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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 Here Live Here Mar 03. 2016

둥근 손잡이 vs. 레버 손잡이

 노년의 당신이 잡을 손잡이는 둘 중 어느 것인가?

문에 설치하는 손잡이 디자인을 정부가 규제하는 곳이 있다. 할 일이 없어 이런 것까지 간섭하는가라고 생하는?


캐나다 밴쿠버시(市)는 2013년 11월  문 손잡이 디자인에 대한 건축 법규(조례) 수정안을 발표했다. 2014년 3월부터 적용되기 시작한 이 수정안은 '향후 건립되는 모든 건축물 내에서 둥근 손잡이 사용을 불허하며 반드시 레버 손잡이를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둥근 손잡이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사용되어온 둥근 손잡이가 사라져가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도대체 왜 둥근 손잡이는 우리 곁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으며, 밴쿠버시에서는 금지까지 당한 것일까?




둥근 손잡이와 레버 손잡이의 사용법을 찬찬히 떠올려보면 답의 단서를 찾아낼 수 있다.


둥근 손잡이는 손잡이를 손으로 감싸 쥔 채 손에 힘을 주어 시계 방향으로 돌려 문을 연다. 레버 손잡이는 레버에 손을 얹은 채 아래로 눌러 문을 연다.


둘 중 어느 손잡이를 사용할 때 손에 더 많은 힘이 들어가는가? 이 힘을 '악력(손바닥으로 물건을 쥐는 힘)'이라고 표현하면 답을 하기가 한층 더 쉬워질 것이다.  


그렇다. 답은 '둥근 손잡이'다.

  

핀란드의 건축가 Juhani Pallasmaa는 문 손잡이를 가리켜 "건물과의 악수(the handshake of a building)"라고 표현했는데, 서양에서는 누군가를 만날 때 악수로 인사를 시작하니 건물이나 공간 안으로 들어갈 때 문의 손잡이를 잡는 것과 의미가 상통하는  듯하다. 그런데 악수를 하는 것이 힘든 사람이 있다. 세상에는 팔을 들어 올려 손에 힘을 넣는 악수 동작이 별 일 아니라고 느끼는 젊고 건강한 사람들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건물이나 공간에 문을 열고 진입하는 사람들을 젊고 건강한 층으로만 제한시킨다면 이는 분명 '차별'이다. 선진 의식을 가진 사회일수록 노약자, 장애인과 같은 약자들이 젊고 건강한 사람과 동일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한다. 밴쿠버 시는 이러한 취지에서 노약자나 장애인이 약한 손 힘만으로도 문을 열 수 있도록 레버 손잡이의 설치를 의무화한 것이다.


연구논문 <Universal product design involving elderly users:

a participatory design model(노년층 대상을 포함하는 유니버설 제품 디자인: 참여적 디자인 모델> (2004,  University of New South Wales&Bilkent University)에 따르면 노년 연령층에 가장 중요한 문 디자인 사항은 손잡이 디자인이며, 힘을 주어 돌려야 하는 둥근 손잡이보다 아래로 누르기만 하면 되는 레버 손잡이 작동이 노년층에 훨씬 용이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위에 언급한 연구논문에 있는 표 발췌 - 노년층에게는 문 디자인 중 Handle Shape이 가장 중요한 사안이다.



레버 손잡이 (image by Interno Maog)


그러나 레버 손잡이라고 해서 단점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안전면에서 다소 불안한 면이 있다.


혼자 사는 집인데 핸드폰도 없이 레버 손잡이 고장으로 방이나 욕실 안에 갇혔다고 하면 혼자서 레버 손잡이를 고쳐 안에서 문을 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레버 손잡이는 내부 구조가 복잡하므로 고장 시 전문가만이 손댈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둥근 손잡이의 내부 구조는 단순하다.


또한 둥근 손잡이는 회전을 시키는 방식이어서 힘이 분산되므로 고장의 확률이 낮다. 그러나 레버 손잡이는 아래로 누르는 방식이므로 한 번에 강한 힘이 집중될 수 있어 고장의 확률이 높다. 예를 아이들이 장난치다가 순간적으로 레버 손잡이를 강한 힘으로  내리누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일상적인 사용 측면에서 레버 손잡이가 더 낫고, 손잡이의 유지관리와 안전면에서는 둥근 손잡이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사라져가는 것들에는 이유가 있다. 불편에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우리도 언젠가는 노년을 맞을 것이다. 이 세 가지는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실이 있다. 선진국은 괜히 선진국이 아니다. 약자를 배려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앞선 의식 수준을 갖추었기에 선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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