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으로 글을 쓴다고요?
5년 전, 힙합 저널리스트 김봉현 님이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에 나갔다. 글을 쓰고 싶었지만 써 내려가기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강제로 꾸준히 쓰려고 내 눈에 가장 재미있어 보이는 글쓰기 모임에 나갔다. 거기서 만난 20대 초반의 한 회원이 핸드폰 메모장에 글을 쓴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아 각 잡고 써도 한 줄 써내려 갈까 말까였기 때문이다. 내게 글 쓰는 일은 세상에서 최고로 힘든 일이었다. 다이어트보다도, 새벽 요가보다도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은 나도 핸드폰으로 글을 쓴다. 지하철에서도 쓰고 카페에서도 쓰고 심지어 허리가 아프면 누워서 소파에서 쓰는 날도 많다. 글 쓰는 일이 더 이상 최고로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됐다. 모임에서 일주일에 글 하나 제출하는 일이 너무나도 부담이었는데 이제는 하루에 하나 거뜬하다. 5년을 낑낑대며 뭐라도 쓰고, 중간에 안 썼다가도 다시 또 쓰고를 반복하니 글쓰기가 수월해진 것이다.
글 쓰는 일이 쉬워졌다는 것은 잘 쓰는 것과 같은 의미는 아니다. 애석하다. 그 회원도, 나도 작가처럼 잘 쓰지는 못한다. 정말 말 그대로 수월하다. 그러나 쉬워졌다는 것을 얕볼 순 없다. 계속, 많이 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잘 쓰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쓰다 보면 실력도 늘어나리라 믿는다. 실제로 5년간 계속 쓰니 조금은 늘었다. 무엇이든 쉽게 흥미가 떨어져 금방 그만두는 내게 5년을 지속했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앞으로도 계속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짐작해 본다.
30대 후반 무계획 퇴사를 지르게 만들 수 있었던 자신감은 단연코 글쓰기가 ‘쉬워진’ 덕분이라 말할 수 있다. 글은 단순히 글 자체만 의미하지 않았다. 글은 모든 콘텐츠의 뿌리였다. 글을 유튜브 대본으로 바꾸어 낼 수 있었고, 글을 쓰다가 발견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살려 이모티콘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글을 쉽게 쓸 수 있다는 것은 내게 콘텐츠를 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과 같았고 내 생각과 개성을 쉽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과 같았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동안 회사를 그만둘 수 없었던 이유는 글 쓰는 일이 어려워서였다. 더 근본적으로는 콘텐츠 만드는 일이 어려워서일 테다. 하나를 만들어 내기도 힘이 드는데 얼마나,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까, 어느 세월에 영향력을 얻을까 싶었던 거다. 회사를 그만뒀는데 콘텐츠 만드는 일까지 그만두면 그것은 진정한 백수로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글을 계속 쓰다 보니 앞으로 어떤 콘텐츠든 계속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라는 인간을 콘텐츠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확신은 베팅을 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커졌다. 1년 안에는 무슨 일이든 일어나지 않을까?