은 것도 사치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였는지 분위기부터 달랐다. 세련되어 보인다고나 할까. 넷 중 나와 다른 하나는 열심히 적응 중인 유학생. 우리 둘은 나머지 서울러들의 대화에 낄 수 없었다. 앞줄 둘, 뒷 줄 둘. 뒷 줄은 아무 말 없이 오랜만의 서울나들이에 두리번거리며 앞 두줄 친구들을 열심히 뒷따랐다. 조심해야지. 자칫하다간 친구들을 놓칠 수도 있어.

by pixabay

앞 줄의 둘은 이런저런 얘기를 하더니 어디론가 걸음을 재촉한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영어로 간판이 있고 사람들이 북적였던 곳. 서울 나들이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흔치는 않았던 경기도민이었다. 낯선 여기는 어디지. 역시 서울러들은 다르군. 앞줄의 두 친구들이 재빨리 주문을 마쳤다. 앗! 이게 뭐야? 시원하고 달콤하다. 익숙하지만 낯설다. 여기는 뭐 하는 곳일까. 촌스러움을 티 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어쩔 수 없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서였는지, 처음 맛본 달콤한 커피가 좋아서였는지 기분도 들뜨고, 호들갑도 떨었다. 나중에 알게 된 곳, 그곳은 스타벅스였다. 그리고 내가 맛본 그것은 캐러멜 프라푸치노.


그렇게 21살에 처음 스타벅스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다가 한동안은 다시 경기도민이 되어 스타벅스와 멀어져 갔다. 역시 자판기와 편의점 커피가 로테이션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서울에 있는 학교로 편입을 하면서 서울 문명과 가까워졌다. 그 때 즈음 우리나라의 커피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스타벅스 외 프랜차이즈카페도 많이 생기고, 개인 커피 전문점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그리고 그곳 들은 나의 참새 방앗간이 되었다. 

한 창 소개팅을 할 때는 만남의 카페가 만남의 장소이기에 커피 한잔, 소개팅을 실패하고는 친구에게 하소연하기 위해 위로의 커피 한잔, 그리고 남자친구가 생기고는 커피 한잔으로 데이트 코스를 마무리하곤 했다. 달콤한 라테 한잔, 나의 곰돌씨가 된 그는 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그리고 직장생활을 시작하고는 믹스커피와 바닐라라테가 돌아가면서 늘 함께 했다. 

그와 나의 취향 차이

내가 요즘 즐겨가는 카페는 동네의 메가 커피와 스타벅스. 다른 곳은 가지 않느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 집 근처에 있어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나서는 메가 커피에서 한잔,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싶으면 오랫동안 버티고 앉아있어도 눈치 보이지 않는 조금 먼 스타벅스로 향한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내 선택은 늘 바닐라라테다. 문득 궁금해서 찾아보니 바닐라라테는 250kcal 정도. 바나나 하나에 90kcal 정도라는데 그러고 보니 나는 매일 바나나 2개 반 정도를 먹고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뱃살이 오동통 붙었다. 그래도 달콤한 내 에너지 활력소는 포기 못하지.

할머니가 되어도 함께 할 그녀들과의 커피 한 잔

오늘도, 아마 내일도 그리고 머리에 흰 눈이 쌓이고 호호 할머니가 되어도 바닐라라테를 향한 내 사랑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아마 머리가 함께 희끗해진 친구들과 사는 이야기, 손주 이야기, 건강이야기 등 대화의 소재만 바뀔 뿐, 함께하는 사람들과 따뜻한 바닐라라테는 그때도 내 옆을 지켜주고 있지 않을까..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 카페에서 따뜻한 바닐라라테를 마시면 더없이 좋겠지만, 아이들의 저녁 준비로 자글자글 불고기를 볶아내고 있는 것이 현실. 카페에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딸이지만 내일은 떡볶이를 사준다는 핑계로 카페에 같이 가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